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제시문을 읽고 논제에 답하시오.

[ 문항 1 ]

<제시문>

(가)

모 전자회사는 일 년 전에 2년 동안 6억원의 예산을 투입하여 새로운 모델의 냉장고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그 시점에서는 이 제품이 완성되었을 때, 투자한 금액의 15%~20%의 수익이 15년 동안 매년 발생할 것으로 예상하였다.

그러나 1년 동안 2억원을 사용한 후에 다시 살펴보았더니, 개발 초기에 예상치 못한 환경 관련 비용의 증가로 인해 개발비용이 총 7억원으로 늘어나게 되었다.

또한 경쟁사가 동일한 신제품을 개발하여 연간 예상수익률도 2년차 예산의 8%로 낮아졌고, 더구나 10년 후에는 이 제품의 경쟁력이 사라질 것으로 평가되었다.

(나)

어느 나라의 국방부가 레이더에 걸리지 않는 비행기를 개발하기로 하였다.

이를 위해 먼저 총 1,000억 원을 투자하여 레이더의 추적을 피할 수 있는 핵심부품을 만들기로 하였는데, 현재까지 900억 원을 사용하였다.

그런데 다른 나라의 회사가 이와 동일한 기능을 갖고 있으면서도 더 쉽게 장착할 수 있는 부품을 제작하여 판매하기 시작하였다.

(다) 새만금 간척사업

<농림부와 농어촌진흥공사의 연구 결과>

1. 새만금 간척사업으로 여의도 땅의 140배에 해당하는 국토가 생기면 21세기의 새 로운 산업 용지를 만들 수 있다.

2. 농어촌 용수, 생활용수, 공업용수 등으로 한 해 10억 톤의 물 자원을 확보할 수 있다.

3. 국제 휴양 관광단지를 개발하는 데 최상의 조건을 가진 곳이며, 관광자원 및 자연 학습공간을 제공하게 된다.

4. 첨단 농업시범단지를 만들어 국제경쟁력을 키울 수 있다.

5. 간척 사업은 교통이 불편한 해안 지역을 방조제로 연결하여 지역 주민과 국민 생활 에 많은 편리함과 이로움을 제공할 것이다.

따라서 새만금 간척사업으로 얻을 수 있는 사회?경제적 효과가 크므로 간척 사업을 추 진해야 한다.

<환경부의 연구 결과>

충남 홍보지구, 전북 군장지구, 경기도 대부도 남리, 영종도 지구 등 4대 갯벌 지역을 보전했을 때의 생산성 연구결과 (1에이커 당)

1. 갯벌에서 생산되는 김,조개 등 수산물 ; 365만 3,000원

→ 매립하여 농경지를 조성했을 때에 예상되는 농산물의 생산성 247만원에 비해 48%나 많음

2. 인근 연안 해역의 어류 서식지로서의 가치 ; 283만 4,000원

3. 갯벌의 자연정화능력 ;152만 2,000원 (정화시설 설치비용)

4. 습지의 심미적 기능 ; 생태적 다양성과 흥미에 따른 생물 실험실, 오락지, 생태교육 장 등으로 활용 → 16만원

5. 이들 4대 지역 갯벌을 그대로 보전했을 때의 생산성은 816만 9,000원

→ 농경지로 사용했을 때에 예상되는 생산성보다 3.25배 높음

갯벌은 영구적인 재화와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개발에 따른 상업적 이용 가치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갯벌의 개발에 따른 이익이 매우 크지 않다면 갯벌을 보전해야 한다.

(고등학교 『사회』『문화』교과서)

(라) 영월 다목적댐 (동강댐) 건설

< 찬성론 >

1. 홍수 조절 ; 수도권 및 남한강 지역 홍수피해를 경감하는데 충주댐 하나로는 부족함

2. 물 부족 사태 해결 ; 2011년 11억 톤의 물 부족이 예상됨

3. 외국에서도 석회암 지대에 54개의 댐이 있듯이 안전한 댐 건설이 가능함

4. 진도 6.6의 지진을 견딜 수 있는 댐 건설이 가능함

5. 서식처의 변화를 통해 희귀종의 멸종을 방지함

6. 댐 건설 후 새로운 생태계의 형성으로 생물종의 다양성이 증가함

7. 댐 건설로 새로운 비경이 형성되며 유명 동굴은 원형을 보존할 수 있음

< 반대론 >

1. 석회암 지대에다 지진 다발지역이므로 사면이 붕괴할 수 있음

2. 동굴로 인한 지하누수 가능성이 있음

3. 멸종 위기의 천연기념물 등 희귀 동식물이 수몰되어 생태계가 파괴됨

4. 물 부족 해소는 물 절약 캠페인을 통해 해결하거나 대안을 강구해야 함

5. 홍수 방지는 기존 댐으로 충분함

6. 동강 상류에 소형 댐을 건설하는 것이 더 효율적임

7. 탄광수의 유입 및 물의 정체로 수질이 악화됨

(고등학교 『사회』『사회ㆍ문화』교과서)


