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을 앞둔 부산항은 활기를 잃어버린 듯하다. 항만 종사자들은 구조조정이 실시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면서 쓸쓸한 추석을 맞이하고 있다. 추석 때면 부산항의 수출입컨테이너 화물은 물밀듯이 밀려들면서 물동량이 지난해보다 10% 이상 늘 것이라고 희망을 이야기하던 시절은 이미 오래전 일이 됐다. 올들어 부산항이 처리한 물동량 성장률이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올 연말에는 부산항 가동 이래 물동량 성장률이 마이너스를 처음으로 기록할 가능성이 높고,내년 물동량 추이는 더 걱정이다. 부산항을 기반으로 경제도약을 꿈꾸고 있는 부산의 장밋빛 희망은 총체적 위기에 빠져 신음하고 있다.

잘나가던 부산항의 위기는 어디서 왔을까. 우선 정부 탓이 크다. 항만정책이 치밀하지 못한데다 정보수집도 허술했기 때문이다. 부산과 광양을 동시에 허브항으로 개발하는 투포트 정책은 부산항의 허브 기능 상실은 물론 광양항을 비틀거리게 하고 있다. 중국이 상하이 신항을 만드는 동안 해양수산부가 충분한 대처를 하지 못한 점도 부산항에 치명타를 주었다. 이 여파는 여실히 일반화물보다 2.4배 정도 부가가치가 높은 환적화물의 감소로 이어졌다. 부산항의 환적화물이 지난 4월 이후 8월 말까지 연속 5개월 째 줄어들고 있다.

초대형 첨단선박을 유치하기 위해 충분한 수심을 확보해야 한다는 선사들의 요구에 해양수산부가 발빠르게 대처하지 못해 '고급 손님'을 놓친 점이 아쉽다. 머스크라인은 최근 세계 최대규모인 1만1000TEU급 '엠마 머스크'호를 유럽∼극동 항로에 투입하면서 부산을 기항지에서 제외했다. 이 선박이 운항하기 위해서는 수심이 16m 이상 필요한데,부산항은 수심이 15m 이하로 선박기항에 장애가 되기 때문이다.

부산항의 장애물은 첩첩산중이다. 해양수산부와 부산항만공사가 신항 배후지에 물류업체를 유치,신항을 살리겠다는 정책도 연약지반에 발목이 잡혔다. 해양매립은 지반침하가 필연적인데도 항만당국은 이를 감안하지 않았다. 배후물류부지는 결국 지반이 약해 공사비가 평당 수백만원 추가되거나 다른 공법을 택할 경우 안전문제가 우려된다. 신항물류단지∼부산 강서구 녹산공단을 연결하는 견마교는 교각을 지탱하는 말뚝들이 연약지반 때문에 20m 정도 밀려나 붕괴가 우려돼 공정률 85% 상태에서 공사를 중단한 상태다.

신항을 놓고 벌이고 있는 지자체 간의 싸움도 꼴사납다. 부산시와 경남도가 올 연말 완공되는 신항 3선석의 관할권을 서로 차지하기 위해 다투고 있다. 두 시도가 힘을 합쳐도 국제경쟁에서 살아남을까 걱정인데도 신항의 심각한 위기를 느끼지 못하고 있고,해양수산부는 중재력을 상실한 상태다.

이 같은 부산항의 문제점들은 결국 개항 이래 부산항을 최대 위기로 몰아가고 있다. 부산항의 위기는 한국 물류산업 위기나 마찬가지다. 이번 추석을 계기로 항만정책의 기본부터 다시 살펴야 할 것이다. 항만 당국자는 항만을 살릴 수 있는 특단의 조치를 구상하고,부산과 경남도민은 서로 힘을 합치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한다. 내년 추석 때 부산항이 비틀거리는 모습에서 벗어나 힘찬 날갯짓을 하는 선진항으로 탈바꿈했으면 좋겠다.

김태현 사회부 차장 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