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등 외국계 손으로 넘어간 국내 종자산업의 대외 종속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시금치 봄당근 양파 토마토 등 시설 채소와 딸기 등 일부 과일 종자는 일본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90%를 넘어섰다.

외환위기 이후 토종 종자 개발 업체들이 대거 외국계에 인수된 이후 대외 종속 속도가 한결 빨라지고 있다.

채소류 재배면적은 1997년 이후 12% 줄어든 반면 종자 수입액은 57% 증가,대부분의 국산 작물이 '무늬만 신토불이(身土不二)'라는 지적을 면하기 힘들게 됐다.

시설채소 90%는 외국산 종자


전통 채소류는 물론 최근 '웰빙 열풍'을 타고 인기를 끌고 있는 서구산 채소류도 대부분 일본산 종자에 점령당한 상태다.

농협종묘개발센터에 따르면 브로콜리 종자는 열개 중 아홉개가 일본에서 건너왔고,네덜란드산 파프리카 종자도 100% 일본 업체로부터 수입되고 있다.

한국종자협회에 따르면 1997년 1929만달러였던 채소 종자 수입액이 지난해 3027만달러로 급증한 데 비해 채소 재배면적은 36만㏊에서 32만㏊로 감소,채소농업의 대외의존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강대성 농협종묘개발센터 차장은 "특히 토마토 파프리카 등 수익성있는 과채류 종자 대부분이 외국산"이라고 설명했다.

종자개발업체 '씨'가 말랐다


전문가들은 국내 종자 개발 업체들이 다국적 기업에 합병되면서 외국산 종자에 대한 종속이 더욱 심화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종묘업계 매출 상위 6개사 가운데 국내 업체는 농우바이오 한 곳뿐이며,54개 등록 업체 중 종자 개발 능력을 갖춘 국내사는 농우바이오 동부한농화학과 농협종묘개발센터 등 3곳에 불과하다.

국내 종자 개발 연구 인력도 급감세다.

농협종묘개발센터에 따르면 1997년 297명이던 국내 연구원 수는 2004년 224명으로 줄어들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다국적 종묘기업들은 당장 수지가 안 맞는다는 판단이 서면 본사 등으로부터의 수입에 의존하는 게 상례"라며 "옛 흥농종묘가 유채꽃 종자를 개발하다가 외국 기업에 넘어간 이후 포기한 게 대표적 사례"라고 말했다.

사정이 이런데도 농촌진흥청 등 정부 당국은 채소류 종자 개발에 손을 놓고 있는 상황이다.

농진청 관계자는 "채소류는 우선 순위에서 곡류와 원예 종자(육묘)에 밀려 있다"고 말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종자 하나를 개발하려면 최소 10년이 걸리고 기껏 개발하더라도 연 4억∼5억원의 수익을 올리는 데 그칠 정도로 경제적 타산이 맞지 않아 민간업체들이 연구 개발에 소극적"이라며 "소량 생산되고 있는 토종 딸기 '매향'이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웰빙'을 추구하는 식생활에 맞춰 토종 씨앗을 개발하는 등 종자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대책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