논제 1. 제시문 (가)와 (나)에서 학생이 회사의 사장 혹은 국방부의 정책 결정자라고 했을 때, 진행 중인 사업을 계속할지 여부에 대하여 판단하고 그 근거를 제시하시오.

논제 2. 제시문 (다)와 (라)에서 두 사업에 대한 논란이 생겼을 때, 과거 수년 전부터 진행된 새만금 사업에는 이미 막대한 비용이 투자되었고, 영월 다목적댐 건설 사업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었다.

결국 새만금 사업은 계속 진행하기로 하였고, 영월 다목적댐은 취소되었다. 이미 투자된 비용을 논외로 했을 때, 이와 같은 결정을 내리게 된 이유를 논술하시오.

논제 3. 제시문 (가)~(라)가 보여주는 선택의 상황에는 여러 가지의 판단 기준이 적용될 수 있다.

각각의 판단 기준이 서로 충돌할 때 어떻게 해결할지 구체적인 예를 들어 논술하시오.


[ 문항 2 ]

<제시문>

(가)

매화 또한 초목의 일종이나 가장 그려내기 어렵다.

대개 그 가지와 줄기가 굴곡져 용과 뱀이 뒤엉킨 모습처럼 된 것은 매화의 참 모습이 아니다.

풍기는 분위기가 왕성하고 향기롭게 흘러넘침이 마치 달빛이 밝게 비치고 눈발이 흩날리는 것 같음을 헤아려 깨닫고 마음으로 터득하는 것이 매화의 참 모습이므로 가지나 잎의 처리는 논할 게 못 된다.

옛날에 내 친구 이자야(李子野)가 등불 아래 벽에 비치어 나타난 매화 그림자를 그린 적이 있는데, 그 형상이 부은 듯 부풀어 오르고 울퉁불퉁한 모습이어서 매화인 줄 알지 못하겠으나, 풍기는 분위기만은 제법 옮겨내었으므로 매화가 범상치 않은 화훼임을 알았다.

내가 손뼉을 치면서 껄껄 웃자, 자야가 달가워하지 않으며 말하기를 "이것이 소동파(蘇東坡)가 등불을 마주하고 말의 그림자를 그린 것보다 낫지 아니한가? 내가 아무런 생각 없이 펼쳐내어 자연스런 분위기가 그대로 드러나 있다"라 하였다.

나는 말하기를, "그렇겠다. 나는 그림 그릴 줄 모르니 매화의 운치[趣]를 어찌 알겠는가? 운치도 알지 못하거늘 매화의 본성[神]을 어찌 알겠는가?"라 하였다.

본질적인 특성[神]은 매화에 있는 것이지만 운치를 느끼는 것은 나에게 달려 있는 것이다.

단순히 대상물로서 대상을 바라본다면, 매화와 나는 아닌 게 아니라 과연 서로 다르다.

그러나 상리(常理)로서 대상을 바라본다면 나와 매화는 같지 않은 것도 아니다.

나는 그것을 논리적으로 이해할 줄만 알았지, 그 운치 있는 분위기를 파악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내가 온통 티끌과 먼지로 뒤덮인 세상에서 그 마음속은 더럽혀지지 않도록 한다면, 상쾌한 정신과 빼어난 맑음으로 충만한 매화에게서 나의 운치를 북돋울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운치를 이미 터득했다면 그것은 본질적 이해에 도달했다고 할 수 있다.

본질적 이해에 도달한 자는 매화에 대해서 붓을 잡는 일을 기다리지 아니하고도 바로 해 낼 수 있는 것이거늘, 하물며 그 가지와 잎을 따지겠는가?

(권헌權憲, 묵매기墨梅記)

(나)

소동파의 시에 "그림을 그리되 겉모습만 같게 하면 된다고 하니, 이런 소견들은 어린 아이와 다를 것이 없다.

시를 짓는 데 앞에 보이는 경치만 읊는 것도, 시의 본뜻을 알고 짓는 이가 아니다"라고 하였다.

