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오염에 대한 경고,가족애,서민생활의 고달픔,권력에 대한 풍자,교묘하게 은폐되는 진실,컴퓨터그래픽으로 만들어낸 거대한 볼거리.영화 '괴물'엔 이처럼 개인의 문제 및 시대와 사회의 관심사가 고루 다 들어 있다.

다양한 연령층의 관객을 끌어모을 만한 흥행코드들을 잘 버무린 셈이다.

미군이 하수구에 쏟아부은 포름알데히드가 한강의 물고기를 괴물로 만들었다는 설정은 은근슬쩍 반미감정을 건드리고,"자식을 잃은 사람에게선 냄새가 나,속이 문드러져 썩는 냄새"같은 대사는 부모애를 자극한다.

애타는 하소연을 무시한 채 주인공을 정신병자로 모는 일은 서민의 공분을 자아낸다.

끝까지 진실을 파묻는 관계당국의 태도는 음모론에 대한 흥미를 더하고,50억원을 들였다는 괴물의 캐릭터는 컴퓨터그래픽의 산물로 믿기 어려울 만큼 정교하다.

연일 관객동원 기록을 경신중인 '괴물'의 주목거리는 이밖에도 많다.

내용을 비밀로 하고 해외에서 먼저 공개하는 등의 기법은 또하나의 마케팅 교본이 될 참이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 난 관객들의 얼굴이 죄다 밝지만은 않다.

시종일관 긴장 속으로 몰아넣어서 그런지 다른 이유가 있는 건지 알 수 없지만 극장을 나선 관객 상당수는 아무 말이 없다.

한국 영화사상 최단기간에 1000만명을 넘길지도 모른다는 식의 관객몰이에 대한 시각도 엇갈린다.

이런 식의 스크린 및 관객 싹쓸이가 계속되면 과거 할리우드 영화에 밀려 그랬던 것처럼 애써 만들어봤자 상영되지 못하는 작품이 늘어나리라는 것이다.

결국 삶의 근본을 다루는 중소 규모 작품은 설 자리를 잃을 테고 이는 한국 영화계의 다양성 축소 내지 퇴보로 이어질지 모른다는 얘기다.

할리우드 대작과 견줄 만한 블록버스터가 나오는 건 기쁘다.

'괴물' 덕에 한동안 내려갔던 한국영화 객석점유율도 올라갈 것이다. 하지만 같은 감독이 만든 '살인의 추억'의 탄탄한 구성과 전개를 보며 느꼈던 우리 영화의 앞날에 대한 든든함 대신 왠지 쓸쓸한 마음이 드는 건 혼자만의 기우 탓인가.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