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과 서구사회가 또다시 충돌했다. 이번에는 호주에서다. 지난 11일 시드니 남쪽해변에서 레바논계 청년들이 사소한 말다툼 끝에 호주 자원봉사 구조대원을 폭행하면서 백인과 아랍계 청년들 간 충돌이 보복전 양상으로 불거졌다.

호주는 지리적으로 대양주에 위치해 있지만 서구적 가치를 따르는 나라다. 영국에서 발생한 7·7 런던테러,10월 말 프랑스 소요사태에 이어 호주에서마저 이슬람과 서구사회가 충돌한 셈이다.

호주에서의 인종충돌은 다분히 감정적인 요소로 시작됐지만 그 기저에는 이슬람과 반이슬람 간 대립의식이 깔려있다. 양측 간 충돌의 원인을 따라가보자.

◆반이슬람 감정의 폭발

2000년 호주 청년들이 울컥할 만한 사건이 터졌다. 레바논계 폭력조직이 호주 여성을 강간한 사실이 밝혀지면서다. 이 사건 이후 레바논계 이민자를 보는 호주 청년들의 시선이 싸늘해졌다. 그동안 감정이 편치 않던 상황에서 공교롭게도 이번에 또 레바논계 청년들이 호주인을 폭행하자 백인과 아랍계 청년들 간 충돌로 비화된 것이다.

출발동기는 다르지만 호주의 인종충돌은 프랑스 소요사태를 연상시킨다. 프랑스 소요사태는 파리 외곽 빈민촌에 사는 무슬림 소년 2명이 경찰 검문을 피해 변전소 안으로 달아나다 감전사한 것이 직접적인 원인이었다. 이를 계기로 무슬림 청년들의 쌓였던 분노가 폭발하면서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갔다.

호주와 프랑스 사태의 발단동기는 다르다. 하지만 충돌의 근본 원인은 유사하다. 즉 이슬람과 서구사회 간 인종·종교 갈등이 사태를 증폭시켰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호주 일간지 시드니모닝헤럴드의 인터넷 여론조사 결과가 이를 뒷받침한다. 이 신문이 사태의 원인을 묻는 질문에 참가한 4만988명은 '인종차별 25%,어리석은 사고 24%,교육 부족 19%,동족의식 18%,외국인 혐오증 8%' 순으로 응답했다. 프랑스의 무슬림 청년들도 인종차별로 취업기회조차 갖지 못하고 있다는 불만이 컸었다.

호주와 이슬람 간 관계는 좋은 편이 아니다. 2002년 이슬람 세력의 인도네시아 발리 테러로 인한 사망자 202명 중 호주인이 88명에 이른 데다 지난 10월 발리 테러에서도 호주 관광객의 피해가 적지 않았다. 이에 대한 불만과 갈등이 호주 사태의 기저에 깔려있다는 분석이다.

◆세계화와 문명충돌

호주 시드니,프랑스 파리,영국 런던은 국제적인 도시로 손꼽힌다. 한마디로 세계인이 모여사는 도시다.

매스미디어의 발달과 급속한 세계화로 국제적인 도시에선 공동체적 가치관이 존재할 것 같지만 현실은 반대로 나타나고 있다. 오히려 야만적인 폭력과 테러의 공포에 떨고 있다. 종교에 근거한 상이한 가치관이 물리적 충돌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른바 문명충돌이다.

이슬람과 기독교 간 갈등이 대표적인 문명충돌이다. 유럽이나 호주처럼 기독교 주류국가에서 문명충돌이 더 잦아지고 있다. 왜 그럴까.

제네바 대학의 타리크 라마단 교수는 "무슬림(이슬람교도)들이 이슬람적 가치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주위에 방어막을 치고 있기 때문에 충돌이 줄어들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무슬림의 방어막은 서양의 문화와 별다른 교류 없이 '너는 너,나는 나'라는 식으로 존재하다가 사소한 계기가 생기면 충돌로 발전한다는 것이다.

반면 프랑스의 세계적 문명비평가인 기 소르망은 종교적인 가치관보다 무슬림의 경제적 소외감을 갈등의 원인으로 꼽고 있다. 그는 "유럽도 그다지 기독교적이지 않은 것처럼 이민자 청년층의 정신세계에서 이슬람교가 차지하는 부분은 아주 미약하다"며 "종교적 이유보다는 고용 유동성이 낮은 서방국가에서 상대적으로 경제적 불이익을 더 당하는 무슬림들이 불만을 표출하면서 갈등이 생기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특히 프랑스처럼 과다할 정도로 복지제도가 발달된 경제모델은 노인에게는 유리하겠지만 젊은층엔 불리하다고 기 소르망 박사는 강조한다. 좋은 학위가 있는 백인 젊은이조차 괜찮은 직장을 얻기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무슬림에게 기회가 돌아갈리 만무하다는 것이다. 경제적 기회박탈이 인종차별로 받아들여져 갈등의 원인이 된다는 지적이다.

호주에서 무슬림 청년의 실업률도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 소르망 박사의 분석대로라면 호주 무슬림 청년들의 경제적 기회박탈도 이번에 백인청년들과 충돌을 가져온 요인으로 꼽을 만하다.

김호영 한국경제신문 국제부 기자 hy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