후세에 화가들이 이 시를 종지(宗旨)로 삼고 진하지 않은 먹물로 그림을 거칠게 그리니, 이는 물체의 본질과 어긋나게 된 것이다.

지금 만약 "그림을 그리되 겉모습은 같지 않게 해도 되고, 시를 짓되 앞에 보이는 경치를 읊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면, 이치에 맞는 말이라 할 수 있겠는가? 우리 집에 동파가 그린 묵죽이 한 폭이 있는데, 가지와 잎이 모두 산 대나무와 꼭 같으니, 이것이 소위 틀림없는 사진(寫眞)이란 것이다.

정신이란 모습 속에 있는 것인데, 모습이 이미 같게 되지 않는다면 정신을 제대로 전해낼 수 있겠는가?

동파가 이렇게 시를 읊은 것은 대개 "겉모습은 비슷하게 되어도 정신이 나타나지 않으면 비록 이 물체가 있다 할지라도 광채가 없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나도 말하기를 "그림이란 정신이 나타나야 하는데, 겉모습부터 같지 않게 되었다면 어찌 같다 할 수 있겠으며 또 광채가 있어야 하는데 딴 물건처럼 되었다면 어찌 이 물건이라 할 수 있겠는가?"라고 한다.

(이익李翼, 논화형사論畵形似,성호사설星湖僿說 권5)


논제 1. 제시문 (가)와 (나)는 조선시대 문인들의 그림에 대한 견해를 보여주고 있다.

그들이 그림을 창작하고 감상하는 데 있어서 중요하게 생각했던 요소가 무엇인지 서술하시오.

논제 2. 두 산수화(그림1, 2)는 안견(安堅)의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와, 정선(鄭敾)의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이다.

논제 1의 논의를 바탕으로 두 그림을 비교 감상하시오.

그림 1. 안견, <몽유도원도>, 1447년

그림 2. 정선, <인왕제색도>, 1751년



[ 문항 3 ]

<제시문>

(가)

주어진 자료는 김정호가 1857년에 그린 「동여도」의 일부이다.

노란색 원은 조선시대 군현의 중심지(읍치 ; 邑治)이다.

청색 선은 정선부터 서울까지 이어지는 남한강으로 조선시대 강원도와 충청북도 지역의 화물을 수송했던 주요 교통로이다.

붉은 색은 서울에서 강릉을 거쳐 평해까지 이어지는 관동로(제3로)와 서울에서 부산까지 이어지는 제4로의 일부를 그린 것이다.

진한 회색은 경부 철도의 일부로서 조선시대 교통로와 비교하기 위해 「동여도」위에 개략적으로 그려 넣었다.

(나)

조선 후기에 들어 포구가 새로운 상업 중심지가 되었다.

포구의 상거래는 장시보다 규모가 훨씬 컸다.

종래의 포구는 세곡이나 소작료를 운송하는 기지의 역할을 했으나, 18세기에 이르러 상업의 중심지로 성장하였다.

포구를 거점으로 선상, 객주, 여각 등이 활발한 상행위를 하였다.

선상은 선박을 이용해서 각 지방의 물품을 구입해 와 포구에서 처분하였는데 운송업에 종사하다가 거상으로 성장한 경강 상인이 대표적인 선상이었다.

그들은 한강을 근거지로 하여 미곡, 소금, 어물 등을 거래하였다.

한편, 객주나 여각은 각 지방의 선상이 물화를 싣고 포구에 들어오면 그 상품의 매매를 중계하고, 부수적으로 운송, 보관, 숙박, 금융 등의 영업도 하였다.

객주와 여각은 지방의 큰 장시에도 있었다.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

(다)

일본은 대륙 침략을 위해 우리나라의 남북을 연결할 철도 부설에 주력하여, 결국 서울과 부산, 서울과 의주, 서울과 인천을 잇는 철도부설권을 모두 확보하였다.

이 가운데 특히 경부선은 우리의 근대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일본 자본가들은 '경부철도주식회사'를 설립하여 1898년 「경부철도합동」을 체결하고 1905년 경부선을 개통시켰다.

경부선의 시발점과 종점은 한강-낙동강 수로와 동일하다.

혹자는 경부선과 한강-낙동강 수로의 경유지가 다르기 때문에 경부선이 남한강 수운에 치명적인 타격을 주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경부선이 개통되면서 한강-낙동강 수로의 좌측 배후지가 잠식당하게 되었다.

더구나 일제는 경부선을 주축으로 하여 한강-낙동강 수로 방향으로 분기하는 동서횡단철도를 잇달아 건설하였다.

