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을 즐겁게 해야 팔린다." 기업들의 마케팅 포인트가 가격·품질·성능·디자인 등을 지나 '펀(fun)'으로 진화하고 있다.


누가 더 소비자에게 즐거움을 주느냐에 따라 매출에 큰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백화점 점원들이 고객들에게 재미를 선사하기 위해 각종 '개인기'로 무장하는가 하면,맥주를 팔기 위해 클럽 댄스 파티를 열고,내비게이션에 '데이트 코스 안내 기능'을 넣는 등 기업 마케팅 활동의 초점이 '재미'라는 키워드로 모아지고 있다.


고객들에게 재미를 주기 위한 경쟁이 가장 치열한 곳은 유통업계다.


현대백화점 압구정점에선 아동복 매장 점원들이 아이들에게 풍선을 나눠준다.


옷을 사도 주고,그냥 지나가도 주고,물건을 취소하러 와도 주는 등 아이들만 보면 꽃 강아지 모양의 풍선을 만들어 준다.


이를 위해 백화점 차원에서 직원들에게 단체로 풍선아트 교육까지 시켰다.


신세계 강남점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사는 주부 오민희씨(35·서울 잠원동)는 "어쩌다 한번 현대백화점에 들렀는데 아이가 풍선을 받고 좋아하더라"며 "주말만 되면 '풍선 주는 곳'에 가자고 졸라대는 바람에 걸어갈 수 있는 백화점을 놔두고 지하철 타고 현대백화점까지 간다"고 말했다.


200원짜리 풍선 인심을 후하게 써서 경쟁 백화점 고객 뺏기에 성공한 케이스.풍선아트 마케팅이 성공을 거두자 현대백화점은 지난주부터 전 매장 점원들에게 마술을 가르치고 있다.


갤러리아백화점의 대전 타임월드점은 전문 산악인을 아웃도어 '라푸마'의 매장책임자로 기용해 고객들을 즐겁게 해주고 있다.


에베레스트를 3회 등반한 기록을 포함해 세계 각국의 유명 산지를 두루 올라본 이상은씨(35)는 고객들에게 자신이 산에 올랐을 때 찍은 사진을 보여주고 경험담도 들려준다.


인근 등산동호인들은 이씨의 얘기를 듣기 위해 주말이면 매장에 정기적으로 '출근'하다시피 한다.


장사가 잘 되는 것은 당연지사.


롯데백화점 본점의 진동안마기 매장 점원은 고객이 안마기를 체험하는 동안 옆에서 가곡 등을 불러주고,그랜드백화점 일산점에서는 한때 미술을 전공한 관리팀장이 직접 나서 어린이 고객의 얼굴에 '페이스 페인팅'을 해준다.


김경호 현대백화점 인재개발원장은 "백화점 직원 교육을 '친절' 위주로 했던 것은 옛날 얘기"라며 "요즘은 각자 재미있는 개인기를 하나씩 갖추도록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비맥주는 자사 맥주 카프리를 알리기 위해 올 들어 홍대 클럽에서 댄스 파티를 시작했다.


'카프리 바이브 나잇'이라는 이 댄스 파티에서 참가자들은 춤 실력을 겨뤄 우승자를 가린다.


댄스 클럽은 카프리 같은 소형 프리미엄 병맥주의 주 소비처다.


클럽을 자주 찾는 댄스 마니아들에게 자신의 춤을 뽐낼 수 있는 재미를 주는 오비맥주의 '파티 마케팅'으로 인해 카프리 맥주의 지난달 홍대 지역 매출은 작년 동기에 비해 30% 늘었다.


내비게이션 장치도 '펀' 기능 경쟁이 치열하다.


파인디지털은 지난해 말 자사 내비게이션 제품에 '러브러브 데이트 코스''이색여행''전국 각지 축제 행사 정보' 등을 내장한 이후 판매량이 두 배나 늘었다고 밝혔다.


최근에는 맛집 등의 위치정보 서비스를 자사 제품 사용자들끼리 서로 전송해줄 수 있는 기능도 추가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화장품 업체에선 상품 이름을 '펀'하게 짓는 것이 유행이다.


키스를 유도하고픈 남성의 심리를 반영해 남성용 입술보호제를 '그녀와 으슥한 곳으로 가다 립밤'으로 명명하는가 하면,여성용 주름개선 제품의 이름으로는 '어려보이겠다는 약속 링클 크림'이 등장했다.


화장품업체 에뛰드 관계자는 "재미 있는 이름은 고만고만한 경쟁 제품 사이에서 우리 것을 돋보이게 하기 때문에,이름 짓기 사내 공모전을 열고 채택되면 포상까지 하고 있다"고 말했다.


차기현 기자 kh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