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승윤 < 경제부 차장 >

정부와 집권여당은 올해 경제성장률 5%를 달성하기 위해 온갖 방책들을 동원할 것 같다.

재정경제부가 올 성장률 목표치를 5.1%로 잡은 것부터가 그런 느낌을 준다.

재경부는 내년으로 넘어가는 불용·이월예산을 최대한 줄이는 방식으로 재정지출을 늘려 올해 경제성장률을 5% 이상으로 끌어올릴 방침이다.

집권여당인 열린우리당 정책위 의장인 강봉균 의원은 "(물가가 안정됐는데도) 금리를 올리는 사람들이 도대체 뭐하는 사람들인지 모르겠다"며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에 직격탄을 날렸다.

강 의원의 강력한 경고 때문인지,아니면 북한 미사일 발사실험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한은 금통위는 이달 콜금리를 동결했다.

대다수 연구기관들은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이 5% 정도는 된다고 분석하고 있다.

그런데도 경제성장률이 줄곧 5% 밑을 맴돌자 참여정부는 경기확장적인 대책들을 잇따라 쏟아냈다.

재정을 조기집행하고,추경예산을 편성하고,정책금리를 인하하고,환율을 인위적으로 끌어올리는 등 수많은 정책들이 번갈아 경기 부양에 동원됐다.

그 결과 정부의 경제정책은 어느새 '지원' 일색으로 바뀌어 버렸다.

영세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인에 대한 각종 재정·세제 지원과 저소득층에 대한 복지예산 지출 등이 대표적이다.

생산성이 낮은 부문을 합리화하고 경쟁력이 취약한 부문의 노동력과 자본을 고생산성·고부가가치 분야로 옮겨야 한다는 정부 차원의 고민은 더 이상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불황은 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안겨주지만 경영혁신과 생산성 향상을 이끌어내는 '위장된 축복'이기도 하다.

미국의 저명한 경제학자였던 슘페터가 말했듯 '창조적 파괴'와 '혁신'은 불황기에 찾아오질 않던가.

비바람이 몰아치는 날이 있어야 햇살이 드는 쾌청한 날이 온다.

경기의 자연치유 능력을 믿지 않고 영양제만 계속 주입하다 보면 호황다운 호경기를 구경할 수 없게 된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얼마전 시장진입 규제를 절반으로 줄이면 잠재성장률이 연평균 0.5%포인트 올라갈 것이라는 보고서를 낸 적이 있다.

규제들을 걷어내 기업과 개인들이 자유롭게 뛸 수 있는 여건만 만들어준다면 잠재성장률을 5%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게 많은 경제학자들의 주장이다.

어느 한 해의 성장률이 5%를 밑돌더라도 중장기적으로 평균 5% 이상 성장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낸다면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대통령 선거가 있는 임기말이 가까워질수록 정부는 5%라는 표면적인 숫자를 손쉽게 달성할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마련이다.

고통과 인내를 요구하는 생산성 향상이나 이해관계자들의 반발을 초래할 수 있는 규제완화를 외면하는 대신 재정·통화정책에 집착할 가능성이 커진다는 얘기다.

12일 인사청문회에 나서는 권오규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내정자는 "거시경제정책을 확장적으로 바꾸는 것은 나중에 큰 부작용을 야기할 수 있다"는 내용의 청문회 서면답변서를 제출했다고 한다.

다행스런 일이다.

하지만 그가 대선이 임박해서도 5%의 함정에 빠져들지 않을 정도로 심지가 굳은지는 더 지켜볼 일이다.

hyuns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