예를 들어 1925년 천안에서 안성까지 철도를 부설하고, 뒤이어 이 철도를 청미천 유역 곡창지대의 중심지인 장호원까지 연장시켰다.

1928년에는 조치원과 충주사이에 철도를 놓아 남한강 유역 중심도시인 충주를 경부선과 직접 연결시켰다.

또한 1930~31년 수원-이천-여주를 잇는 수려선이 개통되어 경기 내륙 최대 곡창이 경부선과 직결되었으며, 1939~41년 청량리-양평-원주를 잇는 중앙선이 완공되었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 내륙 수로의 기능은 마비되었다.

(라)

철도의 개통은 한반도에서 근대적 공간 구조를 형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전에는 원거리 대량 운송이 수운에만 의존하였지만, 철도가 개통됨으로써 원거리 대량 운송이 수운과 철도 운송이라는 두 부분으로 나뉘게 된 것이다.

특히 철도가 한반도 내륙을 관통하게 됨

으로써 원거리 대량 운송이 수운을 따라 돌아가던 단점을 극복하게 되었고 그 결과 화물 수송에 일대 변혁이 일어났다.

예를 들어 한강 상류지역은 경부선이 개통됨으로써 경상도 북부 지역과의 교환관계를 상실하였는데, 그로 인해 한강 상류 수운은 순전히 지역 물자의 교환이라는 역할로 축소되었다.

한강 중류 지역은 경부선이 경기도 서쪽으로 치우쳐 개통되었기 때문에 이들 지역보다는 영향을 덜 받았다.

하지만 한강 중류지역도 경부선의 영향을 받지 않은 것은 아니다.

경부선이 서해안 해운의 상당 부분을 대체하였기 때문에 서해안 해운 지역과 남한강 수운 지역의 경계선이 경부선과 남한강 수운 지역의 경계선으로 바뀌었다.

이런 이유로 기존에 남한강 수운에 속했던 지역 중 일부가 경부선의 영향권으로 편입되었을 것이다.


논제. 위 제시문과 지도를 바탕으로 철도가 경부선과 남한강 주변에 살던 사람들의 구체적인 삶을 어떻게 변화시켰을지 역사적 상상력을 발휘하여 서술하시오.


[ 문항 4 ]

<제시문>

(가)

새와 짐승도 슬피 울고 바다와 산도 찡그리네.

무궁화 세계는 이미 사라지고 말았구나.

가을 등불 아래 책 덮고 천고(千古)를 생각하니,

인간 세상에 글 아는 사람 노릇하기 어렵기만 하구나.

鳥獸哀鳴海岳嚬

槿花世界已沈淪

秋燈掩券懷千古

難作人間識字人

(황현,절명시(絶命詩), 고등학교 문학)

(나)

나는 이모가 나를 흔들어 깨워서 눈을 떴다.

늦은 아침이었다.

이모는 전보 한 통을 내게 건네주었다.

엎드려 누운 채 나는 전보를 펴 보았다.

'27일회의참석필요. 급상경바람 영.' '27'일은 모레였고 '영'은 아내였다.

나는 아프도록 쑤시는 이마를 베개에 대었다.

나는 숨을 거칠게 쉬고 있었다.

나는 내 호흡을 진정시키려고 했다.

아내의 전보가 무진에 와서 내가 한 모든 행동과 사고(思考)를 내게 점점 명료하게 드러내 보여 주었다.

모든 것이 선입관 때문이었다.

결국 아내의 전보는 그렇게 얘기하고 있었다.

나는 아니라고 고개를 저었다.

모든 것이, 흔히 여행자에게 주어지는 그 자유 때문이라고 아내의 전보는 말하고 있었다.

나는 아니라고 고개를 저었다.

모든 것이 세월에 의하여 내 마음속에서 잊혀질 수 있다고 전보는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상처가 남는다고, 나는 고개를 저었다.

오랫동안 우리는 다투었다.

그래서 전보와 나는 타협안을 만들었다.

한 번만, 마지막으로 한 번만 이 무진을, 안개를, 외롭게 미쳐 가는 것을, 유행가를, 술집 여자의 자살을, 배반을, 무책임을 긍정하기로 하자. 마지막으로 한 번 만이다.

꼭 한 번만. 그리고 나는 내게 주어진 한정된 책임 속에서만 살기로 약속한다.

전보여, 새끼손가락을 내밀어라. 나는 거기에 내 새끼손가락을 걸어서 약속한다.

우리는 약속했다.

