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북한이 롯데관광에 개성 관광사업을 공식 제의한 것과 관련,오랜만에 말문을 열었다. 지난달 12일 그룹 홈페이지에 "비리 경영인의 인사 조치가 잘못된 것이라면 비굴한 이익보다는 정직한 양심을 택하겠다"며 북측의 김윤규 전 현대아산 부회장의 대표이사 복직 요구를 정면으로 거부한 지 한 달 만이다. 현 회장은 10일 현대아산 임직원에게 보낸 e메일에서 대북 사업을 계속하겠지만 그렇다고 대충 넘어갈 수는 없다는 점을 분명히했다. "얼마 전 우리는 남에게 알릴 수 없었던 몸 내부의 종기를 제거하는 커다란 수술을 받았다. 수술을 받지 않는다면 그것이 커져서 나중에는 팔다리를 잘라내야 하는 불구의 몸이 되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현 회장은 이날 임직원들에게 보낸 e메일에서 김윤규 전 부회장을 '종기'에 비유하며 퇴출의 불가피성을 재차 강조했다. 그는 "마취에서 깨어나 몸의 회복을 기다리는 동안 우리의 오랜 친구는 우리의 모습이 변했다고 다가오기를 거부한다"면서 "더욱더 건강한 모습으로 함께하기 위해서 어려운 결심을 한 것인데 우리의 옛 모습에 익숙한 친구는 거리를 두려고 한다"며 서운함을 드러냈다. 그러면서도 "현대아산과 북한은 오랜 우정을 나눈 친구,아니 그 이상의 형제"라며 "형제가 우리의 모습을 인정할 때까지 인내를 가지고 기다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더 이상 끌려 다니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대목이다. 현 회장은 그동안의 구태에서 벗어나야 한다면서 북측이 달라진 환경을 받아들여 줄 것을 우회적으로 촉구하기도 했다. 그는 "성장하기 위해서는 모습도 바뀌고,그 모습에 걸맞게 새로운 옷도 입어야 하고 새로운 신발도 신어야 한다"면서 "그동안의 구태에서 벗어나 합리적이고 체계적인 조직 개편을 통해 빠르게 변화에 대처해야 하고,투명하고 정직한 사업 수행으로 국민에게 사랑받는 기업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이날 현 회장의 메일에 대해 "북측에 유화 제스처를 보낸 것으로 해석할 수만은 없는 내용"이라고 말했다. 전경련의 한 관계자도 "대북 관광사업도 과거와 같은 퍼주기식은 이제 지양돼야 한다"며 "현 회장이 북측의 인사간섭 등 무리한 요구에 끌려다니지 않고 원칙대로 대응하겠다고 밝힌 것은 장기적 관점에서 볼때 대북사업을 더욱 탄탄히 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 류시훈 기자 bad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