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60주년을 닷새 앞둔 2005년 8월10일.휴대폰 전문기업인 팬택계열로서는 잊을 수 없는 날이었다. 한국 업체로는 처음 일본 휴대폰 시장을 뚫었기 때문이다. 팬택계열은 일본 진출을 계기로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고 기술력을 강화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이날 팬택계열 임직원들은 마냥 즐거워하지만은 않았다. 일본 시장에서 외면당하면 망신은 둘째 치고 글로벌 경쟁력에 타격을 입을 수 있어서다. 서울 여의도 신송센타빌딩 5층에 있는 팬택 디자인팀 직원들은 이날 책상 위에 일본제 휴대폰을 잔뜩 진열해 놓고 결사항쟁 의지를 다졌다. 팬택계열은 1991년 모기업인 팬택이 설립된 후 14년간 앞만 보고 질주해 왔다. 특히 2001년 현대큐리텔을 인수한 데 이어 올해 SK텔레텍(현 SKY텔레텍)을 인수함으로써 거대 휴대폰 업체가 됐다. 2002년 1조4000억원이었던 매출이 지난해 3조원에 달했고 올해는 4조5000억원으로 늘어나게 된다. 이제 국내에서는 에 이어 2위 휴대폰 업체가 됐다. 뒤돌아보면 팬택계열의 지난 14년은 공격 경영의 연속이었다. 팬택은 91년 창사 후 무선 호출기(일명 삐삐)를 생산하다가 97년 휴대폰 제조업체로 변신했다. '삐삐'가 한창 잘나가던 때 '포스트 삐삐'를 준비하기 시작했던 것.이 전략은 적중해 삐삐는 급속히 퇴출됐고 팬택은 그로부터 5년 후인 2002년 휴대폰만으로 매출 1조원을 돌파했다. 팬택은 '규모의 경제'와 '내수시장 참여'가 절실한 시점에 현대큐리텔을 인수했다. 창업자인 박병엽 부회장으로선 자신의 '전부'를 건 승부였다. 이때 덩치를 키우지 않고 중국 시장에만 매달렸던 다른 중견 업체들은 결국 시장에서 퇴출됐다. 올해는 SK텔레텍을 인수함으로써 디자인을 강화하고 세계 시장에서 팬택 브랜드의 이미지를 높일 수 있게 됐다. 그러나 팬택계열의 공격적인 경영에 비판을 가하는 이들도 없지 않다. 경쟁업체 전문가들은 "덩치를 키운다고 저절로 경쟁력이 강화되는 것은 아니다"고 말한다. 또 기술이 융합되는 '컨버전스 시대'에 휴대폰에만 매달려 이길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는 이들도 있다. 이런 점에서는 종합 전자업체인 삼성전자나 가 유리할 수 있다는 얘기다. 팬택계열은 자사 브랜드로 세계 시장을 뚫고 있다. 지난해에는 34개 국가에 1800만대를 수출했고 올해는 51개 국가에 3000만대를 내보낼 계획이다. 올해 자체 브랜드 수출 비중은 66%에 달할 전망이다. 하지만 아직 '팬택'의 브랜드 파워는 삼성이나 LG에 미치지 못한다. 한화증권 김지산 연구원은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고 유럽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지 않고는 팬택계열이 '글로벌 빅5'로 도약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기술력 외에 마케팅 역량이 중요한 세계 시장에서 싸워 이기려면 이 부분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팬택계열은 휴대폰 전문기업의 이점을 살리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보고 있다. 이것 저것 모두 만드는 종합 전자회사들과 달리 시장 변화를 재빨리 간파해 대처할 수 있다는 얘기다. 소비자가 원하는 제품을 한발 앞서 내놓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팬택계열은 연구개발에 과감히 투자하고 있다. 팬택계열은 최근 4년간 6100억원을 기술 개발에 투자했다. 휴대폰 전문기업으로선 무모하다고 할 정도로 많은 금액이다. 올해는 투자 금액을 더 늘려 4300억원을 쏟아부을 계획이다. 이는 전제 매출의 10%에 가까운 수준이다. 연구개발비 비중이 크다는 삼성 LG도 7~8% 수준이다. 팬택의 연구개발에서 차별화되는 점은 개념조차 정립되지 않은 미래 제품에 관한 '선행 연구'를 강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도·감청 사태를 통해 새삼 주목받은 '비화폰'을 개발한 것도 팬택계열이었고 요즘 일반화된 카메라폰도 팬택이 맨 먼저 내놓았다. 팬택계열은 SK텔레텍 인수를 계기로 '글로벌 플레이어'로 도약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일단 2007년까지 세계 5위(2004년 세계 7위) 휴대폰 업체로 도약하는 것을 목표로 정했다. 이미 미주 유럽 중국 러시아 동남아 등에 5개 본부를 구축,다국적 기업형 경영체제를 갖췄다. 팬택앤큐리텔의 숙원이던 북미 직납체제도 갖췄다. 북미 최대의 이동통신 사업자인 버라이즌이 팬택앤큐리텔을 휴대폰 공급업체로 인정,3분기부터는 직납 매출도 발생하고 있다. 최근에는 중국 시장을 독자 브랜드로 공략하기 시작했고 인도와 브라질 시장에도 진출할 예정이다. 멕시코와 러시아 시장에서도 성장이 두드러지고 있다. 팬택계열 홍보담당 노순석 상무는 "노키아 같은 회사가 한국에서 나오지 말란 법은 없다"고 말했다. 김동욱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