그러나 나는 돌아서서 전보의 눈을 피하여 편지를 썼다.

'갑자기 떠나게 되었습니다.

찾아가서 말로써 오늘 제가 먼저 가는 것을 알리고 싶었습니다만 대화란 항상 의외의 방향으로 나가 버리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이렇게 글로써 알리는 바입니다.

간단히 쓰겠습니다.

사랑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제 자신이기 때문에 적어도 제가 어렴풋이나마 사랑하고 있는 옛날의 저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옛날의 저를 오늘의 저로 끌어다 놓기 위하여 있는 힘을 다할 작정입니다.

저를 믿어 주십시오. 그리고 서울에서 준비가 되는 대로 소식 드리면 당신은 무진을 떠나서 제게 와 주십시오. 우리는 아마 행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쓰고 나서 다시 나는 그 편지를 읽어 봤다.

또 한 번 읽어 봤다.

그리고 찢어 버렸다.

(김승옥,무진기행, 고등학교 문학)

(다)

노란 숲 속으로 길이 두 갈래로 났었습니다.

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한동안 서서 한 길이 굽어 꺾여 내려간 데까지.

바라다 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다 보았습니다.

그리고 똑같이 아름다운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그 길에는 풀이 더 있고 사람이 걸은 자취가 적어,

아마 더 걸어야 될 길이라고 나는 생각했던 게지요.

그 길을 걸으므로, 그 길도 거의 같아질 것이지만.

그 날 아침 두 길에는

낙엽을 밟은 자취는 없었습니다.

아, 나는 다음 날을 위하여 한 길을 남겨두었습니다.

길은 길에 연하여 끝없으므로

내가 다시 돌아올 것을 의심하면서…….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프로스트, 가지 않은 길, 고등학교 문학)


논제 1. 제시문 (가)와 (나)에는 고민하는 인간의 모습이 나타나 있다.

글쓴이가 고민하고 있는 상황을 비교하여 설명하시오.

논제 2. 학생이 제시문 (가)와 (나)중 한 상황에서 제시문 (다)와 같은 선택을 해야 한다고 할 때, 그 선택은 어떤 것인지 구체적으로 밝히고, 그렇게 선택한 이유를 논술하시오.


[ 문항 5 ]

<제시문>

과학이 무신론이고 윤리와는 거리가 멀다는 견해는 스페인의 철학자 오르테가 이 가세트가 말하는 '문화인'들 사이에서 과학에 대한 반감을 더욱 부채질하곤 했다.

이 두 가지 반감의 원인이s 타당한 것인지는 좀더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사실 과학자도 신의 존재를 믿을 수 있고, 더 나아가 신의 존재에 대한 과학적 증거를 찾으려 할 수도 있다.

무신론자들에게는 이것이 지루한 과학과 극단적 기독교의 만남 정도로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 같이 저명한 과학자가 분자구조를 이용해서 신의 존재를 증명하려 했던 것을 비웃을 수는 없다.

물론 과학자들 중에는 무신론자도 많이 있다.

동물학자인 도킨스는, 모든 종교는 무한히 복제되는 정신적 바이러스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확고한 유신론자들의 관점에서는 이 모든 과학적 발견 역시 신에 의해 계획된 것을 발견한 것이므로 종교적 지식이라고 할 수도 있다.

따라서 과학의 본질을 무조건 비종교적이라고 간주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과학자나 종교학자가 모두 진리를 찾으려고 한다는 점에서 과학과 신학은 동일한 목적을 추구한다고도 할 수 있다.

과학이 물리적 우주에 관한 진리를 찾는 것이라면, 신학은 신에 관한 진리를 찾는 것이다.

그러나 신학자들이나 혹은 어느 정도 신학적인 관점을 가진 사람들은 신이 우주를 창조했다고 믿고 우주를 통해 신과 만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신과 우주가 근본적으로는 뚜렷이 구분되는 대상이 절대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실 많은 과학자들이 과학과 종교는 서로 대립되는 개념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신경심리학자인 리처드 그레고리는 '과학이 전통적인 믿음을 받아들이기보다는 모든 것에 질문을 던지기 때문에 과학과 종교는 근본적으로 다른 반대의 자세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 바가 있다.

그러나 이것은 종교가 가지고 있는 변화의 능력을 과소평가한 것이다.

유럽에서 일어난 모든 종교개혁운동은 전통적 믿음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시도였다.

과학은 증거에 의존하는 반면 종교는 계시된 사실에 의존한다는 점에서 이들 간에 극복할 수 없는 차이점이 존재한다는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다.

