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유럽과 아시아를 동시에 갖고 있는 나라다.동로마 제국부터 오스만 투르크 제국에 걸쳐 1500여년간 세계 역사의 중심이었던 이스탄불을 가로 지르는 보스포러스 해협을 경계로 왼쪽은 유럽,오른쪽은 아시아로 갈린다.두 대륙은 두 개의 현수교로 연결돼 있다.이스탄불은 동·서양이 만나는 곳이자 출발점인 셈이다.


동로마시대에 콘스탄티노플로 불렸던 이스탄불은 지금은 수도를 앙카라에 넘겨줬지만, 여러 제국의 흥망과 영욕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세계적인 고도(古都)다.일찍이 18세기에 프랑스의 나폴레옹이 “자연의 축복과 역사적 유적을 동시에 간직한 곳”이라고 극찬했듯 이질적인 문화와 종교 유산들을 한 데 품고 있다.이제부터 이곳의 명소들을 둘러보자.



성 소피아 성당은 이스탄불의 역사를 그대로 보여주는 걸작 중의 걸작이다.


537년 건립돼 900년 동안은 동로마 제국의 대성당으로,오스만 제국과 터키 공화국 초기까지 400여년간은 이슬람 사원(모스크·mosque)으로 사용됐던 이 성당은 그 자체가 역사다.


지금은 박물관으로 바뀌었다.


전체 면적이 2300평 정도로 약 1000년 동안 세계 최대 건물로 꼽혔던 이 성당 건립에는 당대에 내로라하는 건축가와 기하학자들이 모두 동원됐다고 한다.


소피아 성당은 11세기 때 만들어진 모자이크로 장식돼 있어 미술사적으로도 큰 가치를 가진다.


특히 예수의 모자이크 벽화는 유명하다.(예수가 흑인으로 그려진 그림도 이채롭다)


모스크로 사용됐을 때는 우상을 금지하는 이슬람 교리 때문에 벽과 아치를 장식한 아름다운 모자이크 인물상과 그림들이 두터운 회 칠로 가려지는 수난을 겪기도 했다.


1847년 스위스의 건축가가 건물을 보수하다 감춰져 있던 모자이크를 발견했으나,종교적인 문제로 다시 석회석으로 덮여졌다고 한다.


지금도 성당 내부 천장 일부에서만 원래의 안쪽 모습이 일부 드러나 있을 뿐이어서 과연 무엇이 들어있는지 참 궁금했다.


중앙 돔 천장에는 19세기께 쓰여졌다는 아랍어로 된 코란 귀절이 새겨져 있다.


본당 양쪽에 있는 기둥들의 꼭대기 머리는 코린트 양식의 진수를 보여준다.


또 중앙 바닥에는 녹색과 붉은색 대리석 석판들로 이뤄진 원이 있는데 동로마 제국 시절에는 '우주의 배꼽'으로 간주됐다고 한다.


이는 중국인들의 '중화사상'과 비슷한 것으로 황제란 하나님을 대신해서 세상을 통치한다는 의미였다고.


소피아 성당을 나와 바로 길 맞은 편으로 건너 가면 '블루 모스크'라는 유명한 이슬람 사원을 만난다.


원래 이름은 '술탄 아흐멧 사원'이지만,실내 장식에 푸른색의 타일을 사용했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어 지금은 원명보다 더 많이 쓰인다.


블루 모스크는 17세기 초 소피아 성당에 버금가는 모스크를 지으라는 술탄(오스만 투르크시대 황제의 호칭) 아흐멧의 명령으로 건립됐다고 전해 진다.


규모는 소피아 성당보다 작다.


원래 메카 이외의 지역에서는 모스크에 6개의 탑을 세울 수 없었는데,이 사원만은 예외로 6개의 첨탑을 갖고 있다.


또 이곳을 이슬람 성지순례의 출발지로 삼았다고 한다.


술탄들이 이렇게 큰 종교적 의미를 부여했던 것을 보면 이곳을 소피아 성당을 대체하는 대표 사원으로 삼으려 했던 것같다.


이스탄불 방문에서 빼놓을 수 없는 왕궁이다.바로 톱카프 궁전과 돌마바흐체다.


