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생명윤리심의의원회 최종 보고서 발표

한나산부인과가 환자의 불임치료에 사용해야할 성숙도가 높은 난자를 황우석 박사팀의 줄기세포 연구용으로 제공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의사로서 최선의 진료 의무를 다하지 못한 것으로, 의료윤리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을 어긴 것이라는 비난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아울러 한양대병원이 환자들의 난소를 적출해 황 교수팀에 전달하면서 난소 제공의 동의를 받는 과정에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10여 개월에 걸쳐 황 박사팀의 생명윤리 문제를 조사해왔던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가 긴 조사작업을 끝내고 23일 전체회의를 열어 최종 보고서를 발표했다.

앞서 국가생명위는 지난 2월2일 황 박사팀의 난자출처 논란과 관련, 난자취득과정에 `대가성'과 `강압성'이 있는 등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었으며, 아울러 황 박사팀의 연구윤리를 감독해야할 서울대 수의대와 한양대병원 등 기관생명윤리심의위원회(IRB)가 제 역할을 못했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중간 보고서를 공개한 바 있었다.

이번 최종 보고서에서도 국가생명위는 중간 보고서의 내용을 재확인했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황 박사팀은 2002년 11월28일부터 2005년 12월24일까지 미즈메디병원, 한나산부인과, 한양대병원, 삼성제일병원 등 4개 의료기관에서 119명의 여성으로부터 138회에 걸쳐 총 2천221개의 난자를 제공받아 사용했다.

이 과정에서 현금 지급, 불임치료비 경감 등 반대급부가 제공됐다.

이는 인공수정을 위해 제공되는 난자 매매를 금지한 의사윤리지침의 취지를 위반한 것이다.

아울러 자발적 난자 공여자에게 난자 채취에 따르는 위험성과 부작용 등에 대해 충분한 설명하지 않았고, 난자 공여자의 건강에 대한 세심한 고려도 부족했다.

◇한나산부인과, 성숙도 좋은 등급 난자 연구용으로 제공...재산상 반대급부도 제공

조사결과, 황 박사와 한나산부인과를 연결시켜 준 사람은 안규리 서울대 의대 교수였다.

안 교수는 미즈메디병원에서 난자를 구하기 어려워지면서 황 박사에게 한나산부인과 원장인 장상식, 구정진 부부를 소개하고 처음 만나는 자리를 주선했다.

검찰 조사 결과에 따르면 장 원장은 황 박사팀으로부터 배란유도제를 제공받았으며, 체외수정을 위해 채취된 난자 중 일부를 연구용으로 공여한 환자에게 난자 제공 대가로 약값이나 체외수정시술비를 전부 또는 일부를 감면해주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한나산부인과가 불임치료에 사용해야 할 가장 좋은 난자를 의도적으로 연구용으로 제공하고 오히려 등급이 낮은 난자를 불임치료에 사용했다는 점.
복지부가 한나산부인과의 체외수정시술대장, 체외수정시술기록지 등을 검토한 결과, 전체 채취 난자의 48%가 황 박사팀에 제공됐으며, 특히 난자의 성숙도별로 평가했을 때 성숙도가 좋은 등급의 난자 중 63%가 연구용으로 황 박사팀에 건네졌다.

국가생명위는 이와 관련, 의료윤리 원칙 중에 의사가 환자를 치료할 때 부주의나 악의, 소홀함, 피할 수 있는 무관심 등에 의해 환자에게 해를 끼치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이른바 `악행 금지의 원칙'이 있는데, 한나산부인과는 명백히 이런 기본 중의 기본이 되는 의료윤리 원칙을 어겼다고 지적했다.

직업상의 윤리 의무를 위배했다는 것이다.

◇한양대병원, 채취한 난소 제공 동의 얻는 과정에 문제

한양대병원은 2005년 4월12일부터 11월8일까지 8명의 여성에게서 121개의 난자를 뽑아 황 박사팀에 보냈다.

하지만 앞서 한양대병원 산부인과는 이와는 별도로 2002년 5월 중순부터 2003년 6월 중순까지 총 72명의 환자로부터 난소 113개(완전 난소 57개, 부분 난소 56개)를 채취해 황 박사팀에게 제공했다.

당시 한양대병원은 자궁근종이나 자궁선근종 등에 걸린 여성 환자를 수술하면서 난소를 떼어내 황 전 교수팀에 건넸다.

문제는 한양대병원이 난소를 적출한 환자들로부터 난소 기증동의서를 받는 과정에서 많은 문제점을 노출했다는 것.
실제로 검찰 조사에서도 한양대병원은 일부 환자의 동의서가 없는 상태에서 난소를 채취해 황 박사팀에 제공한 것으로 확인됐었다.

일반적으로 한개의 난소안에는 수만개의 미성숙 난자가 들어있으며, 이 가운데 평생 200∼250개 정도의 난자가 성숙과정을 거쳐 배출된다.

◇황 박사 연구팀 여성 연구원 난자 제공에 문제 있었다

황 박사팀 여성 연구원 2명이 체세포복제배아연구를 위해 난자를 제공했는데, 이는 종속관계, 기타 특별한 주의를 요하는 여성 연구원의 난자를 사용한 것으로, 명백히 의사윤리지침을 위반한 비윤리적 행위라고 국가생명위는 판단했다.

더욱이 황 박사 등은 난자 제공에 따르는 부작용에 대한 충분하고 적절한 설명도 없이 `특별한 보호'가 필요한 여성 연구원들에게 오히려 `난자 공여 동의서'를 일괄적으로 배포해 서명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고 국가생명위는 말했다.

이는 연구원들의 자유를 제한한 일종의 강압으로, 매우 부적절한 행위가 아닐 수 없다고 국가생명위는 말했다.

게다가 황 박사는 여성 연구원들의 난자를 연구에 사용했다는 사실이 밝혀지기 전까지 부인과 은폐로 일관하는 등 연구의 진실성을 심각하게 훼손했다고 지적했다.

◇한양대병원.서울대 수의대 IRB 심각한 수준

국가생명위는 한양대병원, 서울대 수의대 IRB가 국제 생명윤리 심의기준은 물론 국내 규정에도 미치지 못하는 등 심각한 수준이었다고 평가했다.

IRB가 황 박사팀에 연구계획 승인을 내주기 전에 이미 난자가 채취되어 황 박사팀에 제공됐으며, 한나산부인과, 미즈메디병원 등은 IRB가 승인한 동의서를 사용하지 않았고, 황 박사팀 연구자들은 IRB의 보고 요구에 연구 내용 보안을 이유로 응하지 않는 등 IRB의 관리 감독 부실은 도를 넘어섰었다고 지적했다.

한마디로 황 박사팀의 연구가 IRB의 윤리적 감독아래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결론내렸다.

◇향후 재발 방지 계획

황우석 사태는 한 개인 또는 관련 연구자나 IRB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게 국가생명위의 판단이다.

생명윤리문제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제도적, 물적 인프라를 구축하지 못한 정부와 성과 중심적 연구문화로 생명윤리 가치에 소홀했던 과학계 모두가 책임을 인식하고 유사 사건의 재발 방지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국가생명위 스스로도 이 사건에 대한 책임을 깊이 통감한다고 밝혔다.

국가생명위는 앞으로 인체를 대상으로 연구, 치료할 때는 생명윤리 가치를 깊이 고려하고 국제 기준에 부합하는 연구 문화 풍토를 조성하고, IRB의 건전한 운영을 도모하는 등 관련 전문가와 관련 단체, 정부가 각고의 노력을 펼쳐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울연합뉴스) 서한기 기자 sh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