그러나 종교인들에게는 계시된 사실이 바로 증거이다.

지속적으로 신에 관한 증거들에 대해 회의하고 재해석하려고 한다는 점에서 신학을 과학이라고 간주하더라도 결코 모순은 아니다.

사실 그것을 신학이라고 부르기 때문에 신의 존재를 전제로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우리가 본 바와 같이 과학적 연구가 몇몇 과학자를 신에게 인도했던 것처럼, 신학연구가 그 신학자를 무신론자로 만들지 않을 이유는 없다.

과학의 정반대에 서 있는 것은 신학이 아니라 오히려 정치이다.

과학은 지식의 범주에 있지만, 정치는 견해의 범주에 속한다.

정치는 좋아하느냐 마느냐를 문제 삼는 분야로, 단지 말잔치를 통해 진리의 위치로 상승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정치는 인물과 웅변술에 의존하고, 사회계층과 인종, 그리고 민족을 핵심적인 요소로 하고 있다.

이런 모든 것들은 과학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그리고 정치는 갈등을 기반으로 존재하고 적대세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러한 대립구도가 와해된다면 정치는 더 이상 존재할 수가 없다.

즉 완벽한 의견일치를 보이는 세상에서는 정치가 존재할 수 없다.

반면에 과학은 대립이 아닌 상호 협조의 운명을 지니고 있다.

물론 과학사는 지독한 논쟁과 고뇌, 그리고 반대이론의 파괴로 점철되어 있다.

하지만 의견일치에 도달하면 과학은

붕괴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발전한다.

또 다른 핵심적인 차이로 정치는 인간을 구속하려 든다는 점이다.

정치의 주된 관심은 권력의 집행에 있다.

이러한 점 때문에 정치는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폭력(전쟁, 학살, 테러 등)을 사용할 수도 있으며, 가끔 실제로 사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과학은 전혀 그렇지 않다.

열역학 제2법칙과 같은 진리를 규명하기 위해 전쟁을 한다면 얼마나 우스운 일이겠는가?

물론 위에서 말한 것처럼 정치로부터 완전히 자유롭고 정반대 의미의 과학이 존재하는 이상적인 상태가 실제 세상에서는 있을 수 없다.

실제로는 다른 모든 것처럼 과학도 정치에 의해 유린되고 왜곡되는 것이 기정사실이 되고 있다.

그러나 과학이 호전적이고 파괴적인 도구로 사용되는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은 본질적으로 과학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이는 정치의 책임이다.

우리는 이러한 과학의 비정치성을 강조할 필요가 있는데, 이는 과학이 초윤리적(超倫理的)이라는 비난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는 과학의 초윤리성을 과학의 문제점이 아니라 오히려 강점과 순수성으로 인식해야 한다.

한편, 정치는 윤리로부터 절대 분리될 수 없다.

정치는 창자 속의 촌충처럼 윤리성 혹은 개념의 선악을 규정함으로써 발전해간다.

따라서 과학이 초윤리적이지 않고는 정치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없는 것이다.

윤리적인 용어로 냉정하고 논리적이며 비인간적인 인생의 접근방식을 종종 '과학적'이라고 표현하는데, 이는 과학적 방법을 윤리적 관점으로 단순히 연결시키는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과학은 그것이 냉정한 것이든 아니든 윤리적 관점과의 연결을 결코 용인하지 않는다.

사람에 따라서는 동일한 과학적 명제들이 매우 상반되는 윤리적 평가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가령 인간을 원숭이와 관련짓는 다윈의 진화론은 인간을 격하시키는 것처럼 비추어졌고 지금도 어느 정도는 그렇지만, 브루스 프레데릭 커밍스는 이 진화론을 기쁘게 받아들이고 있다.

나로서는 내가 다른 동물들과 가까운 친족관계라는 것이 자랑스럽다.

나는 나의 유인원 조상들을 선망하며, 그들이 자랑스럽다.

내가 한때는 숲 속에 사는 무수히 많은 털을 가진 유인원이었으며, 바다의 한천류로부터 활유어, 물고기, 공룡, 그리고 원숭이를 거치는 지질학적 시간대를 통해 지금 의 내 틀이 완성되었다는 생각은 언제나 나를 즐겁게 한다.

누가 이런 생각을 에덴동산에서 어슬 렁대는 한 쌍의 남녀와 바꾸려 들까?

