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CEO 나의 청춘 나의 삶] (21) 이채욱 GE코리아 회장

불가(佛家)의 가르침 중에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말이 있다.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고 세상 모든 것은 마음이 지어낸다는 뜻이다.

이채욱 GE코리아 회장(60)이 살아온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 말이 참 맞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세칭 명문대를 나오지도 않았고 고등학교 때부터 가정교사를 하면서 스스로 학비를 벌어야 했을 정도로 넉넉지 못한 환경에서 자란 그를 세계 초일류기업의 한국지사장으로 이끈 큰 힘은 다름아닌 마음먹기에 있었기 때문이다.

부하 직원을 평가할 때도 능력 이전에 정신자세를 중시한다.

주변 사람들은 아무리 어려운 환경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절망 속에서도 희망의 가능성을 찾아내는 사람이 이 회장이라고 입을 모은다.

"낙천적이면서도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구학서 신세계 부회장)이라거나 "남다른 열정을 인생의 참된 에너지로 승화시킨 지혜와 그 속에서 우러나는 독특한 인간적 향기가 느껴진다"(이구택 포스코 회장)는 것이다.

이 회장의 성장기는 결코 유복하지 못했다.

경북 상주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6·25 때는 부모님과 피난길에 올라 산 속에 움막을 치고 살았던 경험도 있다.

장학생으로 고등학교(상주고)에 입학했지만 1년 만에 장학생 자격을 잃는 바람에 학비를 대지 못해 학교 다니기를 중단하기도 했다.

다행히 당시 지역 유지였던 병원장의 집에서 입주 가정교사 자리를 얻어 어렵사리 학업을 계속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회장은 그 당시를 불행했던 시절로 기억하지 않는다.

"입주 가정교사를 할 때 동네 사람들은 저를 보고 '어린애가 남의 집에 들어가 눈칫밥 먹으면서 고생한다'고 했어요.

그런데 정작 저는 굉장히 좋았어요.

부잣집에서 쌀밥에 고기 반찬을 먹고 내 방도 따로 있었고.그러니까 항상 신바람이 났죠."

이 회장은 1972년 삼성물산에 입사하면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한때 이 회장은 삼성물산과 동명목재라는 기업을 놓고 저울질을 하다 결국 삼성물산을 택했다.

급여 수준은 동명목재가 50% 정도 더 높았지만 장래성과 비전을 생각했을 때 삼성물산이 낫다고 판단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수출만이 살 길'이라던 시절에 종합상사에 입사해 수출입국(輸出立國)에 기여하겠다는 야망이 그의 가슴 속에 자리잡고 있었다.

이후 이 회장은 특유의 성실성과 열정으로 능력을 인정받아 갔지만 그에게도 위기는 있었다.

1980년 초년 과장으로서 고선박 해체사업을 담당했을 때였다.

당시 이 회장은 미국 출장 중에 낡은 선박에서 고철을 분리해내 철강회사에 판매하는 '고선박 해체사업'을 보고 이를 한국에서 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한국은 미국에 비해 인건비도 저렴하니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이 회장은 귀국하자마자 경영진의 허가를 얻어 이 사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부산 감천만에 정박해 두었던 배들이 갑자기 몰아닥친 해일로 모두 바닷속에 가라앉고 말았다.

당장 수십억원의 손실을 회사에 안기게 됐다.

사표를 낼까 고민했지만 일단 사태를 수습하는 일까지는 책임지자는 생각에 동료들과 함께 부산으로 내려갔다.

그때부터 수천t에 이르는 대형 선박을 수중에서 50t 단위로 잘라 크레인으로 끌어올리는 작업이 1년 반 동안이나 계속됐다.

인양작업이 마무리된 1981년 9월 이 회장은 책상서랍 속에 넣어 두었던 사표를 꺼냈다.

감천만에 배가 가라앉던 날,날짜만 적지 않은 채 미리 써 두었던 사표였다.

그러나 회사는 자신이 맡은 일에 끝까지 책임을 진 이 회장의 공로를 높이 사 그를 두바이 지사장으로 발령했다.

이 회장은 "성공을 통해 배우는 것보다 실패를 통해 배우는 게 100배,1000배는 크다"며 "실패해도 절대 도망가지는 말자는 생각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지금도 그는 그때의 경험을 잊지 말자는 뜻에서 '감천고해(甘川苦海)'라는 글을 액자로 만들어 사무실 벽에 걸어놓고 있다.

이 회장의 긍정적인 자세가 빛을 발한 것은 1989년 삼성과 GE의 합작회사였던 삼성GE의료기기 사장으로 부임했을 때.당시 삼성GE는 설립 이후 4년 연속 적자를 내던 부실기업이었다.

이 회장은 처음 발령받았을 때 "가슴이 답답하고 머리가 복잡했다"고 말했다.

더구나 당시 이 회장은 삼성물산에서 핵심부서라 할 수 있는 해외사업본부장으로 한창 능력을 꽃피우고 있을 때였다.

듣던 대로 새로 부임해 간 회사의 상황은 말이 아니었다.

첫 출근하던 날 이사회에 나갔더니 아침부터 저녁까지 삼성과 GE 양쪽 사람들이 회사의 실적 부진을 서로 '네 탓'으로 돌리며 설전을 벌여 아무 일도 하지 못했다.

주변 사람들은 "부실기업이니 대충 정리나 하고 돌아오라"며 그를 위로했다.

그러나 이 회장의 생각은 달랐다.

의료기기사업은 첨단기술이 집약된 사업이기 때문에 잘만 하면 그룹 이미지를 높이는 데도 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이 회장은 그때부터 종이 한 장을 꺼내놓고 자신이 삼성GE의료기기의 사장이 돼서 좋은 점을 생각나는 대로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어차피 맡은 일인데 싫다고 생각하면서 일해 봐야 남는 게 뭐가 있었겠느냐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긍정적인 생각을 가졌기 때문일까.

그때부터 삼성GE의료기기의 실적은 거짓말처럼 좋아지기 시작해 2년 반 만에 부실을 털어내고 흑자로 돌아섰다.

삼성과 GE를 거치며 최고의 경영자로 우뚝 선 이 회장이지만 그는 여전히 스스로를 돌아보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대학과 기업체 등으로 외부 강연을 많이 다니는 그는 상대방에게 "당신은 당신을 채용하겠느냐.채용한다면 연봉은 얼마를 주겠느냐?"는 질문을 많이 던진다.

자기 관리를 위해서는 그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도 끊임없이 던져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이 회장은 "처음 취직을 했을 때부터 주변의 유능한 사람들을 보면서 '지금 내 위치가 어디인지'를 끊임없이 되물었다"고 한다.

그는 "평생 길러야 하는 게 경쟁력"이라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성공한 CEO로서 그가 바라는 인재상은 무엇일까.

"머리가 좋고 똑똑한 것보다는 자세를 더 중시합니다.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애사심을 갖고 일을 잘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을 더 높이 평가하죠.모든 직원들이 CEO 앞에서는 성실하고 부지런한 척하지 않느냐고요? 같이 일하다 보면 다 보입니다.

가짜로 노력하는 것인지 진짜로 하는 것인지.성격이 좋고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직원이라면 일단 오케이입니다."

유승호 한국경제신문 산업부 기자 ush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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