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란하게 피어오른 보랏빛 꽃들을 가득히 머금은 남반구 특유의 자카란다(jacaranda) 나무가 화려한 자태를 뽐내며 항구의 곳곳에서 길손을 유혹한다.


작열하는 햇볕을 넉넉하게 받아내며 일렁이는 쪽빛 바닷물,그 곁에 끝 모르게 늘어선 채 수천만 년의 풍상(風霜)을 견뎌내며 자리를 지켜온 가파른 사암(砂巖)의 절벽―.나폴리,리우 데 자네이루와 함께 세계 3대 미항(美港)으로 불리는 호주의 최대 도시 시드니는 이곳에 첫발을 내디딘 나그네를 이렇게 반긴다.




◆기묘한 바위등 록스의 절경, 이방인들 손짓


200여년 전 유럽의 개척자들이 호주에 처음 진입했던 대륙의 관문,시드니 항구의 록스(the Rocks)에서는 이름 그대로 절경을 이루는 기기묘묘한 바위들이 이방인의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는다.


여기에 유럽인들 이주 초기의 모습을 간직한 건물과 가로수들까지 보태져 한번 들어선 발길을 좀처럼 떼기 어렵게 만든다.


시드니의 얼굴로 자리잡은 오페라하우스가 내려다보이는 세계 두 번째로 긴 다리 하버브릿지에 올라서서 항구를 굽어봐도 좋고,약간의 돈을 들여 록스의 서큘러 키(Circular Quay)에서 출발하는 크루즈를 타고 항구 일대를 둘러볼 수 있다면 더욱 좋다.


한국이 속한 북반구의 반대쪽,남반구중에서도 남극 가까이에 있는 호주는 여러모로 한국과는 정반대다.


늦가을 추위가 매서운 한국과 달리 호주는 지금 여름의 문턱에 성큼 다가서 한낮 기온이 섭씨 30도를 오르내린다.


하지만 습도가 낮아 기온만큼의 더위가 느껴지지 않는다.


아침과 저녁나절에는 제법 선선한 바람까지 불어 여행하기에는 더없이 쾌적한 계절이다.


낯선 지역을 방문했을 때 곳곳을 효과적으로 둘러보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뭐니뭐니 해도 다리품을 팔아 구석구석을 걸어다니는 것만큼 좋은 방법을 아직은 찾지 못했다.


이른 아침,출국할 때 준비해간 반팔 티셔츠와 진 바지를 차려입고 카메라와 지도를 챙겨들고는 도심에서 멀지 않은 리(Lee) 스트리트에 있는 호텔을 출발해 시드니 시내 산책에 나섰다.



◆차이나타운 입구에 '四海一家'란 현판 눈길


400만명 남짓의 인구가 200개 이상의 언어를 쓰고 있다는 다민족 국제도시를 편린이나마 우선 도보로 훑어보기로 한 것.중앙역(Central Station)을 지나쳐 해사박물관(Maritime Museum)의 흰색 지붕이 우뚝 솟은 달링 하버(Darling Harbor)를 향한 여정을 시작했다.


사람들이 분주하게 거리를 오가는 모습에서 도시의 활기가 느껴진다.


철도광장(Railway Square)을 벗어나자마자 낯익은 풍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서울과 도쿄 정도를 빼고는 세계의 여느 대도시를 가도 찾아볼 수 있는 곳,차이나타운이다.


초입(初入)의 에디(Eddy) 애브뉴에 들어서자마자 단아한 단청의 대문이 눈에 꽉찬다.


정자(正字)의 붓글씨로 쓴 '사해일가(四海一家)'란 현판과,그 위에 영문(英文)으로 적어놓은 'Within the four seas,all men are brothers'란 글귀가 나그네의 마음을 편안하게 어루만진다.



◆탁 트인 '달링 하버'에 서면 가슴 깊은 곳까지 시원


미국의 뉴욕과 샌프란시스코,캐나다의 토론토와 밴쿠버 등 '신대륙'의 대도시들이 그렇듯,이곳 시드니에서도 도심 한복판에 번듯하게 차이나타운이 들어서 있는 데는 눈물겨운 사연이 담겨있다.


유럽 이주자들은 호주의 금광과 탄광 개발,산업용 철도 건설 등을 위해 동남아 등을 전전하고 있던 중국인 '쿨리(cooly·苦力)'들을 값싼 산업노예로 들여다 부렸다.


