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건축작품이라고 하면 현실과 동떨어진 세계를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경찰서와 아파트단지,심지어 화장실과 무덤에까지 예술적 상상력을 과감히 접목시켜 세계의 주목을 끌고 있는 곳이 있다.


일본 최남단 규슈 지방의 심장부에 자리잡은 구마모토(熊本) 현이 그 주인공이다.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 '폴리스'처럼 구마모토를 예술의 도시로 가꾸어 보겠다는 현 지사들의 야심찬 구상은 '아트폴리스'(Art Police)라는 사업으로 구체화됐다.




구마모토 공항에서 남서방향으로 1시간20분가량 달리면 쪽빛 바다를 배경으로 세련된 자태를 뽐내고 있는 복합 시설물이 눈에 들어온다.


'아시키타 청소년의 집'이다.


이곳은 10년 전만 해도 지역특산물인 밀감이 주렁주렁 열리던 밭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리스 출신의 엘리아 젠겔리스와 인도출신의 에레니 지간테스 등 세계적 건축가의 손길을 거치면서 세계적인 명소로 탈바꿈했다.


연수동 실내에 들어서니 '1월까지 60만명 연수'라고 씌어진 알림표지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1998년 6월에 완공됐으니까 연간 방문객 수는 어림잡아 7만명을 훌쩍 뛰어넘는다.


넘실대는 파도 모양의 숙박동 지붕,그리스 양식을 본뜬 연수동의 열주식 기둥들,그 기둥들 사이에서 부서지는 파도….여기에 카누타기 가족캠핑 등 다양한 이벤트는 이곳을 찾는 국내외 청소년들은 물론 농사 일로 바쁜 지역주민들의 휴식공간으로 손색이 없어 보인다.


구마모토 현 북부 야마가시 지역에 산재해 있는 옛 무덤들.그간 아무 쓸모없이 방치돼온 죽음의 땅이었지만 인근에 '장식고분관(裝飾古墳館)'이 건립되면서 부활의 콧노래를 부르고 있다.


일본 최초의 고분전문 박물관인 '장식고분관'은 고분에서 출토된 유적들도 볼거리지만 건물 꼭대기에서 지하까지 연결되는 나선형의 외관이 주변 무덤들과 한데 어울려 장관을 연출하고 있다.


언덕 너머 고분군을 바라보면서 초현대식 건축물을 따라 걸어내려 가는 동안 방문객들은 고대에서 현재까지 이어오는 웅대한 시간의 흐름을 느끼게 된다.


파리의 퐁피두센터,다임러벤츠 본사 등을 설계한 세계적인 건축가 렌조 피아노는 현의 작은 어촌마을 우시부카를 위해 물고기의 은색비늘을 연상시키는 '하이야 대교'를 설계했다.


이 또한 투명한 방풍패널로 디자인의 기능미를 돋보이게 하면서도 "다리가 만내의 아름다운 경관을 해치지 않도록 해달라"는 주민들의 요구를 십분 반영,가능한 한 교각을 줄이는 등 자연과의 조화에 초점을 맞추었다.


아트폴리스 사업을 총괄 지휘하는 커미셔너 다카하시 데이이치는 "아트폴리스의 테마는 건축과 인간과의 조화를 구마모토의 풍토 속에서 재검토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자연,인간과 조화를 이루는 건축.아트폴리스가 내세우는 최대 명제지만 시행착오도 적지 않았다.


훗날 총리가 된 호소카와 모리히로 당시 지사가 1987년 가을 베를린에서 개최된 국제건축전에 참석했다가 힌트를 얻었다는 이 사업도 초창기에는 의욕만 너무 앞서갔다.


구마모토현 관광물산총실의 사에키 가즈노리 차장은 "'낙하산처럼 후세에 문화유산으로 남길 수 있는 걸작을 떨어뜨려 달라'는 것이 당시 건축가들에 대한 현의 주문사항이었다"고 회고했다.


이 같은 밀어붙이기 방식이 적용된 대표적인 건축물이 1990년 준공된 '구마모토 기타 경찰서'다.


아트폴리스 참가 1호 프로젝트인 이 경찰서는 계단이 거꾸로 서 있는 듯한 모양새에 정면은 모두 반투명유리로 장식, 화제를 불러일으키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근처에 야구장이 있어 경찰서 유리가 다 깨질 것"이라는 등의 부정적인 여론이 들끓었다.


때문에 자칫 사업 자체가 백지화될 수 있는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토 도요오(伊東豊熊),안도 다다오(安藤忠雄) 등 세계적 건축가들의 사업추진 의지와 설득이 결국 여론의 향배를 되돌려 놓게 된다.


이후 아트폴리스 사업은 지역주민의 요망사항을 최대한 반영해 추진하고 있으며,재임 2기째를 맞는 시오타니 요시코 현 지사 이후에는 '건축인재 육성'과 '세계가 인정하는 건축물'이라는 또다른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구마모토 현 관계자들은 "아트폴리스는 애초부터 관광수입 등 경제적 효과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후세를 위해 전통 문화유산을 아름답게 보존하려는 노력은 주위의 관심을 끌 수밖에 없다.


인구가 4000명도 안 되는 세이와촌에 연간 15만명이 넘는 관광객이 몰리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세이와촌에는 농한기를 이용해 '분라쿠'라는 인형극이 전해 내려오고 있었다.


스토리는 한국의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와 비슷하지만 3명의 배우가 검은 망토와 가면을 뒤덮어쓴 채 무대 위에서 1개 인형을 움직이는 '3인1체' 방식이라는 점에서는 공연자가 무대 뒤로 숨는 국내와는 다르다.


배우들의 평균 나이가 75세.그런데도 연간 200회의 공연일정을 거뜬히 소화해내고 있다.


이 인형극 공연을 위해 정부와 현에서는 4억5000만엔을 들여 에도시대 말기의 목조 건축 양식으로 된 극장을 1992년 완성했다.


이미 연간 매출액이 2억엔을 넘어서고 있어 본전은 뽑고도 남은 셈.와타나베 히사시 극장장은 "세이와출신이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마을 주민들이 많이 늘었다"며 "한국은 물론 싱가포르와 독일 미국 등지에서도 단체손님들이 줄을 이어 지역경제 활성화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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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앤지재팬, 3박4일 상품 판매 ]


인천공항에서 구마모토까지는 아시아나항공에서 매주 월,목,토의 주3편이 직항 운항되고 있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인천∼구마모토 간 소요시간은 약 90분.부산항에서 쾌속여객선을 이용해 후쿠오카 하카다항에 도착한 뒤,일본 규슈JR철도 또는 테진고속버스 터미널을 이용하는 방법도 가능하다.


구마모토 시내 중심부까지는 고속버스로 약 2시간 소요.


요금은 2000엔 선이다.


구마모토 아트폴리스 건축기행 취급 전문여행사인 아이앤지재팬(02-720-1223)에서 아트폴리스 3박4일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49만9000원.ICC(02-737-1122,www.japanpr.com)가 구마모토현 건축·관광정보를 제공한다.


구마모토(일본)=김병일 기자 k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