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통계] 15. 숫자를 두려움 없이 대하라

모든 것이 숫자로 표현되고 요약되는 숫자정보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숫자만 나오면 자신 없어 하는 경우가 많다.


사람들이 숫자에 주눅이 드는 예는 화술에 관한 책을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대부분의 화술에 관한 책 속에는 '숫자를 써서 공격하라''숫자의 권위를 이용하라'는 내용의 장(章)이 있다.


상대방의 공박을 잠재우고 좀 더 설득력 있게 보이는 테크닉으로서 숫자가 필요할 때마다 인용하라는 것이다.


심지어는 그 숫자가 정확하지 않을지라도 상대방은 대개의 경우 숫자에 자신이 없어 반박할 엄두도 내지 못한다는 설명을 덧붙이기도 한다.


다음의 인용문은 이런 경향을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인간현상도 양적인 언어로 풀이하면 뭔가 더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그런 효과를 노려서인지 모르겠으나 유난히 숫자를 잘 암기하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공식적인 담론에서는 물론 일상적인 대화를 나눌 때에도 그 수치들을 즐겨 인용한다.


그의 이야기는 늘 어떤 객관적인 사실을 말하는 듯이 여겨지고 그래서 항상 힘을 지닌다.


그의 주장을 반박하기는 쉽지 않다.


왜냐하면 그 정도로 다양한 자료를 자유자재로 인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똑같은 사실을 말하면서도 통계수치를 동원하면 더 과학적이고 정확한 것처럼 들린다."(김찬호,사회를 본다 사람이 보인다,고려원미디어,1994,82쪽)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다른 어떤 과목보다도 수에 관련된 것들을 많이 배워 왔으면서도 간단한 숫자에도 자신 없어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숫자에 자신 없어 하는 첫 번째 이유는 전통적인 관습에서 찾을 수 있다.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의 '양반전'에 의하면 양반은 "손으로 돈을 만지지 말며 쌀값을 묻지 않는다"고 했다.


상업을 천하게 여기는 사회 속에서 수리적인 지식은 양반이 갖춰야 할 교양에 들지 못하였고 마을 서당에서도 수에 관한 지식은 일절 가르치지 않았다.


이렇게 숫자를 무시하는 관습은 현재까지 이어져 숫자를 따지는 사람은 쩨쩨한 사람이 되고 숫자를 다룰 때 실수를 하면 오히려 계산적이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을 입증이나 한 듯이 떳떳해하는 경우도 있다.


숫자에 자신이 없어 하는 두 번째 이유는 수학교육이 적절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고등학교까지 수에 관련된 과목을 다른 어떤 과목보다도 많이 배웠으면서도 숫자 얘기만 나오면 많은 사람들이 깜깜해 한다는 사실이 이를 간접적으로 입증해 준다.


물론 수학적인 계산은 맞지 않으면 틀리는,즉 약간의 융통성조차 없어 차가운 느낌을 주고 그래서 동서양을 막론하고,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많은 사람들이 숫자에 자신이 없어 한다.


"숫자를 왼다든지 가령 집 주소,전화번호 따위,사람의 이름,무슨 지명,사무적인 것,계산을 필요로 하는 것 등 캄캄절벽이 될 때가 많지요."(박경리,문학을 지망하는 젊은이들에게,현대문학,1995,117쪽)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저자인 루이스 캐롤은 덧셈(addition),뺄셈(substraction),곱셈(multiplication),나눗셈(division)을 야망(ambition),착란(distraction),추함(uglification),조롱(derision)에 비유했는데 이러한 계산에 대한 혐오는 나를 포함해서 보통 사람들이 계산을 얼마나 지루하고 성가시며 스트레스가 쌓이게 하는 것인가를 잘 나타낸다."(존 파울로스,식수(識數)의 너머로(beyond numeracy),빈티지출판사,1992,52쪽)


대부분 학생들은 수학시간에 칠판 가득한 숫자나 기호를 베껴 쓰고,용어와 정의를 외운 뒤 기본 문제와 응용문제 풀이를 습관적으로 반복해 계산을 하고 답을 내는 데 익숙하다.


그러나 계산을 위한 훈련에 비해 계산과정에 대한 이해,그 결과로 나타나는 숫자를 올바르게 해석하는 교육은 상대적으로 덜 강조되는 것 같다.


그 예로 이민이나 유학 등의 이유로 미국으로 전학을 간 한국의 고교생은 미국 수학선생님을 두 번 놀라게 한다고 한다.


처음에는 어려운 문제를 간단히 풀어내는 계산 실력에 놀라고 그 다음에는 왜 그런 과정으로 풀어야 하는지에 대하여 논리적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 다시 놀란다는 것이다.


수학을 오랫동안 교육받고도 숫자에 조리 있게 다가가지 못하고,숫자가 의미하는 속뜻을 자신 있게 이해하지 못하는 수문맹이 된다는 사실은 논리적인 사고력을 키우지 못하는 주입식 교육이 한 원인임을 부인할 수 없다.


주입식 교육환경에서는 이런 일이 흔하다는 것을 다음의 인용문이 말해 준다.


"자기 독창적인 생각이 없을수록 성적은 좋게 나올 수밖에 없다.


초등학교 교사 류홍렬 선생님은 중학교에서 반에서 1,2등 하는 자기 여동생이 도덕시험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어느 날 도덕시험문제집을 보다가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하는 자기 입장에서 보아도 참 애매한 문제라고 생각되어 물어보았더니,그 아이는 금방 교과서적인 정답을 찾아주었다.


그래서 다른 보기에 대한 타당성을 물었더니 이렇게 대답하더라는 것이었다.


몰라.참고서에 그렇게 답으로 나와 있어.도덕은 내 생각대로 하면 다 틀려서,다 외워서 답 쓰는 거야 …." (김찬호,사회를 본다 사람이 보인다,고려원미디어,1994,38쪽)


매일매일 마주치는 수많은 숫자를 논리적이고 체계적으로 생각하고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갖는다는 것이 숫자정보사회 속에서 누구에게나 꼭 필요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숫자를 올바르게 이해한다는 것은 두려움 없이 숫자를 대하고 논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을 때 가능하다.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못한다.


단지 사람들이 숫자놀음을 할 뿐이다.


사람들이 숫자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숫자나 통계의 잘못된 사용이나 고의적인 왜곡이 행해진다.


따라서 우리가 숫자에 자연스럽게 다가갈 때 숫자나 통계의 잘못된 사용을 막고 숫자정보사회 속에서 숫자의 신뢰성과 유용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김진호 jhkim@kndu.ac.kr


[ 약력 ]


△서울대 경영대 졸업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경영학 석·박사


△(전)KBS 선거예측조사 자문위원


△(현)국방대 경영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