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민 < 연세대 교수·경제학 >



최근 일어난 몇몇 사태는 한·미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한다.

평택에서는 미군기지 이전을 둘러싸고 군경과 시위대가 충돌하고,한·미FTA에 대한 반대도 격렬해지고 있다.

이 시점에서 한·미관계를 이해하기 위해선 아무래도 이라크전쟁에 폴란드가 파병한 것을 상기해보는 게 도움이 될 것 같다. 미국의 동맹국도 아닌 동구 국가가 파병한 데 대해 많은 사람이 조금은 의아하게 생각하겠지만,그 역사를 보면 이해할 수 있다.

폴란드만큼 강대국 사이에서 생존을 위해 몸부림쳐 온 나라도 드물다. 18세기 말에는 러시아 프러시아 오스트리아에 의해 분할됐다가 1차대전 후 독립했지만,2차대전 때는 독일과 소련 간의 전쟁터가 돼 인구의 20%가 사망하는 대참사를 당했다.

전쟁 후엔 소련에 잡혀 민주주의는 물론 경제발전도 하지 못하다 90년대 초반에나 그 손아귀에서 놓여날 수 있었다.

그러니 명분 없는 이라크전에서라도 미국의 호의를 사기 위해 파병을 한 것이 이해가 간다.

한국은 어떤가. 한국도 이웃 강대국인 중국과 일본 사이에 끼어 무던히 어려움을 겪은 건 마찬가지다. 그래도 한국은 미국이 주도하는 20세기 후반 들어 주권국가가 되고 민주화도 달성할 수 있었다. 특히 한국이 '경제기적'을 이루는 데는 미국과의 관계가 크게 작용했다.

물론 한국의 경제발전에는 교육열이나 상대적 법치의 존재, 적절한 산업정책 등 스스로의 능력도 중요했다. 그러나 폴란드인들 그런 것이 한국보다 못했겠는가. 폴란드는 2차대전 전까지 그런 면에서 한국과 비교가 안 되는 나라였다.

그러던 것이 지난 60여년간 완전히 역전된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을 보고 '부러워 죽는' 폴란드 사람을 만나는 것은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한국이 이런 성취를 할 수 있었던 건 기본적으로 현대의 미국이 영토욕을 앞세운 제국주의 국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미국도 20세기 초까지 제국주의 국가였지만,1930년대부터는 경제력에 바탕을 둔 패권 추구로,군사기지는 갖지만 영토는 탐내지 않는 전략으로 바꾸게 됐다. 지금 많은 미국의 지식인들이 건국 시기 공화국의 정신이 사라지고 제국의 정신이 지배하고 있다고 개탄하고 있지만, 미국이 적어도 과거와 같은 제국주의로 돌아갈 확률은 낮아 보인다.

일본과 중국은 어떤가.

일본이 독도를 자기 땅이라고 우기는 건 시작일 뿐이다.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도 고이즈미 개인의 성향 때문이 아니라 수십년간 일본 지도층에 의해 철저하게 준비된 일관된 우경화의 일부분이다. 그 연장선상엔 결국 '일본 열도를 향한 단검'과 같은 한반도에 대한 영토적 야심을 실현한다는 계획이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중국이 고구려가 자기 역사라고 주장하는 건 어떤가. 이것 역시 결코 일회적 사건이 아니다. 중국은 위대한 전통이 모욕 당한 과거를 가졌다고 생각하는 13억 인구가 모인 나라다. 이런 나라가 부강하게 되면 그 다음 순서는 무엇인가. 그 답은 19세기 독일의 역사가 가르쳐주고 있다. 독일인의 그러한 정신세계가 20세기 들어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일으킨 것이다.

결국 조만간 한국은 2차대전 전 폴란드가 독일과 러시아의 위협을 피하기 위해 영국과의 동맹에 의존한 것처럼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미국에 의존해야 하는 사태가 오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는 것이다.

지금 미군기지 이전과 한·미FTA에 대해 반대하는 분들이 이런 구도를 인정한 위에서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문제를 제기한다면 호소력이 있을 것이다.

한·미FTA의 경우에는 오히려 그런 틀에서 보아 FTA보다는 소원해진 한·미관계를 정치 쪽에서 푸는 것이 먼저라는 주장이 성립할 수 있다.

반대로 미군기지 이전과 한·미FTA 반대론이 그런 전제 위에 서 있지 못하다면 한국민 전체에게 설득력을 갖기 어려울 것이다.

양심세력을 자처해온 분들이 양식도 함께 가져주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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