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道薰 < 산업연구원 연구본부장 > '단군 이래 가장 큰 잔치'라는 APEC 정상회의가 내일부터 열린다. 이미 잔치는 시작돼 주초부터 장관급 회담이 계속돼 왔고, 세계의 내로라하는 기업인들의 모임도 잇따르고 있다. APEC 연례회의는 전 세계 경제의 절반이 넘는 나라의 정상들과 각료들이 모두 모이는 자리인 만큼 가히 세계경제의 향후 흐름을 가늠하는 자리가 될 만도 하다. 그래서 APEC 정상회의는 WTO가 주도하는 무역자유화가 주춤거릴 때 거기에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하는 자리로서 그 역할을 톡톡히 해 왔다. 금년에도 12월에 홍콩에서 열릴 WTO 통상장관회의를 앞두고 지금 진행하고 있는 DDA 협상을 내년까지 끝내도록 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이미 전달됐다. 이번 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APEC과 여타 국제기구가 추진하는 '세계화'의 움직임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대두됐지만,이미 대세로 인정받고 있는 세계화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대다수가 공감하고 있는 것 같다. 역대 APEC 정상회의를 개최해 온 국가들이 다 그러했듯이 우리나라도 이 큰 잔치를 이용해 우리나라의 경제상황을 바로 알리고 투자대상국으로서의 매력을 홍보하는 데 힘을 기울여 왔다. 이렇게 좋은 기회를 다른 나라인들 놓칠 리가 없다. APEC 연례회의장은 각국의 IR 경연장이 되다시피 하고 있다. 서로 자국에 투자를 유치하려는 전장이 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APEC 모임의 내용을 종합해 보면 어딘지 모르게 좀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세계 4대 강국을 비롯한 아시아ㆍ태평양 지역 21개국의 정상들이 모이고 중요한 각료들까지 대거 참여하는 자리에서 WTO 각료회의에 메시지를 전달하고,각국의 투자 유치의 경연장 역할을 하는 정도의 결과에 그친다면 말이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라는 말이 있듯이 아쉽게도 APEC이라는 기구는 그 화려함에도 불구하고 역내의 무역 및 투자 자유화를 실질적으로 진전시키기 위한 결정을 내릴 만한 어떠한 수단도 가지고 있지 않다. 역대 APEC 정상회의 가운데 가장 실질적인 성과를 올린 것으로 평가되고 있는 1994년의 인도네시아 회의에서 APEC 회원국들이 자발적으로 무역 및 투자자유화를 진전시키기 위한 행동계획(IAP)들을 제출하고 실행하자는 '보고르 선언'이 채택됐고, 그 이후 동 선언의 정신을 재확인하는 성명은 수차례 채택됐지만 이를 실행에 옮기게 하기 위한 어떠한 실질적인 조치도 이뤄지고 있지 않은 실정이다. 그래서 이번 APEC 정상회의에서는 무역 및 투자자유화를 위한 실질적인 성과를 올리기 위한 결정이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APEC이 지향하고 있는 이른바 '열린 지역주의' 정신에 입각해 역내 회원국들만 (역외국들은 가만히 있는데) 일방적으로 무역자유화를 추진한다는 것은 이상일 뿐 실천에 옮기기는 무척 어렵다는 것이 드러났다. 그렇다고 회원국들 사이에 WTO보다 더 진전된 형태의 역내 무역자유화를 지향하는 것은 APEC이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감안하더라도 적절하지 않을 뿐더러 미국 등 주요 회원국들이 바라지 않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APEC 정상회의에서 역내 투자자유화를 추진하는 협정을 맺기 위한 협상을 시작하기로 결정하는 것은 어떨지 제안해 본다. 무역자유화만큼 역외 차별이라는 걸림돌도 적고 세계적으로 투자자유화를 보장하는 협정도 맺어져 있지 않기에 APEC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가지는 의미가 매우 클 것이다. 마침 올해 APEC 연례회의의 주요 화두의 하나가 바로 '투자'인 것 같다. 각국이 투자유치에 경쟁적으로 나서고 있고, 정상회의 전에 열린 APEC과 OECD가 함께 개최한 심포지엄의 주제도 '투자자유화'였다는 점도 시사하는 바 크다. 동 심포지엄에서도 필자와 비슷한 주장이 제기된 것 같은데 정상들이 그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