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의 이혼과 재혼이 늘고 있다는 통계자료가 뉴스를 탈 때마다 한국 보험학계의 원로 신수식 고려대 경영대 교수(64)는 영 마뜩치 않다.


배우자를 고를 때 사람보다 조건을 더 따지니 툭하면 헤어지고 성급하게 새 사람을 찾게 된다고 혀를 찬다.


40여년 가까이 강단을 지키며 최근엔 산재보험 분야에서 이론과 현실을 접목하고 있는 신 교수. 결혼생활 35년간 다퉈본 적이 없다는 노(老) 교수는 자신을 '속정 깊은 파쇼'라고 소개하며 '특별한 아내사랑' 비법을 털어놨다.


"모든 면에서 나보다 못한 여자를 골라 길들여가며 살리라."


1971년 초겨울 맞선 보러 나가며 그가 되뇌었던 말이다.


충청도 청양이 고향이라는 양순하기 그지없는 한 여성과 선을 보고 이듬해 봄 곧바로 결혼했다.


그로부터 만 34년동안 부부싸움이란 말과는 담을 쌓고 살아왔다.


신 교수는 화목한 부부생활의 비결 1조는 '입조심'이라고 충고한다.


시집 처가 들먹이며 흉을 보는 건 섶을 지고 불 속에 뛰어드는 격이므로 꼭 피해야 한다.


처가집 성묘를 챙기는 것도 비결의 하나.


매년 한두 번 이렇게 하면 아내가 느끼는 감동은 물론이고 부모에게 효도하는 모습을 자녀들이 본받게 돼 불효까지 예방하는 효과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것만으론 2% 부족하다며 신 교수는 '깜짝쇼'를 권한다.


경상도 사나이 특유의 무뚝뚝함이 가득한 그는 평소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사랑이란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눈빛 몸짓으로도 충분하지만 "그래도 정 하고 싶으면 대놓고 제대로 하라"는 게 그의 주문이다.


3년 전 큰 눈이 내린 날 신 교수는 아파트 화단에다 '혜순아 사랑해'라고 대문짝만하게 썼다.


혜순은 그의 아내 이름이다.


누가 글씨를 밟거나 해서 지워지면 득달같이 내려가 고쳐놓기를 여러 번.이 때문에 동네 사람들이 대부분 '혜순'이 누군지 알게 되었고 '혜순 여사'는 단번에 부러움의 대상이 됐다고.


신 교수의 깜짝쇼는 또 있다.


한번은 혼자 해외여행을 마치고 귀국하는 아내를 위해 A4용지에 '열렬 환영(熱熱 歡迎) 혜순 여사 귀국'이라고 쓴 플래카드를 만들어 인천공항에서 열심히 흔들었다.


귀국장에 나타난 아내는 감격한 나머지 쓰러지기 일보 직전까지 갔다며 "아내 감동시키는데 남들 눈치 따위 볼 필요가 있느냐"고 반문한다.


언젠가 동료들과 대화 중에 "퇴근하면 집사람이 다리를 주물러준다"고 하자 "요즘 세상에 그런 와이프가 어디 있느냐"며 안 믿더란 얘기를 아내에게 했더니 아내 왈 "다리 주무르는 건 기본이고 발도 닦아준다고 말하지 그랬어요" 하더란다.


30년 넘게 길들여 왔다고 생각한 아내가 알고 보니 조련사의 머리 위에 앉아 있는 느낌이었지만 왠지 그다지 싫지 않았다고 신 교수는 털어놓았다.


1남1녀를 둔 신 교수는 자녀들이 어릴 적 "아빠는 파쇼"라며 엄격한 아빠에 대해 불평을 했지만 이제는 "아빠는 속정 깊은 파쇼"라고 이해해준다며 뿌듯해했다.


내년 5월 강단을 떠나는 신 교수의 작은 꿈은 이렇다.


"정년퇴임하면 요리학원에 등록해 열심히 다닐 생각이다. 아내가 좋아하는 요리를 이것저것 만들어주며 잔 재미를 듬뿍 안기고 싶다. 물론 깜짝쇼도 잊어서는 안되겠지."


정용성 기자 herr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