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HE WALL STREET JOURNAL 본사 독점전재 ]

영국발 미국행 여객기를 폭파하려던 23명의 용의자들이 체포되기 몇 시간 전,존 라이드 영국 내무부 장관은 안보와 테러리즘에 대한 연설을 하고 있었다.

그는 다소 격앙된 목소리로 "각종 위협들을 제일 먼저 인식하고 감시해야만 하는 사람들이 제 임무를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최근 '스펙테이터' 잡지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영국 사람들은 각종 위협을 인식하고 있는 듯하다.

조사 대상이었던 1696명의 영국인 가운데 73%가 서양 세계와 아랍의 테러리스트들이 전쟁 중이라는 데 동의했다.

많은 고위 정치인들이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들을 그들은 명백하게 인지하고 있는 듯하다.

지난 10일 테러 음모가 발각된 이래 일부에서는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의 외교적 정책에 대한 비난이 일었다.

또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은 이슬람 세계에서 신식민주의 활동을 벌이는 사악한 서양의 행동을 중지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다행히도 영국 사람들은 이런 난센스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스펙테이터의 조사에 따르면 절반 이상의 영국인들은 더욱 강력한 외교 정책이 테러를 막는 적절한 해결책이라고 믿는다.

또 69%의 영국인들은 재판이 없이도 90일동안 테러 용의자들을 경찰이 잡아둘 수 있도록 지지했다.

이번 테러 음모가 수포로 돌아간 이후 영국인들의 대테러 의식이 더욱 확고해졌다는 것은 좋은 뉴스다.

하지만 나쁜 뉴스도 있다.

단지 14%의 영국인들만이 미국과의 긴밀한 교류를 지속해야 한다고 답변한 것이다.

반면 45%는 영국이 유럽의 다른 나라들과도 가까이 지내야 한다고 답했다.

EU는 현재 8만여명 규모의 유럽 군대를 창설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고,지난달 있었던 한 회의에서는 회원국의 찬성 아래 군 파병도 가능하도록 제안됐다.

이번 조사의 결과는 영국인들이 영·미 관계에 환멸을 느끼고 있으며 점점 더 안보 협력 등을 강화하고 있는 EU 쪽으로 애정이 옮겨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영국은 이전에는 유럽 통합에 반대하는 입장이었고,현재 유로 가입국도 아니다.

하지만 영국은 이제 미국보다는 유럽 지향적으로 변하고 있다.

존 프레스콧 영국 부총리는 최근 부시 대통령의 중동 정책을 쓰레기라고 비판했다.

또 진실이든 아니든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가 부시 대통령의 아첨꾼이 됐다는 믿음은 영국인들의 분노를 자아내 왔다.

서유럽과 미국의 군사·정치·경제의 긴밀한 교류를 주장하는 범대서양주의자로서는 매우 안타깝지만 양국의 관계가 쇠퇴기에 있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그러나 돌이킬 수 없는 건 아니다.

영국인들은 부시 대통령을 싫어하지만 그 다음 대통령까지 싫어하는 건 아니다.

양국의 관계는 치유되고 경제·문화·국방 등의 교류는 살아날 수 있다.

친구 사이의 뾰로통함은 생겼다가도 없어지는 것이다.

지금 중요한 것은 영국인들이 테러에 대한 위협과 혼란 속에서도 과거의 안정을 되찾아가는 것이다.

한 나라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정치인들보다도 보통 사람들일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정리=안정락 기자 jran@hankyung.com


◇이 글은 미국의 시사 잡지 스펙테이터(Spectator)의 편집장인 매튜 단코나(Matthew d'Ancona)가 최근 월스트리트저널에 기고한 '어느 특별한 관계(A 'Special' Relationship)'란 제목의 칼럼을 정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