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미식과도 같다.

유명한 뷔페에서 산해진미를 배 터지게 먹는 것도 좋지만,그보다 정말 우리의 기억에 남는 것은,우연히 발견한 식당에서 먹은 차돌박이 한 점이다.

파리,로마,브뤼셀 등 유명 도시들은 모두 뷔페와 같다.

조금씩 나누어 즐겨야 제 맛이지 마구잡이로 먹어치워서야 맛을 느끼는 것은 고사하고 배탈이 나기 십상이다.

브뤼셀의 턱없이 비싼 홍합 요리나 볼품없기로 악명 높은 오줌싸개 동상 사진을 찍기 위해 파리에서 벨기에까지 300㎞ 도로를 훌쩍 건너뛰어선 안 된다는 뜻이다.

▶베르사이유보다 아름다운 궁전 샹티이

파리에서 차로 불과 40여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에 샹티이라는 작은 마을이 있다.

여기에 가면 베르사이유 궁전의 모델이 됐던 샹티이 성을 만날 수 있다.

드라마 '파리의 연인'에 등장하면서 국내에 알려지기 시작한 이곳은 축구 선수 호나우두가 결혼식을 올린 곳으로도 유명하다.

인공호수를 조성해 마치 물 위에 뜬 것처럼 보이게 만든 성의 조경과 화려한 외관이 아름답기 그지없어 여행자들이 베르사이유 궁전보다 더 높은 점수를 주는 곳이다.

프랑스의 고성을 보기 위해 반드시 저 멀리 남쪽에 있는 루아르 계곡까지 가야하는 것은 아니다.

파리 근처에서도 이렇듯 빼어난 고성을 만나볼 수 있기 때문이다.

▶고흐가 생의 마지막 순간 화폭에 담아낸 오베르시르와즈

샹티이에서 핸들을 돌려 서쪽으로 30분만 더 가면 오베르시르와즈가 나타난다.

오베르시르와즈는 빈센트 반 고흐가 생애 마지막 두 달 동안 미친 듯 그림을 그리다 자살한 마을이다.

'오베르의 교회' '까마귀 나는 밀밭' 등 수많은 명작이 여기서 탄생됐다.

여행자들이 흔히 지나치는 곳이지만,고흐의 불우한 삶에 대해 아주 약간의 사전 지식만 있어도 가슴 찡한 감동을 맛볼 수 있다.

고흐가 숨을 거둔 여관과 오베르 교회를 지나 돈멕클라인의 명곡 '빈센트'가 절로 떠오르는 밀밭 사이를 걸어보자.그렇게 한참을 걷다보면 어느덧 돌담 밑에 잠든 고흐와 태오의 무덤을 마주하게 된다.

생전 그림 한 점을 판 게 전부였던 비운의 화가 고흐.그를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곧이어 병사해버린 동생 태오.이들의 유명세와 상반된,지독히도 허름한 묘비 앞에서 보내는 시간만큼은 그 어떤 유럽의 진풍경과도 바꿀 수 없는 값진 경험이다.

▶모네의 고향 지베르니

모네의 정원을 보기 전에는 모네를 이해할 수 없다.

포도밭 구릉 사이로 꾸불꾸불 이어진 국도를 따라 한 시간 정도 더 서쪽으로 달려보자.지베르니에서 인상파 화가로 명성을 떨친 모네의 생가를 찾을 수 있다.

모네의 걸작들은 모두 그가 살던 집의 정원에서 그려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네가 직접 밭을 갈고 씨를 뿌려가며 가꾼 정원을 거닐다보면,나무를 깎아 다리를 짓고 화초를 심는 늙은 화가의 모습이 떠올라 왠지 애틋한 기분이 되어버리고 만다.

지베르니를 방문하기에 앞서 파리 오랑주리 미술관의 '수련 연작'과 오르셰 미술관에 걸린 모네의 작품들을 꼭 감상해두자.그가 일평생 화폭에 옮기려고 애쓴 빛의 마술이 찡하게 와 닿을 것이다.

유럽을 자동차로 여행하면 이렇듯 숨겨진 여행지들을 얼마든지 찾아다닐 수 있다.

물론 이런 식으로 여행을 하다가는 파리 근교에서만 며칠을 허비하게 될지 모른다고 불만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여행이란 연애와 같다.

100명의 애인을 사귀어도 가슴 저린 사랑을 못 느낀다면 그는 불행한 사람이다.

한꺼번에 많은 도시를 섭렵하기보다는,한 군데를 가더라도 가슴에 와 닿는 여행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여행작가 pineapple@hanafo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