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인도 하이데라바드에서 열린 제39차 아시아개발은행(ADB) 연차 총회에서는 최근 고조되고 있는 세계 경제의 불균형(global imbalance) 문제에 대해 아시아권 국가들이 독자적인 대응 능력을 갖춰야 한다는 목소리가 그 어느 해보다 높았다.

이에 아시아 국가들이 택한 대응 방식은 크게 두 가지.향후 발생 가능한 역내 금융위기에 대해서는 '치앙마이 이니셔티브(CMI)' 체제의 업그레이드를 통해 공동 대응하는 한편 장기적으로는 '아시아 공동 통화' 출범을 통해 미국의 달러화 가치 변동에 따른 위험에서 보다 자유로운 단일 경제권을 형성하겠다는 복안이다.

그러나 아시아 각국의 경제수준과 이해관계가 서로 제각각이어서 이 같은 '거대 구상'이 현실화되기까지는 적지 않은 난관이 따를 것으로 전망된다.

금융위기 우리 힘으로 막자

CMI는 2000년 태국 치앙마이에서 열린 ADB 총회 때 '아세안+3(한·중·일)'가 합의한 역내 자금지원 제도로 각 국가들이 통화스와프 계약을 맺어 역내 금융위기가 발생할 경우 상호 지원한다는 것이 골자다.

CMI는 그러나 그동안 통화스와프 규모가 작고,자금지원 방식도 특정 국가에서 위기가 발생할 경우 이 국가와 스와프계약을 맺은 국가들이 독자적으로 자금 지원 여부를 결정토록 돼 있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많았다.

때문에 이번 회의에서는 통화스와프 규모를 현행 395억달러에서 최대 790억달러로 100% 증액하고,지원방식도 '집단적 의사결정' 방식(강화된 CMI)으로 바꾸기로 아세안+3 재무장관들이 최종 서명했다.

나아가 현행 양자 간 계약 형태로 이뤄진 CMI 체제를 다자간 체제(포스트 CMI체제)로 발전시켜 나간다는 데에도 합의했다.

이에 따라 CMI 체제는 '개별계약·개별지원(2000년 체결 CMI)'에서 '개별계약·공동지원(강화된 CMI)' 방식으로 바뀐 데 이어 '공동계약·공동지원(포스트 CMI)으로 진화할 전망이다.

포스트 CMI 체제 하에서는 각국은 별도의 통화스와프 계약을 체결할 필요없이 각자가 보유한 외환보유액의 일부를 출자해 공동 기금을 조성,이를 위기발생시 활용하는 형태를 띠게 될 가능성이 높다.

'아시아판 유로화' 첫 단추 끼웠다

아시아 공동통화 창설은 그동안 학계에서는 수없이 거론돼 왔지만 정부 차원에서 공식적인 합의를 이끌어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중·일 3국 정부가 아시아 공동통화를 위한 로드맵을 만들기로 한 것은 '세계 경제의 불균형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아시아 통화들의 절상이 필요하다'는 선진국의 거센 압력에 대응키 위한 아시아 지역의 독자적인 경제 공동체가 필요하다는 절박감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이번 합의가 아시아 공동 통화 출범까지 이어지기 위해서는 풀어야 할 난제가 산적해 있다.

유럽과 달리 아시아국가 간의 경제력 격차가 너무 큰 것이 가장 큰 제약 요인이다.

ADB가 그간 추진해온 '아시아통화단위(ACU)' 계획이 사실상 무산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러나 유로화 출범 경험을 잘 활용하면 유럽이 30년 걸렸던 일을 아시아는 15년 이내에 해낼 수 있을 것으로 한·중·일 3국은 기대하고 있다.

하이데라바드(인도)=김동윤 기자 oasis9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