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자들은 개인의 이익과 정책결정의 공익이 맞부딪칠 때 탈선의 유혹에 빠진다.

이른바 이해상충(相衝)에 따른 공공이익 훼손의 가능성이 생긴다.

자신은 물론이고 친구나 가족이 관련된 일을 결정할 때 그들에게만 유리한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도입된 장치가 있다.

고위 공직자들이 보유한 주식을 금융회사에 맡기도록 하며 재산의 변동내역을 공개하고,퇴직한 공무원이 민간 기업에 곧바로 취업하는 것을 제한하는 등의 제도가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해당 기업과 구체적으로 직무 연관이 있는 경우' 등으로 직무 관련성을 너무나 엄격하게 규정하고 있어 실효성이 상당히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다.

◆주식 3000만원 이상이면 매각해야

공직자윤리법에 따라 주식을 3000만원어치 이상 갖고 있는 1급 이상 고위공직자(국회의원 등 선출직 포함)는 보유주식이 직무와 관련없다는 사실이 입증되지 않는 한 해당 주식을 팔거나 금융회사에 매각을 전제로 주식을 맡겨야(백지신탁)한다.

1급 이상이 아닌 일반 공직자 중 금융 정책과 금융감독 업무를 총괄하고 있는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과 금융감독원의 2∼4급 공무원들도 주식백지신탁 제도를 적용받는다.

이 제도의 적용대상 공무원이 되면 1개월 내에 주식을 매각하거나 금융회사에 신탁해야 한다.

이는 아무래도 자신이 보유한 주식을 발행한 기업에 유리한 결정을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공무원은 주가에 영향을 주는 결정을 많이 하는데,그 정보를 미리 알고서 주식을 사고판다면 이는 매우 불공정한 일이기 때문이다.

다만 자신의 업무와 보유 중인 주식의 발행 기업 간 연관성이 없다고 판단되면 해당 공무원은 1개월 안에 주식백지신탁 심의위원회에 심사를 요청,업무 연관성이 없다는 사실을 인정받아 주식을 보유할 수 있다.

지난해 11월 이 법이 시행되면서 주식 3000만원어치 이상을 갖고 있던 500여명의 1급 이상 공직자 중 행정부의 경우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 등 36명이 보유주식을 매각했다.

◆재산변동 공개와 민간기업 취업제한

해마다 재산 변동상황을 공개해야 하는 사람은 1급 이상 고위 공직자와 국회의원 지자체 의원 등 5800여명에 달한다.

본인과 배우자는 물론 자식 부모 등 직계존비속이 소유하고 있는 재산도 공개 대상이다.

부동산 주식(장외주식 포함) 예금 골동품 골프회원권 등을 모두 신고해야 한다.

지난달 발표된 재산 공개에서 지방자치단체 등을 제외한 행정·입법·사법부 소속 재산변동 공개 대상자 1071명 중 79.9%인 856명이 재산을 불린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25.6%인 274명은 작년 한 해 재산이 1억원 이상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퇴직 공무원의 민간기업 취업을 부분적으로 제한하는 것도 이해 관계에 따른 정책 결정을 막기 위한 것이다.

공무원이 퇴직 시점 이전 3년 동안 담당했던 업무와 관련 있는 기업에 대해서는 2년간 취업할 수 없다.

이를 어길 경우 공직자윤리위원회는 해당 기업에 해임을 요청하고 퇴직 공무원에게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 등의 처벌이 가해진다.

◆허점 많은 이해충돌 방지제도

주식백지신탁,재산변동내역 공개,퇴직 공무원의 취업제한 등 다양한 이해상충 방지제도가 운영되고 있지만 곳곳에 빠져나갈 구멍이 많아 그 실효성은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주식백지신탁 제도의 경우 매각하거나 은행 등에 신탁해야 하는 주식의 '직무 관련성'이 모호하다.

직무 관련성의 범위를 보유 주식과 '구체적인' 업무 관련성이 인정될 때로 정해 놓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해당 공무원의 업무 관련성이 보유 주식 기업과 약간만 달라도 주식백지신탁 심사위원회가 직무 관련성이 없다고 판단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시가 3000만원 이상의 직무 관련 주식을 갖고 있더라도 주식 명의를 자식 등 직계존비속으로 명의를 변경한 뒤 고지를 거부하면 그만이다.

재산 공개는 고위공직자들의 실질적인 재산 규모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도록 돼 있는 게 문제다.

중간에 매매를 하지 않으면 주택이나 토지 등을 구입한 당시의 기준시가나 공시지가로 계속 기재하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시가가 20억∼30억원이 넘는 강남지역 아파트를 갖고 있으면서도 재산공개 때는 10억원 미만으로 기재된 사례가 부지기수다.

퇴직 공무원의 기업 취업제한 제도도 직무 관련성을 너무 엄격하게 적용하다 보니 실제 취업 제한 조치를 받은 사람은 극히 미미한 실적이다.

김철수 한국경제신문 사회부 기자 kcs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