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인 출신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

미국 국민들이 헨리 폴슨 재무장관을 두고 하는 얘기다. 미국 금융시장의 경쟁력을 회복시키기 위해 사베인스-옥슬리법으로 대표되는 반기업적 규제에 메스를 가하겠다고 약속한 게 엊그제다. 이번엔 내달 12일 자신이 인솔할 중국 방문단에 이례적으로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을 동원키로 해 화제다.

그는 철저한 약(弱)달러주의자다. 미국의 쌍둥이적자 해소엔 달리 방법이 없다는 생각에서다. 그가 지난 9월 중국을 방문하자 대부분 사람들이 위안화 절상을 강력히 촉구할 것으로 예상했던 이유다. 그러나 그는 '위안화 절상'이라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단지 양국 경제가 처한 현실을 포괄적으로 논의해보자며 '전략적 경제회의' 설치를 제안했을 뿐이다. 시종일관 압박만을 가하던 직업 관료들과는 전혀 딴판이 아닌가. 중국 지도자들의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고 말았다.

그러자 시장이 예민하게 반응했다. 폴슨이 중국을 방문했던 일주일간 위안화 환율은 0.34%나 떨어졌다. 주간 단위로 가장 높은 절상폭이었다. 이른바 폴슨의 '위안화 절상 햇볕정책 효과'다.

내달 방중단에 버냉키 의장이 합류하더라도 버냉키가 나서 위안화 절상을 요구할 리 없다. 하지만 폴슨과 나란히 앉아 있는 버냉키의 모습에 중국의 지도자들과 상하이 외환시장이 어떤 반응을 보일까.

폴슨 장관은 1972년 골드만삭스에 입사해 얼마 전까지 회장을 지낸 인물이다. 철저한 기업인이라는 얘기다. 협상과 대화를 앞세운 외교 무대에서의 모습부터가 상대국에 압박만을 일삼던 관료들과는 천양지차다. 과감한 기업 규제 완화도 그가 기업인 출신이 아니었다면 어려웠을 일이라는 게 미국 관가의 평가다.

폴슨 만이 아니다. 미국 각료 가운데는 기업인 출신이 적지 않다. 카를로스 구티에레스 상무장관도 그런 경우다. 쿠바 난민 출신으로 켈로그에 트럭운전사로 입사해 회장 자리까지 오른 기업인이다.

구티에레스 장관은 얼마 전 기업인들과 중국행 비행기를 탔다. 그는 보시라이 중국 상무부장부터 만나 "중국 제품 수입을 제한하지 않겠다"고 했다. 대신 "미국 제품을 중국에 많이 팔아야겠으니 도와달라"고 말했다. 상대국에 무턱대고 반덤핑 규제 등을 가해 무역적자를 해소하려던 기존 관리들과는 판이한 해결책을 제시한 셈이다. 당연히 그를 따라나선 기업들이 혜택을 봤다.

폴슨과 구티에레스의 활약상을 보면서 과연 우리 기업인들은 몇이나 국정 현장을 뛰어봤는지를 생각해보게 된다. 그러나 공무원의 능력으론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던 정보통신부를 제외하면 정통 기업인이 장관에 임명됐다는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한 기업인이 얘기했듯 '3류'인 관료와 '4류'인 정치인의 이름만 그득할 뿐이다. 교수들도 빠지지 않고 등용됐지만 '최악'이었다는 평가는 많아도 '성공'이었다는 평가는 거의 없다.

부동산과 교육 정책은 혼란을 거듭하고 있고 얼어붙은 소비에 각종 규제만 난무하고 있다. '회전문 인사'로 실정(失政)을 되풀이하고 있는 참여정부도 이젠 기업인 출신 장관이라는 새로운 카드를 꺼내들 때가 아닌지…. 정부가 부른다고 손을 드는 기업인들이 얼마나 있을지가 의문이긴 하지만 말이다.

김정호 경제부장 jh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