과학자 개개인은 연구를 추구하는 윤리적 혹은 초윤리적 이유를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이유들이 그들의 발견에 어떠한 흔적도 남기지 않으며, 그 발견이 발견자의 동기와는 전혀 무관하게 옳은 것이 될 수도 혹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데이비드 보다니스처럼 파스퇴르의 대중을 혐오하는 성향과 그가 밝혀낸 질병과 박테리아 사이에 어떤 관련성을 찾으려고 시도할 수도 있다.

그러나 파스퇴르가 밝혀낸 사실의 과학적 신뢰성은 인간을 불신하는 그의 성향으로 인해 강화되지도 혹은 약화되지도 않는다.

이처럼 과학이 윤리나 종교적 문제에 대한 해답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왜 독자들이 구태여 과학을 알아야 하는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가장 좋은 답은 과학이 우리가 알고 있는 것(지식)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한 반대는 무지일 뿐이다.

콜리지는 이러한 점을 명확히 알고 있었다.

최초의 과학자는 관찰대상이 그에게 식량이나 피신처, 무기, 도구, 장신구, 또는 장난감을 제공할 수 있어서가 아니라, 단지 안다는 것의 희열을 찾기 위해 사물을 관찰하는 사람이었다.

과학이 발달함에 따라 필연적으로 과학에 대해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가지게 된 무지의

크기도 커졌다.

문학이나 예술분야에서만 교육 받아온 사람들에게는 20세기 후반의 현대적 지식 대부분에서 몽매한 암흑의 영역이 크게 확대되었다.

무지의 추방을 목적으로 하는 교육의 역사상 처음으로 새로운 형태의 무지한 지식층이 생겨난 것이다.

이러한 지식층 중에서 그래도 나은 사람들은 자신의 무지를 통렬히 후회하는 사람들이다.

20세기 미국의 뛰어난 문학비평가로 중요한 역할을 했던 라이오넬 트릴링은 '근대사의 특징적 성취라고 불리는 상상적 형태로부터 배제됨으로써 지적 자기만족에 큰 상처를 입게 되었다'고 탄식했다.

그러나 좀더 최근에는 과학에 대한 무지가 어느 정도의 정치적 정당성을 부여받기도 했는데, 과학을 지구 오염의 주범으로 몰아세운 녹색운동이 이러한 부분에 기여하였다.

또한 과학을 남성중심적 권력의지의 발현으로 몰아세우는 페미니즘도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비난을 제기하는 것 자체는 정당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과학을 포기해야 하는 정당한 이유를 제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일 것이다.

과학이 정치에 의해 잘못 사용되어졌기 때문에 발생한 공해문제의 해결은 과학적 수단을 통해서만 해결이 가능하다.

가장 기본적 레벨에서조차 위험에 처한 식물이나 동물을 조사하고 보호하며 보존하는 일은 필연적으로 과학적 노력에 의해서 달성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과학이 남성의 목적이나 태도에 의해 지배된다고 불평하는 페미니스트들도 여성의 과학에 대한 무지와 배타적 성향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오히려 과학교육과 연구 분야에 여성의 참여를 확대하는 것이 더욱 시급한 일일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가장 강경한 여권운동가 중 한 사람인 에블린 팍스 켈러의 저서 '성과 과학에 관한 고찰'에서도 잘 드러나 있다.

그녀는 수리생체물리학자였고, 노벨상을 수상한 유전학자인 바버라 맥클린톡의 자서전을 집필하기도 했다.

켈러는 과학적 지식이 '남성적 발현의 결과'라는 식의 파괴적인 표현을 쓰기 보다는 오히려 이상적인 '공동의 목적'으로 인식하고 있다.

페미니스트 등 과학에 비판적인 사람들에게 힘을 더해준 책은 토마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이다.

이 책으로 인해 이성적이어야 할 과학자들이 실제로는 이성적인 사람들이 아니며 문화적 조류에 따라 흔들리고 객관적 진리와는 전혀 관계없는 이유에 의해 한 패러다임에서 다른 패러다임으로 생각을 바꾸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유행하게 되었다.

그러나 어떤 개념이 확신을 얻게 되는 과정에 관한 쿤의 설명은 그 개념에 대한 진위 여부를 규명하려는 노력이 충분히 검토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과학자들의 비판을 받기도 한다.

