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孝鍾 < 서울대 교수·정치학 >

올 것이 온 것인가,아니면 와서는 안될 것이 온 것인가. 북한의 핵실험 소식은 그야말로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다. '김정일식 사회주의'를 지키고자 하는 북한정권의 마지막 몸부림인가. 아니면 핵클럽에 가입하고자 했던 평생소망의 표출(表出)인가. 그게 아니라면 대미협상용인가. 어떤 이유든 그토록 핵에 집착하는 것을 보면,'불량국가'와 '비정상국가'의 원형을 보는 듯하다. 북한 핵실험은 선의를 가지고 대했던 남한 주민들에 대한 배신이며 테러행위이다. 웃는 얼굴에 뺨을 때리고 침을 뱉었으니 이보다 더 큰 일이 어디 있는가.

물론 김대중·노무현 정부도 이 문제에 빌미를 제공했다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나그네의 외투를 '강풍'으로 벗기느냐 아니면 '햇볕'으로 벗기느냐 하는 식의 그야말로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이야기를 한 국가의 정책기조로 삼으며 철칙(鐵則)으로 옹호해왔기 때문이다. 이를 조금이라도 반대하거나 비판하면 '냉전세력'이니 '수구'니 하고 몰아세웠다.

그 결과가 어떤가. 대북정책의 총체적 실패가 아닌가. 사실 햇볕정책이란 햇볕도 보낼 수 있고 강풍도 보낼 수 있는 힘을 가진 우월한 상황에서 정부가 반란세력 부류를 대할 때나 의미가 있는 것이지,자신을 지킬 능력도 있고 결의도 충만한 북한과 같은 주권국가에는 무용지물(無用之物)이다.

그 결과 심화되면 심화될수록 남한이 수동적이 되고 반대로 북한이 주도적이 되는 역설적 결과를 초래(招來)한 게 대북포용정책이었다. 도대체 개성공단이니 비료 및 식량지원 등 할 수 있는데까지 다해놓고 뺨 정도 맞은 것이 아니라 생명의 위협까지 당하고 있으니,이 무슨 꼴인가. 대북포용정책자들은 국민을 일부러 속인 것이라고 말하기는 어렵겠지만,스스로를 속인 꼴이다.

"남북관계만 잘되면 다른 것은 깽판 쳐도 된다"는 심리는 단순히 노무현대통령의 마음뿐 아니라 대북정책 관계자들의 마음안에 자리 잡고 있었다. 대북정책과 대내정책을 유기적으로 연계한 것이 오늘날 대북문제나 핵문제가 꼬이게 된 결정적 화근이다. 대북관계에서 여유있게 기다리거나 밀고 당기고 하면서 남북관계를 유연하게 통제할 수 있는 이니셔티브를 가지지 못한 것은 노정부의 '자주민족주의'에서 비롯된 실패라고 할 수밖에 없다.

북한은 이 사실을 정확하게 꿰뚫고 있었기 때문에 남한의 지원을 받으면서도 지원의 규모와 시기 방법을 자신들이 당당하게 일방적(一方的)으로 결정하는 상황이 되었다. 남한의 지원을 받아주는 것이 남한정부에 대한 하나의 협상 '레버리지'가 된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수세(守勢)적 상황 때문에 남북 간에 기본적으로 견지해야 할 이른바 '티포태(tit for tat)'와 같은 '상호주의'를 지킬 수 없었으며,일방적으로 북한에 끌려다니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지금 중요한 것은 노정부의 위기관리능력이다. 이제 어떻게 할 텐가. 많은 국민들은 '수구(守舊)'라는 말까지 듣고 참으면서도 포용정책의 결과 한반도에서 전쟁의 위협이 줄어들었다고 자랑하는 정부를 믿어왔다. 그런데 평소에 한치앞도 내다보지 못하고 낙관론으로 일관하다가 일이 터지고 나서 허둥지둥 하고 있는 정부를 어떻게 믿는가. '대북포용정책'이 '대북유화정책'과 어떻게 다른지 분간하지 못하고,북한이 미사일을 우리를 향해 쏜 것이 아니라 동해를 향해 쏘았다고 실없는 소리를 하는,'소갈머리' 없는 정부를 어떻게 믿는가.

무엇보다 정부는 이 사태에 대해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근거 없는 낙관론(樂觀論)과 '자주민족주의'를 외치면서 정작 문제가 발생했을 때는 뚜렷한 대책이 없는 이 정부의 '아마추어리즘'과 '위기관리무능력'에 화가 나있는 사람들이 많다. 정부가 어떻게 책임을 지고 사태를 수습(收拾)할는지 지켜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