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발부터 3시간이나 지연됐다. 현대차 첸나이 공장을 둘러보기 위해 지난 23일 인도 최고라는 제트 에어를 예약했지만 `인디안 타임'에는 예외가 없었다. 제트에어 직원의 표정에서 미안한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그저 당연하다는 듯 공항라운지 티켓을 끊어주는 것이 바쁜 승객들의 시간을 3시간이나 빼앗은 미안함에 대한 표현의 전부였다. 오후 4시에 떨어진 첸나이 공항은 초라했다. 국제공항이지만 서울 강남의 고속버스터미널 정도라는 느낌이었다. 공항 바깥의 무질서와 혼란, 번잡스런 풍경 역시 뉴델리와 다르지 않았다. 현대차의 성공신화를 등에 업고 남아시아의 울산을 꿈꾸겠다는 곳이 고작 이 정도밖에 안되냐는 생각에 일단은 실망스러웠다. 첸나이는 뉴델리와 마찬가지로 시내 한복판에 소떼가 활보하고 있었고 공터마다 쓰레기들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곳곳에 설치된 물펌프에서 물동이를 이고 나르는 아낙네들의 모습은 우리나라 1970년대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공항에서 현대차 공장까지는 아스팔트가 깔린 산업도로가 있었지만 중앙분리대는 고사하고 비포장 도로보다 나을 것도 없었다. 집채만한 트럭들이 호시탐탐 중앙선을 엿보는데다 틈만 보이면 운전자들이 너나없이 가속페달을 밟아대니 이곳으로 출퇴근하는 현대차 직원들에겐 생명보험이 반드시 필요할 것 같았다. 공항에서 35㎞의 거리를 1시간30분만에 도착한 공장은 첫눈에도 우선 규모에서 인도인들을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마침 퇴근시간이라 통근버스들이 정문을 나서고 있었는데 뉴델리의 낡아빠진 시내버스들과 비교가 됐고 이런 버스를 타고 다니는 직원들이라면 인도 최고라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1998년 9월부터 자동차 생산을 시작한 첸나이 공장은 부지 65만평에 건평 6만1천평으로 현재 상트로 18만8천대와 엑센트 3만7천대 등 연간 25만대의 생산설비를 갖추고 있었다. 직원 수는 주재원 46명을 포함해 정규직이 총 3천50여명이고 임시직을 합치면 6천여명에 달한다고 했다. 한국의 17개사를 포함해 총 80여개사나 되는 협력업체 직원들은 거의 8만명에 육박하고 있었다. 대가족 제도가 여전한 인도의 특성을 감안해 5인 가족으로 계산하면 400만명의 첸나이 인구 중 10%는 현대차 덕분에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 첸나이는 이제 인도를 넘어 남아시아의 울산을 넘보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공장은 2교대로 돌아가며 주간 근무자는 하루 세끼, 야간 근무자는 두끼의 식사가 제공되는데 이는 인도에서는 파격적인 대우라고 했다. 또 직원들의 복지를 위해 공장부지 한쪽에 공원을 조성해 놨는데 즐비하게 들어선 야자수가 시선을 당겼고 환경이나 조경에서 인도 최고라 해도 손색이 없어 보였다. 회사측은 인도 소매시장이 여전히 닫혀있어 주재원들이 식품 조달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점을 감안, 공원 안에 커다란 야채밭을 일궈 한국의 푸성귀들을 심어 놓았고 주정부에서 분양받은 돼지 수백마리도 사육하고 있었다. 현대차는 지난해 현재 인도 자동차 시장의 18%를 차지, 마루티에 이어 2위를 기록하고 있으며 올해는 이를 20%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지난해 인도 내수시장과 수출을 포함해 총 22만4천243대의 자동차를 판매, 전년보다 30% 이상의 성장세를 보였고 특히 수출은 8만2천93대로 전년보다 95%를 늘렸다. 상트로와 엑센트를 100% 인도에서 현지 생산하고 있는 현대차는 제2공장 건설 등을 위해 2008년까지 5억달러를 추가로 투자할 방침이다. 이렇게 되면 현대차 첸나이 공장은 총 40만대의 생산설비를 갖추게 된다. 현대차는 인도 1위 업체인 마루티에 비해 생산 설비나 판매 대수에서는 떨어지지만 브랜드 이미지와 품질에서는 최고라는 평가다. 그래서 모든 차종에 대해 동급의 마루티보다 5%이상 높은 가격을 받고 있다. 서방의 다른 나라와는 달리 인도에 주재하는 한국인의 99%가 현대차를 이용하는 것도 특이한 현상이다. 인도에서 직영점 3개와 딜러 164개, A/S센터 408개를 보유하고 있는 현대차는 올 연말까지 판매망을 180개로 늘릴 계획이다. 또 현지에서 수출하는 국가도 작년의 44개국에서 올해는 60개국 이상으로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인도 시장에 대한 전략과 관련, 양승석 인도법인장은 "당분간 큰 욕심 내지 않고 부동의 2위 자리를 유지하면서 고급 브랜드의 이미지를 굳히는데 주력하겠다"고 밝혔다. 현대차가 50만대의 생산 설비를 갖출 때면 마루티의 생산 용량은 75만대로 늘어나니 단기간에 마루티를 따라잡는 것은 무리라는 설명이었다. 그는 또 현지 직원들의 노조설립 가능성에 대해 "일부 직원들이 새로운 요구를 들고 나오고 있고 공산당 등의 외부세력이 개입할 움직임도 있지만 아직은 그리 신경쓸 단계는 아니다"면서 "어지간한 요구는 그냥 들어주고 있다"고 말했다. 양 법인장은 아울러 "인도 시장이 아직은 소형차 위주지만 미국이 1천명당 800대, 유럽이 500대, 우리나라가 300대의 승용차를 보유하고 있다면 인도는 이제 6대에 불과한 만큼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갖고 있다"면서 "인도에서도 자동차가 사치품이 아닌 생필품이 되는 날이 머지 않아 반드시 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첸나이는 현대차가 특히 서남아와 중동 쪽으로의 수출 다변화를 목표로 9년전에 둥지를 틀었던 곳이다. 남아시아 대륙의 동남쪽 해안에 위치해 인도의 울산이란 표현이 완벽하게 맞아 떨어지는 이곳은 지난 연말 쓰나미 참사를 크게 입었지만 해변 어디에서도 쓰나미의 상흔은 더 이상 남아있지 않았다. 하룻밤을 보냈던 메르디안 호텔 종업원들은 동양인이라면 누구든지 `현대맨'으로 여기는 눈치였다. 온갖 규제에다 관료주의로 악명이 높은 인도지만 현대차는 이미 첸나이에서 세계 최고라는 프리미엄을 누리고 있었다. (뉴델리=연합뉴스) 정규득 특파원 wolf85@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