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쿄에 위치한 전자상가 아끼아바라.한국으로 치면 용산 전자상가에 해당하는 이곳은 소니 마쓰시타 등 일본 기업들이 과거 가전 분야의 최강자로 군림할 수 있었던 모태의 역할을했다.

가전제품을 선택하는데 유독 까다로운 일본 소비자들이 신제품이 나오면 앞다퉈 아끼아바라로 몰려들면서 이곳에서 평가를 받아야 글로벌 브랜드로 살아남을수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 기업은 물론 외국 가전업체들도 이곳에 신제품을 내놓고 소비자들의 반응을 초조하게 살펴야했다.

아끼아바라 덕분에 '일본에서 통하면 세계에서도 통한다'는 말이 정설처럼 굳어졌다.

21세기들어 우리의 정보기술(IT) 산업이 급속히 발전하면서 IT제품에 관한한 '한국에서 통해야 세계에서 통한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신제품을 빠르게 수용하는 소비자,초고속통신망 등과 같은 IT 인프라,일정 크기 이상의 시장규모 등 3박자를 모두 갖춘 국가(김재윤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중 하나로 부상하면서 전자제품의 테스트베드가 일본에서 한국으로 옮아오는 양상이 뚜렷하다.

실제로 삼성전자 모토로라 등 세계 주요 휴대폰 제조업체들은 신제품을 시장에 내놓기 전 휴대폰 매니아들이 모여있는 국내 인터넷 동호회 '세티즌'에 테스트폰을 보내 평가를 받는다.

신제품이 출시되고 나서도 세티즌을 모니터링하는 전담자를 따로 두고 게시판에 올라오는 신제품에 대한 평가를 정기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세티즌 임성천 팀장)한국 얼리어답터들의 평가가 그만큼 날카롭고 정확해서다.

실제 소니 니콘 등은 국내에 선보인 카메라가 인터넷 동호회에서 제품의 결함이 발견돼 곤욕을 치룬적이있다.

소니가 지난 2003년 출시한 800만화소 디지털카메라 'DSC-F828'은 사진을 촬영하면 색이 보라색으로 변하는 '색수차'현상이 생긴다는 사실이 밝혀져,'보라돌이 카메라'라는 오명을 썼다.

니콘의 'D70'은 특정 빛 조건하에서 사진을 찍으면 왼쪽은 녹색기가 돌고 오른쪽은 붉은색기가 도는 이른바 '신호등 현상'이 발생한다는 사실도 국내 인터넷 동호회 회원들이 발견한 것이다.

이주현 제일기획 인터랙티브 미디어팀 차장은 "한국은 IT제품에 대한 얼리어답터나 매니아층이 두터워 기업들이 신제품을 테스트하기에 적합하다"고 평가했다.

IT분야뿐이 아니다.

골프클럽도 한국이 이제 세계시장의 중심에 서있다.

이형규 골프코리아 사장은 "한국 소비자들은 상당히 까다롭고 연습이나 라운딩을 열심히 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며 "때문에 주요 골프클럽 제조 업체들은 한국을 '테스트 마켓'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전했다.

전세계 골프클럽 제조업체들이 '한국 소비자들이 만족하면 세계 어디를 가도 통한다'는 생각으로 한국에 제품을 먼저 선보인다는 것이다.

한국산업이 테스트베드로 자리매김하면서 글로벌 기업의 연구개발(R&D)센터 유치 뿐 아니라 일자리 창출에도 적잖은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된다.

한국 시장이 인정받기 시작하면 기업들의 연구개발(R&D)센터나 시험생산을 위한 파일럿 공장 등도 자연스레 따라오게 된다(윤순봉 삼성경제연구소 부사장)는 것이다.

이미 IBM은 지난 2003년에 '유비쿼터스 컴퓨팅 연구소'를,인텔은 2004년에 '홈네트워크 연구소(인텔코리아 R&D센터)'를 한국에 각각 설립했다.

미국 검색포털인 구글도 지난 10일 서울에 R&D센터의 문을 열었다.

하지만 한국의 테스트베드 위상은 아직 걸음마 단계라는게 업계 관계자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기술이나 산업수준에 비해 테스트베드의 역할을 못해내고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세계적인 전시회가 없는 것을 첫번째 이유로 꼽는다.

IT 분야 세계 최대 전시회인 독일 하노버의 '세빗(CeBIT)'에는 매년 7000여개의 기업들이 참가한다.

반면 이 분야 국내 최대규모인 'KES(한국전자전)'에 참가하는 업체수는 450개로 세빗의 15분의 1에 불과하다.

자동차전시회도 벌써 중국의 아류로 전락하는듯한 양상이다.

서울 모터쇼는 참가 업체수(작년기준)는 146개에 불과하지만 상하이 모터쇼의 경우 올해 1036개 업체가 참가했다.

코트라 관계자는 "상하이 모터쇼는 소위 '빅5모터쇼'에는 들지 못하지만 중국시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1급 전시회'로 분류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IT 관련 표준 선정시에도 테스트 베드를 키운다는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도있다.

테스트로서의 역할은 물론 베드로서의 위상도 가져야한다는 얘기다.

김동윤 기자 oasis93@hankyung.com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