과학을 평가절하하는 이러한 다양한 움직임들은 무지를 정당화하고 나아가 미화하기까지 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영국의 대학교수들은 대부분의 문학이나 예술계 학생들이 그들의 학창시절에 배운 미미한 과학적 지식마저도 쉽사리 잊어버린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최근 옥스퍼드 대학의 한 문학 세미나에서 나는 존 던의 시 한 구절을 인용하였는데, 그가 이 시를 쓴 1612년에는 아무도 피가 어떻게 심실에서 다른 심실로 이동하는지 모른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이 세미나에서 학생들이게 실제로 피가 어떻게 이동하는지 아느냐고 물어보았다.

그곳에는 학위과정의 막바지에 와 있는 30여명의 매우 지적인 학생들이 앉아 있었지만, 어느 누구도 바른 대답을 하지 못했다.

한 학생만이 머뭇거리며 일어나 삼투현상 때문일 것 같다고 대답했다.

그들은 피가 몸속을 돈다는 사실조차도 모르는 것 같았다.

매년 영국의 대학에서 문예 분야의 강좌를 듣기 위해 몰려드는 엄청난 수의 수강신청자에 비해 미미한 숫자의 과학계 강의 수강신청자들을 보면서 젊은이들 사이에서 과학을 포기하는 경향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대부분의 학자들이 이러한 점은 고쳐져야 한다고 말하고 있지만, 문예 분야가 쉽기 때문에 더 인기가 있으며 문예계열의 학생들은 과학계 강좌에서 요구하는 지적 수준을 충족시킬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더 일반적이다.

우리는 이러한 견해에 대해 반대하는 피터 메더워 경의 생각을 한번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

메더워는 1953년 크릭, 윌킨스, 프랭클린과 함께 DNA의 분자구조를 발견하여 노벨상을 수상한 미국의 유명한 젊은 과학자 제임스 D. 왓슨의 경력을 언급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영국에서는 왓슨과 같은 재능 있고 천재성을 가진 학생들이 문예계열의 연구에 치중되어 있었던 것 같다.

분자생물학의 첫 세대가 활동하던 1950년대에 영국의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 대학의 영 문학부에서는 뛰어난 능력을 가진 졸업생들을 배출하였다.

그들은 왓슨 수준에 버금가는 젊은 과 학자들보다 훨씬 더 총명하고 창조적이며 똑똑하고 논리적이었다.

그러나 왓슨은 그들이 가지지 못한 뛰어난 장점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는 매우 똑똑하면서도 어떤 대상에 관심을 가질 것인가를 아는 현명함을 갖추고 있었다.

이러한 점은 지식을 탐구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지지 못한 과학 자들만의 장점이며, 그들은 이러한 장점을 능력에 관계없이 향유하고 있다.

똑똑하다는 것이 최고의 과학자가 되기 위한 필요조건은 아니다.

또한 이것이 최고의 과학자가 되 기 위한 충분조건은 더더욱 아니다.

과학적 연구에 의해 일어난 위대한 사회적 혁명 중의 하나는 배움의 민주화였다.

어느 누구나 통상의 상식과 보통수준의 상상력을 복합시킬 수만 있으면 창조 적인 과학자가 될 수 있다.

또한 사람이 가진 능력의 한계를 넓힐 수 있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행 복이 결정된다면, 그는 적어도 행복한 과학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메더워의 주장, 특히 과학자들은 현명한 어떤 것을 가지고 있는 데 반해 문예계열의 학생들은 그렇지 않다는 주장은 상당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당연히 셰익스피어나 톨스토이가 전혀 현명한 사람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이냐는 항의를 들어야만 했다.

한편 과학이 천재들뿐만 아니라 보통의 능력을 가진 사람들에게도 행복을 가져다줄 수 있다는 그의 주장은 별로 관심을 끌지 못했다.

그렇지만 그의 핵심적 메시지는 바로 이 부분이다.

영국이 경제난국에 처하지 않기 위해 과학을 계속하여야 한다는 식의 얘기는 젊은이들을 과학 분야로 끌어들이는 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과학자들의 글을 통해 메더워가 말하는 기쁨과 자기만족이 사실이라는 점을 보여준다면, 많은 젊은이들이 과학계통의 일에 종사하게 될 것이다.

만약 독자들이 문학교수인 내가 무슨 생각으로 각종 지식 원전들을 한데 모으게 되었냐고 묻는다면, 기쁨과 자기만족을 위해, 그리고 콜리지의 말처럼 '알게 된다는 것의 희열'을 느끼기 위해 만들었다고 대답할 것이다.

(존 캐리,'지식의 원전')


논제 1. 위 제시문을 300자 이내로 요약하시오.

논제 2. 인문과학을 공부하는 학생에게도 자연과학의 지식이 필요한가에 대해 그 이유를 들어 논술하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