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 삼성경제硏 수석연구원 >

지난 한 세기의 기업사를 보면 기업인수합병(M&A)이 눈에 띄게 증가하는 이른바 M&A물결이 다섯 차례 있었고 현재 여섯번째 물결이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최근 일부 해외 투자펀드가 단기 수익을 얻으려는 목적으로 국내 기업을 인수하면서 국내에선 M&A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확산되기도 했다.

그러나 과거 M&A물결을 보면 M&A는 기업의 성장과 합리화의 도구였으며,최근에는 글로벌화의 도구로 활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995년 이후 세계적으로 해외직접투자(inflow FDI)의 60% 이상이 국경을 넘어 타국기업 간에 이뤄지는 '국제 M&A'를 통해 일어났으며,2000년 이후에는 이런 추세가 아시아로 확산돼 2004년 세계 M&A의 3분의 1 정도가 이 지역에서 일어났다.

이중 많은 사례가 구미 기업이 아시아 기업을 인수하는 국제 M&A였다.

특히 우리나라와 연관 있는 10개 산업의 5대 글로벌 선도기업을 보면,이들에게 이제 M&A는 필요에 따라 일시적으로 일어나는 단발성 투자라고 보기 힘들다.

대부분의 산업에서 1위 기업은 모두 경쟁자보다 M&A를 더 많이 했으며,M&A를 많이 한 기업일수록 세계 시장점유율이 높았다.

또한 과점도가 높은 산업에서 글로벌 선도기업의 M&A가 더 많아지는 소위 '과점적 반응'까지 발견된다.

최근 이들이 일본 및 신흥시장 기업을 M&A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점까지 감안하면 M&A는 단지 가시적인 수익만을 위해서가 아니고 성장과 글로벌 과점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경영도구로 정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글로벌 선도기업의 이런 모습이 우리에게 위협으로 다가오는 것은 그들이 구축하고 있는 글로벌 과점체제 때문만은 아니다.

이제 기업의 경쟁은 제품의 가격과 질로 싸우는 상품시장에 머무르지 않는다.

M&A가 주요 경영도구로 정착되면서 내게 없는 타기업의 경영 자원을 누가 더 빠르게 효율적으로 흡수할 수 있는가에 의해 승패가 갈리는 요소시장의 경쟁으로 범위가 확산되고 있다.

글로벌 선도기업은 상품시장 경쟁력과 요소시장 경쟁력이라는 두 개의 무기로 싸우는데,국내 기업은 아직도 상품 경쟁력 확보를 통한 점유율 확대에만 치중하고 있으므로 그들이 위협이 된다는 것이다.

요소시장의 경쟁이 중요한 것은 기업경쟁력의 원천이 기술,노하우,고객관계 등 무형자산으로 옮겨가는 추세이고,이들 무형자산을 구축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위험이 높은 신흥시장에 보다 안전하게 진출하려는 구미 기업은 진출 대상 시장의 제도,고객,유통,경쟁에 대한 노하우 등 무형자산을 단기간에 확보하기 위해 현지기업을 인수하고 있다.

저가 공세로 미국의 PC업체를 상품시장에서 축출한 중국 기업은 축출된 미국 업체를 다시 요소시장에서 취득하면서 고부가 부문의 역량을 빠르게 흡수하고 있다.

이런 추세에도 불구하고 국내 기업이 해외에 진출할 때 M&A보다는 자체 설립을 선호하는 가장 큰 이유는 M&A 이후 기업 간 혹은 국가 간의 이문화 융합에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국내 기업이든,해외 기업이든 국제 M&A 실패 사례는 대부분 M&A 이후 조직 융합의 실패였다.

그래서 국내 기업은 빠른 성장을 위해 M&A를 하다가 사업까지 위험에 빠뜨리기보다는 약간 느리더라도 자체 설립을 통해 안전하게 성장하겠다는 전략을 선호하는 듯하다.

그러나 앞서 본 글로벌 선도기업의 전략은 정반대다.

이들은 동질문화 유지를 통해 사업실패 위험을 줄이기보다는 이문화 융합 능력을 향상시켜 M&A 실패 확률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성장과 글로벌화에 대한 두 개의 상반된 전략은 현재 한·일 기업과 구미 기업으로 나뉘어 아직 우열이 가려지지 않은 상태다.

M&A가 처음엔 빠르더라도 도중에 실패한다면 결국에는 도중하차 위험이 적은 자체 설립이 더 빠른 성장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구미 기업이 요소시장 경쟁력을 배양하면서 M&A 실패 확률을 계속 줄여간다면 상품시장 경쟁에만 익숙한 국내 기업은 향후 심각한 경쟁력 격차를 감수해야 할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