梁奉鎭 < 비상임논설위원 >

북핵은 우리 사회의 누구누구가 친북좌파(親北左派) 세력인지를 분명하게 알게 해주고 있다. 핵과 관련,미군 핵과 부안 핵처리장에 대해서는 난리를 치던 인사들과 시민단체들이 북핵에 보여준 너그러운 관용은 미스터리일 뿐이다. 북핵은 또한 국가의제들마저 묻어버리고 있다. 작년 12월 열린우리당이 강행처리한 개정 사학법은 한나라당이 다른 의제와 연계시키며 국회를 공회전(空回轉)시킬 정도로 중요한 의제였다. 하지만 바로 그 사학법 문제가 북핵에 가려 실종·방치되어 있는 것이다.

'개방'이사제를 골간으로 하는 개정 사학법은 '학교법인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거나 손해가 생길 우려가 있다고 인정한 때'로 되어 있던 임시이사 파견 사유를 '학교법인의 정상적 운영이 어렵다고 판단될 때'로 바꿔놨다. 이제 어느 누군가 저의를 가지고 학교를 '시끄럽게' 만들 수만 있으면 교육부는 이를 계기로 학교의 '정상적 운영이 어렵다'고 (자의적) 판단을 내릴 수 있게 됐고 이 같은 판단에 따라 '임시' 관선이사를 파견하여 학교행정에 간섭해가다가 '임시'이사를 '영구'이사로 잔류시키며 학교를 '접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열린우리당의 개정 사학법이 독소조항으로 가득 찼다는 지적은 이 같은 판단주체,즉 교육부의 자의적 판단을 가능하게 활짝 열어놓았다는 데서 기인한다.

중요한 것은 '시끄러운 학교'가 '문제 있는 학교'와 동의어(同義語)일 수는 없다는 점이다. 시끄럽지만 내면을 파고 들어가보면 오히려 진실과 거짓,그리고 선과 악이 뒤바뀌어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친북좌파 세력들처럼 선전선동에 능한 사람들이 반드시 진실에 근거한 사람들이라고 볼 수는 없다는 뜻이다.

목소리 크고 결의에 찬 소수가 자기이익 실현을 위해 음모를 꾸미고 사단을 일으켜 학교를 궁지에 몰아넣고,그런 소요발생의 원인이나 책임소재나 진실을 미처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교육행정 당국이 "우선 면피부터 해놓자"는 식의 책임회피성 정책결정을 내려온 게 현실이다. 이렇게 본의든 아니든 이들 악의적 저의를 가진 기만적 목소리를 비호함으로써 사학의 존엄성과 자율성,그리고 더 나아가 자본주의와 건학이념을 구겨놓는 사례를 발견하는 일은 이제 너무 흔한 일이 되었다.

재단법인이나 학교법인은 그야말로 법인(法人)이다. 법으로 인격화된 주체라는 뜻이다. 따라서 법인행위가 법대로 됐는가에 대한 최종판단은 원천적으로 법원에 귀속되어야 마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정 사학법은 법원의 판단보다는 교육부가 그 법인을 좌지우지할 수 있게 해 놓았다. 무소불위(無所不爲) 교육부의 힘을 빼야 할 시기에 오히려 핵무기 수준의 가공할 무기까지 더 얹어주며 시대에 역행한 것이 열린우리당의 개정사학법이라는 뜻이다.

수도권 K여대의 경우 대법원은 비리 주체로 지목됐던 구 재단 이사장에 대해 "무죄"라고 판단했을 뿐 아니라 '시끄럽게 한 사람들'이야말로 범의(犯意)를 가진 사람들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이 같은 대법원의 최종 판단에도 불구하고 구 재단 이사장을 비리로 내몰았던 사람들이 아직도 학교를 쥐고 흔들고 있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일 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법치가 제대로 서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욱 큰 문제는 이 같은 억울한 사례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서울의 S대,I재단 등으로 번지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이들 악의에 찬 목소리에 현혹되어 임시이사까지 파견했던 교육행정 당국은 스스로의 의사결정에 대한 과오인정이나 시정조치를 적극적으로 취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사학개혁은 후대교육을 제대로 하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자기 자신 또는 주변 패거리를 위한 '일자리 챙기기'여서는 곤란하다. 혹시 사학개혁은 명분일 뿐,아무 것도 모르고 날뛰는 철부지들을 의식화하여 체제전복을 꾀하기 위한 음모가 숨어 있는 것이라면 체제수호를 위해서라도 목숨 걸고 막아야 할 것임은 두말할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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