달러가치 하락은 미국 경제의 패권 상실을 예고하는 전조일까.

최근 달러가치가 지속적으로 약세를 보이면서 반미주의자나 일부 경제 관계자들은 미국 경제의 구조적 문제로 강달러 정책을 포기할 수 밖에 없고 점차 미국의 파워도 약화되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물론 달러가치가 하락했다는 것은 미국 기업이 수출을 잘 하지 못해 외국 돈을 많이 벌지 못했고 결국 외국 돈을 달러로 바꾸려는 수요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달러 하락=미국 경제 약화'로 단선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곤란하다.

경제 현상은 그렇게 쉽고 단순하게 볼 일이 아니다.

환율의 움직임 속에 숨어있는 다양한 모습을 살펴보자.


◆환율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

만약 원·달러 환율이 하락했다면,즉 달러 가치가 하락하고 원화 가치가 상승했다면,한국의 경제는 좋고 미국의 경제는 나쁘다고 볼 수 있을까.

더 나아가 미국이 경제 패권을 잃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물론 이런 주장도 나름 설득력이 있다.

한국 제품의 수출이 잘 돼 달러를 많이 벌어들였고,벌어들인 달러를 환전해야 하기 때문에 외환시장에서 원화 수요가 늘어나는 반면 달러는 공급이 늘어나 달러가치가 하락했다고 볼 수 있다.

수출이 잘 됐다는 것은 미국보다 한국 기업의 경쟁력이 더 높아졌기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미국의 경제력이 약해졌다고 해석해도 될까.

실상을 들여다보면 이런 해석이 썩 먹혀들지 않는다는 사실을 금방 알 수 있다.

미국은 여전히 강하고 실업률은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으며 소비도 활발하다.

반면 한국의 경우 수출 증가 이외에 전반적인 경제 상황이 개선됐다는 증거를 찾아보기 어렵다.

실제 미국의 만성 무역적자로 주요국 통화에 비해 달러 가치가 하락했지만 2001년 이후 새 일자리는 930만개나 만들어졌다.

소비나 투자 등 미국의 다른 경제지표도 좋은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또 스페인과 영국처럼 무역적자에 시달렸던 나라는 각각 360만개,130만개씩 일자리를 늘렸다.

하지만 자국 통화가치가 상승한 일본은 36만개,유로존 대부분의 나라에선 110만개의 신규 일자리가 창출되는 데 그쳤다.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

우선 달러 가치가 떨어지면서 미국의 수출 기업은 가격 경쟁력을 확보해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일 수 있었을 것이다.

실제 환율은 무역수지 불균형을 해소해 주는 기능을 갖고 있다.

환율이 떨어졌다면 한국 기업의 수출 경쟁력은 약화돼 수출이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또 환율이 급격하게 변하지 않는다면 환율보다 다른 요인이 경제에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일례로 활발한 기업활동이 가능한 나라는 그렇지 않은 나라에 비해 경제여건이 좋을 수밖에 없다.

미국 스페인 영국 등은 우리나라보다 기업하기 좋은 여건을 갖고 있다.

또 인구 구성비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고령화된 일본에 비해 젊은 층의 인구가 많은 미국의 경제 활력이 높을 수밖에 없다.

특히 미국의 경우 달러가 기축통화인 데다 대부분 나라의 중앙은행이 달러를 사들여 외환보유액을 운영하고 있다.

따라서 미국이 대규모 무역적자를 기록하더라도 세계 각국 정부가 미국의 채권을 사들이느라 달러화를 미국에 다시 지불하는 구조를 갖고 있어 미국 경제는 흔들림이 없다.

결국 환율 움직임 하나만으로 국가의 경제 상황을 진단하는 것은 위험하다.

다른 경제변수와 함께 환율 변수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약달러,강달러 정책

약달러 기조 속에 미국 경제가 건강함을 유지하고 있다면 약달러 정책이 만병통치약일까.

앞서 언급한 대로 약달러 정책은 미국 수출기업에 도움을 준다.

또 수입품의 가격을 올려 수입을 줄이는 효과도 있다.

따라서 약달러는 미국 무역적자 해소의 특효약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단순하게 경제 현상을 이해해서는 안 된다.

수입품의 가격이 높아지더라도 소비가 증가하거나 수입품의 경쟁력이 압도적으로 높은 경우 수입액은 오히려 늘어날 수 있다.

일본 제품이 대표적인 예다.

가전과 자동차 등에서 앞선 경쟁력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달러 약세에도 불구하고 미국 시장에서 일본 제품의 인기는 환율변동과 상관없이 수그러들지 않았다.

특히 구조적으로 수입을 줄일 수 없는 분야에서 약달러 정책은 큰 문제를 유발한다.

대표적인 게 천연자원이다.

석유 구리 등 천연자원들은 달러 약세로 수입 가격이 오르더라도 수입량을 줄이기가 매우 어렵다.

따라서 약달러 정책을 유지할 경우 자원 수입국가는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수입 가격 상승으로 인플레가 발생할 우려도 높다.

여기에는 정치적 문제도 개입한다.

달러 약세 속에 중동 러시아 등 석유 수출국의 경제력이 커지는 게 미국으로서 달가울 리 없다.

그래서 미국은 강달러 정책에 강한 애착을 갖고 있다.

물론 강달러 정책을 취하는 순간 약달러 정책의 장점은 사라진다.

기본적으로 환율은 시장에서 결정된다.

여기에 정부는 금리나 통화량 조절,외교 협상 등을 통해 환율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앞서 살펴본 대로 환율 정책은 양면을 갖고 있다.

따라서 환율의 영향을 쉽게 예단하고 정책을 결정했다가는 경제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다른 경제현상과 마찬가지로 환율 문제도 복합적,종합적 시각이 요구된다.

김남국 한국경제신문 국제부 기자 nkkim@hankyung.com





■ 향후 전망은



앞으로 달러는 어떤 방향으로 움직일까.

지속적으로 달러 가치가 하락했지만 앞으로도 이런 추세가 지속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세계경제포럼(WEF)은 2002년 이후 미 달러화의 실질 환율이 23% 평가절하됐지만 앞으로도 이런 추세가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WEF는 미국이 경상수지 적자폭을 줄이기 위해 달러 약세를 용인할 것이고 이로 인해 달러 가치는 점진적으로 하락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단기간에 달러 가치가 급속히 하락할 확률은 5~10% 정도로 비교적 낮다고 예측했다.

미국 내 학자들도 달러 약세를 용인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마틴 펠드스타인 하버드대 교수는 미 시카고에서 최근 열린 전미경제학회(AEA)의 연차총회에서 "미국은 대외적으로 내건 '강한 달러' 정책의 깃발을 내려야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레이건 대통령의 경제자문위원장을 지냈으며 권위 있는 민간 연구소인 전미경제연구소(NBER) 의장을 맡고 있는 펠드스타인 교수는 "미국의 강한 달러 정책이 달러가치를 왜곡시키고 국제 금융시장도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제 미 정부가 경쟁력 있는(약세) 달러화를 원한다고 솔직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달러가치가 지난 5년간 15%가량 하락했으나 여전히 과대 평가돼 있다"며 "경상수지 개선을 위해선 미국의 저축률을 끌어올리는 것과 함께 달러가치를 더 떨어뜨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제경제연구소의 마이클 무사도 "경상적자 축소를 위해선 달러가치가 10년간 20%가량 평가절하되는 것이 필요하다"고 동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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