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최근 사석에서 "대통령이 되고 난 뒤 내게 '광' 나는 일들은 전임자들이 해놓은 것이 많더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뒤집어 말하면 임기 내에 이룰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더란 얘기다. 그래서 임기 안에 되는 것에서,2010년으로,2020년으로,더 나아가 2030년으로 '정책 시간표'를 길게 잡고 있다는 설명이다. 사실 단임제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가 않다. 결론을 보자고 덤벼들면 더욱 그럴 것이다. 그의 말마따나 넓고도 멀리 보는 정책을 구사하면 그 다음 대통령이 '광' 날 것이고 그 결과가 나라 발전의 토대가 되는 것이다. 그게 대통령이 할 일이고,국민들이 대통령에게 거는 기대다. 새해라고 대통령에게 거는 기대가 다를 리 없다. 노 대통령은 46년 개띠다. 병술년(丙戌年) 새해가 환갑인 셈이다. 모든 것을 순리대로 깨닫는다는 이순(耳順)을 넘긴 대통령에게 훈수를 두는 일도 이젠 쉽지 않지만 그렇다고 할 말을 가릴 국민들도 아니다. 개띠 대통령답게 새해엔 이념 논쟁을 접고 밤잠을 설쳐가며 민생의 현장을 뛰는 대통령이 돼달라든가,국민들에게 충성심이 강한 대통령이 돼달라든가….그러나 더 큰 기대는 한껏 목소리를 높였던 닭띠해와는 달리 훌륭한 청력의 견공처럼 작은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 달라는 것일 게다. 노 대통령도 무수한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간담회 횟수도 다른 어떤 대통령들보다 많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하다는 게 국민 대다수의 생각인 것 같다. 사람을 만났다지만 가려 만났고,간담회를 가졌다지만 대화의 장이라기보다는 설득의 자리였다는 이유에서다. 재계와의 대화가 대표적이다. 부진한 투자가 경기회복의 발목을 잡고 있는데도 노 대통령은 재계와의 대화에 소홀했다. 경제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대기업의 총수를 개별적으로 만나 애로를 청취했다는 소식은 아직 들어본 적이 없다. 총수들이 떼로 청와대 회의에 불려갔지만 여전히 들러리였다. 노 대통령은 "괜한 오해를 사기 싫어서…"라고 말한다지만 그를 반대하는 사람조차도 그의 청렴함을 인정하는 데는 인색하질 않다. 만난다 해도 투자가 갑자기 살아나겠느냐며 만남의 결과를 걱정한다는 소리도 있다. 그러나 그건 걱정거리가 아니다. 그들을 만나 속내를 듣는 자체만으로도 결과는 달라지게 돼 있기 때문이다. 최근 종교지도자들과 가진 간담회도 그렇다. 애초 사학법 개정안을 원안대로 가져가기 위한 설득의 자리였으니 말이다. 거부권 행사가 어려우면 공포라도 보류해달라는 종교계의 간절한 요청은 당연히 공염불이었다. 매사가 이런 식이다보니 국민들은 불만이다. 자신의 주장만 펴는 이를 누가 좋게 보겠는가. 간담회에 불려다니는 사람들도 이젠 대통령의 일방통행식 강의에 지루함을 느낀다. 오히려 현란한 말솜씨와 이론으로 무장한 대통령이 겁날 뿐이다. 견공들은 100m 떨어진 곳에서 바늘 떨어지는 소리를 듣는다고 한다. 병술년 새해 노 대통령이 견공의 청력을 부여받아 작은 소리도 들을 줄 아는 대통령이 되길 바란다. 그래서 다음 대통령이 '광' 날 수 있도록 기틀을 닦는 일이 남은 2년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는 지름길일 것이다. jh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