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현 < IT부장 >

친구랑 딱지치기를 했는데 그날은 재수가 없었던지 다 잃고 말았다.

너무 분해 꼼짝 말고 기다리라고 반 협박을 해놓고 집으로 달려가 딱지를 모두 가져왔다.

그런데 내 딱지는 다시 친구 주머니로 속속 들어갔다.

믿었던 '왕딱지'가 뒤집히고 마지막 딱지마저 넘어갔을 땐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집에 가야 한다"며 돌아서는 친구가 왜 그렇게 밉던지….

성인오락실(게임장) 도박게임에 빠져 큰 돈을 날린 사람의 심정은 이보다 수백배,수천배 처참했을 것이다.

통장 털고 전세금을 날린 아저씨,적금까지 깨고 덤볐다가 다 털린 아주머니,등록금을 모두 잃은 대학생….오죽하면 "게임장 폭파하겠다"고 할까.

40대 후반의 한 남자는 재산을 탕진하고 결국 자살을 택했다.

도박게임 피해자의 분노는 딱지 잃은 아이의 분함과는 차원이 다르다.

아이는 단지 패배를 인정하기가 싫었을 뿐이다.

그러나 게임장에서 돈을 날린 사람에겐 억울한 것 투성이다.

'마약 게임'으로 돈을 앗아간 사업주,사기가 판칠 수 있게 법제를 만든 정부와 국회,감독을 안한 당국까지 용서하기 어려울 것이다.

피해자들은 도박게임도 딱지치기와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해 덤볐는지 모른다.

운 좋으면 따고 아니면 잃고….옆 테이블에서 250만원짜리 '잭팟'이 터지는 걸 봤으니 언젠가는 터질 것이라고 믿었을 것이다.

하지만 딱지치기와 도박게임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딱지치기는 일종의 '경기(game)'다.

실력이 같다면 이길 확률이 50%다.

하지만 도박게임이란 원래 딸 확률보다 잃을 확률이 월등히 높다.

그런데 이제 보니 게임장 게임은 '도박'도 아니었다.

'짜고 치는 고스톱'이었고 '사기'였다.

옆자리에서 터진 잭팟은 각본에 의한 것이었고,카운터 아가씨는 일부러 소리 높여 "32번 테이블 250만원짜리 터졌습니다"라고 방송해 바람을 잡았다.

마음만 먹으면 게임 프로그램을 조작할 수 있다니 사기가 아니고 뭔가.

경기에서 공정성은 기본이다.

공정하지 않으면 경기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월드 스타라도 잘못을 했다면 레드카드를 보여주고 운동장에서 나가게 해야 한다.

그런데 도박게임장엔 아예 심판이 없었다.

심판은 없고 사기꾼만 우글거렸다.

도박게임장 사태에 대해 현 정권 고위 인사들이 보인 태도는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지금은 "게이트가 아니다"고 당당하게 말할 때가 아니다.

"대통령이 사과해야 한다"는 말에 "진상부터 조사해야 한다"고 대꾸할 일도 아니다.

전국이 도박판으로 변해 수많은 서민이 피눈물을 흘렸는데 이러면 정말 곤란하다.

도박게임장 파문에 청와대 행정관까지 연루된 것으로 밝혀지면서 정치권에서는 '권력형 비리'니 '정책 실패'니 하며 공방전을 벌이고 있다.

권력형 비리인지 아닌지는 더 수사해 봐야 알 수 있겠지만 정책 실패인 것만은 확실하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오직 하나.

진상을 철저히 조사해 사기에 연루된 사람들을 처벌해야 한다.

그래야 비슷한 일이 재발하지 않는다.

다만 차세대 먹거리로 꼽히는 게임산업 육성 의지까지 꺾이지 않았으면 한다.

진상 조사와 산업 육성을 병행하는 게 어렵진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