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혁신기법이 너무 많다. 기업 혁신에 도움을 주는 정도가 구별돼야 한다." (이명환 동부그룹 부회장)

"혁신은 받아들이는 주체의 방향감각이나 수준을 고려하지 않으면 마찰이 더 커질 수도 있다." (황원철 포스렉 사장)

"대학시절부터 가장 오래 들어온 단어가 혁신이다.IBM이 최근 들어 혁신을 강조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송자 대교 회장)

지난 15~16일 제주도 서귀포시 나인브릿지리조트에서 열린 'IBM CEO 포럼'은 내로라 하는 혁신 리더들이 모인 자리답게 열띤 토론이 인상적인 행사였다.

기업과 국가 차원에서 혁신을 어떻게 가속화할 것인가에 대해 자유롭게 의견을 교환한 토론회에서 최고경영자(CEO)들은 혁신에 대한 압박과 장애물들이 업종과 영역에 관계없이 비슷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영역이 깨지고 있다

혁신의 화두와 관련해서는 업종 간 영역 파괴를 큰 변화로 보는 시각이 많았다. 이종철 STX팬오션 사장은 "정보기술 발전으로 이제까지 전문 해운선사만 갖고 있던 해운 파생상품 운영기법들이 범용화되면서 모건스탠리나 메릴린치 등 금융회사들이 경쟁자로 등장하고 있다"며 "올 들어 회사 구성원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95% 이상이 이에 대해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이 사장은 "앞으로 개별 산업이 독자적으로 생존하는 것은 어렵다"며 "혁신에 대한 산업 간 연계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휘성 한국IBM 사장은 "최근 모병원 워크숍에서도 의료와 금융서비스가 유사한 부문이 많다는 의견에 동의하는 의료전문가들이 많았다"며 "다른 영역의 가치요소들이 결합돼 혁신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전망했다.

장절준 에스콰이아글로벌 사장은 "제화업계의 경우 그동안 일부 업체들이 과점하면서 변화가 이뤄지지 않아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다른 영역의 성공 사례에서 혁신기회를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닉 도노프리오 IBM 수석부사장은 "IBM은 지난 80년대 수많은 첨단기술을 보유했음에도 불구하고 고객의 가치가 어디로 이동하는지 집중하지 않아 위기에 처했었다"며 "우리 업종 뿐 아니라 경제,사회,정부,학계가 다루는 문제들을 이해해야 해결책이 도출된다"고 조언했다.

그는 "당시의 실패 경험을 바탕으로 고객사와 협업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마이크로소프트와 게임기인 X박스,소니와 셀 프로세서를 만든 게 대표적인 사례"라고 덧붙였다.

○혁신문화 정착이 먼저다

이번 포럼에서는 "조직 내 혁신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많은 반발에 직면하고 있다"며 "먼저 이를 받아들일 수 있는 문화 정착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많았다.

박종응 데이콤 사장은 "혁신은 종업원 스스로가 필요성을 느껴야 일어나는 것"이라며 "다른 기업을 흉내내는 혁신은 성공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손병두 서강대 총장은 "시장의 관점에서 버려야 할 요소임에도 불구하고 과거에 잘하던 것이기 때문에 그곳에 투자하면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배영호 코오롱 사장은 "공부하려는 의지는 있는데 잘 몰라서 헤매는 학생은 결국 성공하지만 공부할 마음이 없는데 억지로 가정교사를 붙인 학생은 성공 확률이 매우 낮다"며 "전사적 변화운동에 앞서 먼저 조직문화를 혁신 친화적으로 만드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서남표 KAIST 총장은 "혁신 자체가 조직의 모든 목적을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어야 한다"며 "그러기 위해선 디자인 역량이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주먹구구식으로 혁신을 하면 목표 달성을 위해 여러가지 노력을 기울이는 과정에서 모순되는 결과가 나올 수 있기 때문에 처음부터 제대로 디자인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적절한 혁신 추진 시기를 어떻게 파악할 수 있는가"라는 최진용 일진전기 사장의 질문에 이휘성 사장은 "지금 하고 있는 방법으로 성장 목표달성이 불가능하다면 그 때가 바로 혁신해야 할 때"라고 답했다. 도노프리오 수석부사장은 "해야 할 것(to do)과 하지 말아야 할 것(not to do)을 아는 변별력을 갖추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민.관.언 혁신 추진기구 필요

CEO들은 국가혁신도 공급자가 아닌 수요자 주도로 바뀌어야 한다는 데 공감하고 기업,대학,정부,언론이 참여하는 범국가적 혁신추진 기구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조영주 KTF 사장은 "통신분야의 경우 IT839 등 정부주도의 정책이 비교적 성공을 거뒀으나 정부 주도 정책보다는 민.관의 협력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된다"고 말했다.

정갑영 연세대 부총장은 "민간과 언론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가칭 KII(Korea Innovation Initiative)를 만들어 범국가적인 혁신 캠페인을 벌이자"고 제안했다.

이상규 인터파크 사장은 "11년 전 국내에서 처음으로 이커머스(전자상거래) 사업에 진출했는데 산업 규모가 14조원으로 클 때까지 정부의 도움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며 "혁신협력체가 만들어지면 신산업에 대해서도 사회적인 인프라구축이 가능해 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종두 포항강판 사장은 "기업,언론,정부 등이 공동으로 혁신을 추진하자는 제안은 매우 바람직하다"며 "하지만 현실적으로 가능한 문제부터 푸는 방식으로 접근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허정석 일진중공업 대표는 "기업,정부의 혁신 목적은 다르지만 내용은 공유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며 "방법론에 대해선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귀포(제주)=송대섭 기자 dss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