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체류중인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창조적 경영'이라는 새 화두를 던졌다.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라'는 말로 요약되는 '신경영' 이후 삼성이 세계 톱 클래스의 경쟁력 확보에 성공했다고 평가하는 이 회장이 더 이상 모범으로 삼을 '벤치마크'가 없고 뒤따르는 추격자들만 존재하는 지금의 상황에 대해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온 끝에 내린 결론이 바로 그것이라고 삼성은 설명한다.

이 회장은 세계 최첨단 정보기술(IT)의 경연장이라고 할 미국 뉴욕 맨해튼의 타임워너센터에서 19일 (이하 한국시간) 가진 전자사장단 회의에서 미국에 진출한 한국의 독자기술 와이브로와 최근 한국에서 발표된 CFT(Charge Trap Flash) 반도체 기술, 디자인과 기술에서 호평을 받고 있는 보르도 LCD TV 등을 '창조적 경영'의 산물로 거론했다.

이 회장은 이어 "창조적 경영을 정착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우수인력 채용과 육성, 과감한 R&D 투자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 회장의 이같은 발언은 지난 2월 귀국 이후 직군별 사장단 회의 등을 통해 강조한 '창조적 경영' 방침이 어느정도 결실을 맺고 있다는 자체 평가와 함께 앞으로도 모멘텀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각고의 노력, 특히 인재와 기술 양면의 투자가 절실히 필요함을 재차 강조하려는 의도로 삼성 관계자들은 풀이하고 있다.

이 회장은 5개월간의 체류 끝에 지난 2월 귀국한 이후 전자, 금융, 독립계열사 등 직군별 사장단 회의를 잇따라 열고 "과거에 해온대로 하거나 남의 것만 카피해서는 절대로 독자성이 안 생겨나므로 모든 것을 원점에서 보고 새로운 것을 찾아내는 창조적 경영에 나서야 한다"고 경영진에 주문한 바 있다.

이 회장은 이와 같은 '창조적 경영'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경영시스템과 경영인력이 창조적이 돼야 한다"고 지적하고 특히 '창조적 인력' 확보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이 회장은 "선진기업은 먼저 글로벌화한 세계에서 일류 인재를 확보하고 있는 기업이므로 이를 앞서기 위해서는 글로벌하게 판매하고 디자인하고 개발도 할 수 있는 글로벌 인재의 확보가 중요하다"면서 "창조적으로 사고할 줄 아는 우수인력의 채용과 양성을 위해 CEO들이 분발해줄 것"을 당부했다.

이처럼 거듭된 이 회장의 요구에 따라 당장 뉴욕에 집결한 전자 CEO들에게는 현지 글로벌 인재의 확보라는 '발등의 불'이 떨어졌다.

이기태 정보통신, 황창규 반도체, 최지성 디지털미디어 사장 등 삼성전자 CEO들은 이미 염두에 두고 있던 세계 톱 클라스 기술인재들을 이번 미국 체류기간중 면담하는 등 인재확보에 총력을 기울일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장 스스로도 '창조적 경영'을 실현하기 위한 더욱 구체적인 구상에 몰두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1993년 일본과 독일에서 잇따라 개최된 사장단 회의 이후 '신경영'의 시발점이 된 '프랑크푸르트 선언'이 나오는 등 이 회장이 해외에서 숙고한 이후 삼성 경영의 큰 전환점이 마련됐다는 점에서 그의 이번 미국 체류에도 재계의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20일 뉴욕에서 코리아소사이어티가 수여하는 '밴 플리트상'을 수상하는 이 회장은 그 이후에도 당분간 미국에 체류하면서 경영구상에 몰두할 것이라고 삼성측은 전하고 있다.

큰 전환기에 이 회장이 늘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글로벌 업계 지도자와 정보기술분야(IT) 분야 석학 등 각계각층 사람들을 만나 나누는 대화가 '결단'의 밑바탕이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그러나 삼성측은 이 회장의 동선과 접촉면을 철저히 감추고 있다.

이 회장의 일거수 일투족이 기업의 운명에 직결될 뿐만 아니라 그가 누구를 만나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에 대한 단순한 정보가 '수십억달러짜리' 기업기밀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서울연합뉴스) 추왕훈 기자 cwhyn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