톱카프 궁전은 오스만 제국이 콘스탄티노플을 정복한 후 첫번째로 세운 궁전으로 약 400년간 왕궁으로 사용됐다.유럽쪽 이스탄불을 고대 왕국이 있었던 구시가지와 현재 관공서 등이 들어서 있는 신시가지로 나누고 있는 골든 혼(Golden Horn·금각만)과 보스포러스 해협,마라마라 바다가 한 눈에 보이는 절경에 세워져 있다.이 궁전은 21만평을 넘는 넓이에 5km에 이르는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으며,왕족들이 소유했던 도자기와 보석 무기 예술품 등을 소장하고 있다.


돌마바흐체(채워진 정원이란 뜻)는 톱카프 궁전의 뒤를 잇는 왕궁으로 ‘제2의 바르세이유’로 불릴 만큼 화려하다.보스포러스 해협에 연해 있는 이 궁전은 원래 바닷물이 들어왔던 지역을 매립해 19세기 중반 르네상스 스타일로 지어졌는데 아름다운 정원이 있어 지금의 이름이 붙여졌다.1923년 왕정이 무너지고 터키 공화국이 들어설 때까지 6명의 술탄들이 거의 100년간 왕궁으로 사용한 곳이다.


이 왕궁은 건물 전체가 거의 수입품이다.건축하는데 당시 금 14t과 은 40t을 포함,모두 500만 금화(지금의 5억달러 상당)가 들었다고 하니 화려함이 어떨 지는 상상해 보시라.


내부에는 보물이 가득하다.홀 중앙에는 영국 빅토리아 여왕 2세가 선물한 무게 4.5t에 750개의 촛대가 달린 세계 최대의 샹들리에가 걸려 있고,바닥에는 러시아 니콜라스 황제로부터 받은 곰가죽이 명장(明匠)들이 만든 화려한 카펫 위에 깔려 있다.한 쪽에는 나폴레옹이 선사했다는 피아노가 있고,다른 쪽에는 이집트에서 선물한 153kg짜리 캘린더 겸용 시계가 서 있다.계단과 기둥은 금박과 크리스탈로 장식돼있다.각 층에는 중국과 일본 도자기도 눈에 띈다.심지어 술탄이 사용했던 화장실은 이집트산 대리석으로 만들었다니 어안이 벙벙할 정도다.


구불구불한 통로를 지나면 여왕과 시녀들의 거처인 ‘하렘’이 있다.술탄과 12살 이하 왕자들만 드나들 수 있었던 ‘금남(禁男)의 장소’다.그러나 하렘의 은밀한 로맨스를 전하는 야사(夜史)가 구전돼오고 있다고 현지 관계자가 귀뜸해줬다.국경이 없다는 사랑에 금지된 장소가 있을 턱이 있겠는가.


왕궁을 한바퀴 돌고 막 빠져나오기 직전 한 켠에 서 있는 고물시계가 눈에 들어 왔다.시계바늘이 9시5분을 가리킨 채 멈춰져 있다.국부로 추앙받는 터키 초대 대통령 케말 파샤가 1938년 앙카라 대통령궁을 떠나 이곳을 방문했을 때 지병으로 57세를 일기로 숨진 시간을 기린 것이라는 현지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나니 과연 이스탄불에는 역사가 숨쉬고 있다는 느낌이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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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수첩 ]


터키는 국민의 98%가 이슬람 교도(다수는 수니파)인 이슬람 국가다.그러나 기독교 유적도 많아 성지순례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구약성서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가 닿았다는 아라랏트산과 그 흔적이 있다는(눈으로 확인을 못했지만)로 하란 지방,사도 바울의 고향 다르소(다소)에다 성모 마리아가 노후를 보냈다는 교회까지 가득하다.


또 하나 흥미로운 것은 그리스정교 본부가 그리스가 아닌 이스탄불에 있다는 점이다.오스만 투르크 제국이 동로마시대의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했을 때부터 있었다고 한다.지금의 터키는 사이가 극히 안좋은 그리스와 신학교를 세우지 않는 것 등 몇가지 조건을 전제로 존치하고 있다고 한다.


물어 물어 찾아간 그리스정교 본부는 이스탄불 구시가지에서 외곽으로 한참 들어가 빈민가 비슷한 높은 언덕에 자리잡고 있었다.그래도 교회 앞에는 터키 경찰 초소가 있었는데,출입을 저지하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교회 내부 사진을 찍으려고 문을 두드리니 관리인이 나와 하는 말이 사진 촬영은 미리 허락을 받아야 한단다.더욱이 다음날에 큰 행사가 있어 촬영은 안된다고 손사래를 쳐 어쩔 수 없이 밖으로 나와 담장 너머 교회만 찍어야 했다.이스탄불은 역시 성지다.


이스탄불(터키)=문희수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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