그 후손들이 모여 살고 있는 곳이 시드니의 차이나타운이고,뉴욕과 샌프란시스코의 '아메리카 차이나타운'이다.


잠시의 상념을 떨치고 차이나타운을 왼쪽으로 벗어나자 헤이(Hay) 스트리트와 만나고,다시 오른쪽 편 하버 스트리트로 들어서 북쪽으로 발걸음을 이어가자 탁트인 바다(달링 하버)가 가슴 깊은 곳까지 시원하게 기분을 전환시켜 준다.



◆'카페 크루즈' 타고 풍경놀이


산책은 여기까지.50분 가까이 걷고 나니 다리가 뻐근해진다.


왕복 두 시간 가까운 산책을 마치고 다시 호텔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제대로 여장을 차려 택시를 잡아타고 본격적인 시드니 탐험에 나섰다.


철도광장에서 록스까지 쭉 뻗어있는,이 도시에서 가장 오래된 거리라는 조지 스트리트를 30여분 달리니 하버 브릿지가 나타난다.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미항(美港)의 기막힌 풍경을 어떻게 글로 다 묘사할 수 있을까.


커피와 쿠키가 제공되는 '카페 크루즈'를 타고 1시간10분 가까이 미항 일대를 둘러본 뒤 다시 차를 타고 40분가량 위쪽으로 달려 시드니를 에워싼 코랄해(海)를 한 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노스 헤드(North Head)로 갔다.


굽이굽이 끝없이 이어지는 오르막길을 한참 달리자 키 작은 침엽수와 관목의 숲들이 상당한 고지대로 올라왔음을 짐작케 한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10분 정도 걸어 올라가자 커다란 나무망치로 뒤통수를 세게 두들겨 맞은 듯한 충격과 전율에 압도된다.


남태평양의 푸르디푸른,코발트빛 망망대해와 깎아지른 해안 절벽의 오묘한 조화는 미국 애리조나주의 그랜드캐년,캐나다 노바스코샤의 케이프 브레튼 섬,노르웨이의 송네(Sogne) 표르드 등을 처음 봤을 때의 감동과 비견된다.


말 그대로 '어머니 품과 같은 자연(mother nature)'이 주는 즐거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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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항공.아시아나 매일 인천-시드니 직항편 운항 ]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매일 인천~시드니 직항편을 운항하고 있다.


콴타스항공이나 캐세이패시픽항공 등을 이용해 일본이나 홍콩을 경유해 갈 수도 있다.


인천에서 시드니까지 항공시간은 10시간 안팎.


원래는 한국과의 시차가 1시간에 불과하지만 시드니가 속한 뉴사우스웨일즈주와 빅토리아주,사우스 오스트레일리아주 등은 10월31일부터 3월27일까지는 일광절약시간(서머타임)이 적용돼 한국보다 2시간 늦다.


한국과 계절이 정반대여서 지금이 늦봄·초여름 계절이지만,일교차가 심해 아침과 저녁에는 쌀쌀한 경우가 있으므로 가벼운 점퍼를 챙겨가는 게 좋다.


한국과 달리 자동차가 왼쪽 통행을 하므로 시내 횡단보도를 건널 때는 오른쪽(왼쪽이 아님) 편에서 자동차가 달려오지 않는지 반드시 살펴봐야 한다.


호주에 입국하려면 비자가 필요하지만,여권과 왕복항공권만 있으면 전산처리로 발급받을 수 있는 전산처리 입국 심사제(ETA)를 운영하고 있다.


항공권을 구입할 때 관광비자에 관해 문의하면 자동으로 비자를 발급해준다.


별도의 수수료는 들지 않으며 관광비자 유효기간은 1년이다.


한 가지 주의할 것은 호주는 환경과 농업부문 보호를 위해 식품이나 동식물에 대한 검역이 엄격하다는 점.식품이나 동식물 제품을 소지하고 있는 경우 입국 신고 카드란에 꼭 신고해야 한다.


호주에 관한 여행정보는 호주정부관광청(www.australia.com 또는 02-399-6501)에서 챙길 수 있다.


호주정부관광청에서는 시드니 등 호주 주요 지역의 여행책자를 무료로 나눠주고 있다.


이학영 생활경제부장 ha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