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인희 < 이화여대 교수·사회학 > 개띠 해를 맞아 이른바 '58년 개띠'들이 새삼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듯하다. 58년 개띠로 말할 것 같으면 '국민학교' 3부제 수업으로 상징되는 과밀학급의 주인공이요,중학교 무시험과 체력장을 거친 후의 고교 평준화 첫 세대이자,한국 베이비 붐 세대의 전형적 상징 아니던가. 인구학자들은 전후 베이비 붐 세대를 일컬어 '거대한 도마뱀 속 돼지(pig in a python)'라 칭한다. 이들 돼지 부대가 생애주기를 지나갈 때마다 사회는 절대 다수 집단이 필요로 하는 욕구를 해결해주어야 하는 과제에 직면해왔다는 것이다. 전쟁 베이비,스포크 베이비,스푸트니크 세대,신세대,Me 세대 등 다채로운 타이틀을 달고 있는 미국의 베이비 붐 세대는 전반적인 사회 무드를 지배해가면서 동시에 예기치 못했던 사회문제의 주역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실제 베이비 붐 세대가 10대를 지나던 60년대 미국은 '반항의 시대'를 열었고,이들이 젊은 청년기에 진입하던 70년대는 '방향성 상실의 시대'를 지나갔으며,30대 성인이 된 80년대는 자신들 특유의 라이프스타일을 구축해가면서 '소비의 시대'로 진입해 들어갔다. 이후 90년대는 베이비 붐 세대가 중년의 위기를 지나감에 따라 80년대의 낙관적 분위기를 비관적 분위기로 반전시켜 갔고,21세기를 열면서는 이들이 초기 고령으로 접어들면서 노화와 건강에 대한 관심이 기대 이상으로 고조됨에 따라,고령의 의미 또한 수동적 부양의 대상으로부터 능동적 정년 연장을 향해 패러다임의 혁명을 요구하고 있다고 한다. 반면 전후 한국 현대사의 격동기를 온 몸으로 겪어낸 우리네 베이비 부머들은 수적으론 거대 다수집단임에도 불구하고 본격적인 사회적 조망을 받지 못한 '소외된 그림자 세대'의 성격을 보이는 듯하다. 운동권 386세대가 정치권의 '젊은 피 수혈론' 및 '세대 비약론'과 맞물리면서 실질적 파워에 근접해가는 동안,베이비 붐 세대는 '이름 없는 40대''사오정''낀 세대' 등 패배적이고 자조적인 명칭에서 드러나듯 권력 이동의 흐름에서 자연스레 배제돼 왔다는 생각이다. 한데 주목할 만한 건 우리네 베이비 붐 세대가 중년의 위기를 지나면서 이들이 서서히 사회문제의 핵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난 IMF 외환위기를 지나는 동안 40대 초반의 베이비 붐 세대가 구조조정 및 정리해고의 최대 피해자로 부상했음은 이의 전형적 실례에 다름 아닐 것이다. 지난 70년대 이후의 고도성장 과정에서 베이비 붐 이전 세대가 상대적으로 실업의 위협에서 자유로웠다면,오늘의 베이비 부머들은 세계화의 파고 속에서 구조조정의 요구가 높아지면서 '고실업'에 처음으로 노출된 세대요,설상가상으로 자녀 교육비 부담이 가장 큰 생애주기 단계를 지나가고 있었기에,이들 세대의 실직이 야기하는 부정적 폐해가 그 어떤 집단보다 치명적이었음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결국 한국의 베이비 붐 세대는 서구의 베이비 붐 세대처럼 강력한 개인성을 특징으로 사회적 무드를 주도해간 적도 없으며,386세대에서 볼 수 있듯이 동세대인으로서의 세대 정서를 토대로 동질감을 경험한 경우도 찾아보기 어려운 듯하다. 그러나 이면에는 베이비 붐 세대의 실체를 향해 명백한 정체성을 부여해주기 위한 사회적 노력이 상대적으로 부재했음 또한 부인하긴 어려울 것이다. 모름지기 세대란 갈등과 비약의 대상이기보다 화해와 공존의 대상이기에,베이비 붐 세대로 하여금 세대 간극을 해소하기 위한 중간자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도록 실질적 기회를 확대해주어야 할 것이다. 이제 12년 후면 환갑을 맞이하게 될 이들의 생애가 결코 헛되지 않았노라,배려와 위로의 손길을 펼쳐야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