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면회 < 한국외대 교수·정치외교학 >

사회민주당과 대연정에 성공한 기독민주연합의 메르켈이 독일의 제8대 총리로 취임했다.

지난 9월 중순 조기 총선이 치러진 이후 2개월이 지나서야 비로소 이뤄진 일이다.

선거 전 압도적 우위라는 예상과 달리 0.9%라는 박빙의 격차로 원내 제1당이 된 기민련은 주도적으로 행정부를 장악할 동력을 상실했고,결국 정치경제적 안정을 갈망하는 기업가와 대다수 국민의 열망에 따라 '현실적인' 선택으로 원내 제2당인 사민당과 1966년 이후 40여년 만에 두 번째의 연합정부 구성에 합의하게 된 것이다.

두 거대정당 간의 연정합의문이 강조하고 있듯,새 정부의 우선적 해결과제는 경제의 활성화이다.

취임 이후 가진 언론과의 첫 대면에서 메르켈은 가장 먼저 해결할 정부의 과제를 일자리 창출을 통한 대량실업의 해소에 두고 있음을 분명히 했다.

11%에 이르는 높은 실업률과 1% 정도의 낮은 경제성장률로 요약되는 경제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할 탈출구를 최우선적으로 찾아내야 한다는 생각이 신임 총리 메르켈을 사로잡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독일병' 치유를 위한 종합적인 경제정책은 앞으로 보다 더 가시화될 메르켈 정부 정책의 모범답안이자 출발선이 될 것이다.

합의문에 수록된 경제정책의 주요 내용은 노동시장의 유연화와 사회보장 축소 및 국가 재정적자 감축,그리고 이를 위한 세제개혁으로 정리된다.

선거과정에서 기민당과 사민당이 각각 제시한 경제정책을 절충한 연합정부의 경제정책은 우선적으로 해고방지 조항의 완화와 기업의 임금 부대비용 삭감을 통해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강화하려 하고 있다.

전임 슈뢰더 정부의 구조개혁 정책을 계승하고,그 위에 기민당의 선거공약사항과 정책방향을 가미한 결과다.

아울러 새정부는 기업의 부담을 경감시켜 주기 위해 실업보험 부담금을 2% 낮춰 줄 계획이고,감축분은 부가가치세 1% 인상과 연방 노동청의 예산으로 충당할 예정이다.

다분히 친기업적이다.

여기에 덧붙여 새정부는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는 재정적자 문제를 새로운 조세정책의 도입으로 보완하려 한다.

종합해 볼 때,이러한 정책들은 기민당이 선거과정에서 제시한 공약사항을 골간으로 해 연정의 한 축인 사민당의 요구사항을 적절히 배합한 것으로 평가된다.

문제는 이러한 정책들이 얼마나 실현 가능성이 있고 어느 정도 효과가 나타날까 하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독일병'을 치유하기 위해 메르켈을 수장으로 새롭게 짜여진 '의료진'은 독일경제에 활력을 불어 넣기 위한 구조개혁에 성공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이다.

결론은 낙관적이지 않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정치영역의 불안정에 있다.

특히 연정 파트너인 사민당 내에서 당의 정체성을 둘러싼 내홍이 좀체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22일 총리 선출과정 중 사민당 내에서 나타난 51표의 이탈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두 번째는 구체적인 정책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연합정부의 운영이 순탄치 않을 것이란 점에 있다.

새정부의 내각 구성을 면밀히 보면,정책의 핵심 내용을 관장할 부서는 대개가 사민당 출신들로 포진해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노동장관과 재무장관,그리고 보건장관 등 경제사회개혁의 핵심을 이루는 부서는 메르켈의 대연정 하에서 사민당이 주도적으로 정책을 관장하게 돼 있는 것이다.

'총리민주주의'라는 틀에서 운영되는 독일이지만 구체적인 정책 집행에 있어 일관성과 통일성을 굴곡 없이 유지하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사민당이 노동세력의 전통을 계승하고,노동세력의 이해를 대변한다는 당의 정체성과 관련해 깊은 혼란에 빠져 있는 이상 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

새정부 수장 메르켈의 얼굴이 밝지만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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