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기 부동자금이 뭐지?] 필요한 곳엔 돈없는 악순화 초래

경제학을 통해 배우는 실물 경제에서 '가계는 소비의 주체'이고 '기업은 공급의 주체'다. 그러나 자금 문제와 관련해서는 통상적으로 '가계가 공급의 주체'가 되고 '기업은 소비의 주체'가 된다. 가계의 여유 자금을 기업이 빌리거나 아니면 주식 발행 등을 통해 조달한 뒤 사업 자금으로 쓰기 때문이다.


가계는 일반적으로 벌어들인 돈의 일부만 쓰고 남은 돈을 저축하게 된다.


이때 자금 공급자인 가계와 자금 수요자인 기업을 연결시켜 주는 역할을 하는 곳이 바로 금융 시장이다.


자금의 선순환이란 '가계에서 저축한 돈이 생산적인 투자를 하는 기업들에 적절하게 공급되고 기업들은 그 돈으로 투자와 생산을 늘려 일자리를 창출하며 이로 인해 가계 소득은 증가하는 일련의 과정들이 원활하게 이뤄지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가계에서 저축한 돈이 기업으로 흘러들어가지 않고 부동산 투기에만 집중되거나 자금은 남아도는 데도 정작 기업들이 이를 이용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최근 한국 경제의 문제점 중 하나로 지적되는 것이 바로 이 같은 '자금의 선순환 구조 붕괴'다.


◆자금 만기구조의 단기화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단기 부동자금(短期浮動資金)'이 늘어나는 것은 자금이 선순환되지 않을 때 나타나는 대표적 현상이다. 단기 부동자금을 사전적 의미로 풀이해 보면 '한 곳에 오래 머물지 않고(短期)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는(浮動) 자금'을 말한다. 구체적으로 얘기하면 금융회사들의 수신금액 중에서 만기 6개월 미만인 것들을 총칭하는 개념이다. 여기에는 수시 입출식 예금,6개월 미만 정기예금,양도성예금증서(CD),머니마켓펀드(MMF) 등이 포함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7월 말 금융권의 단기 부동자금은 434조6000억원이었다.


지난달과 비교하면 9조4000억원 증가했다.


올해 1월 말과 비교하면 무려 38조7000억원이나 늘었다.


단기 부동자금이 이처럼 늘어나는 것은 은행 금리가 낮아 시중 자금이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하고 있다는 데 일차적인 원인이 있다.


단기 부동자금이 늘었다고 해서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 경제 규모가 커지면 자연스레 증가하는 측면도 있고 일부 기업들은 물품 구매 등에 필요한 결제 자금을 MMF 등에 잠시 묻어 두기도 한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들 단기부동자금 규모가 금융회사 전체 수신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52%에 달할 정도로 급증했다.


금융정책 당국인 한국은행이 걱정스런 눈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단기 부동자금이 증가하게 되면 은행 입장에서는 고객이 언제 돈을 빼내갈지 모르기 때문에 기업들에 장기로 돈을 빌려주기가 힘들어진다. 단기 부동자금이 주식이나 부동산 같은 곳으로 몰려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을 초래하는 등 금융 시장의 불안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가계대출 사상 첫 기업대출 추월


가계 대출이 지나치게 급증해 기업 대출보다 많아지는 것도 자금 시장이 제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사례로 볼 수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예금 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293조3777억원(월말 잔액 기준)으로 기업대출 잔액 287조6445억원보다 5조7332억원 많았다. 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이 기업대출 잔액을 추월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외환위기 이전까지만 해도 은행의 기업대출 잔액은 124조원(1996년 말 기준)으로 가계대출 잔액(51조원)의 약 2.5배에 달했다. 최근 들어 가계 대출이 기업 대출을 추월한 것은 외환위기 때 과도한 기업 대출로 곤욕을 치렀던 은행들이 상대적으로 안전한 가계 대출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특히 주택을 담보로 한 대출 증가가 가계대출 급증의 주요인이다.


자금의 선순환이라는 측면에서 따져봤을 때 가계 대출이 기업 대출보다 많아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은행의 자금이 기업 투자에 사용되면 일자리가 늘어나고 경제성장률이 높아지는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지만 주택담보 대출 증가로 나타날 경우 부동산 가격만 급등시켜 경제 전체에 큰 부담을 주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은행들만 나무랄 수도 없다. 왜냐하면 은행이 기업에 돈을 빌려주려 해도 정작 기업들은 돈을 빌려 쓰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마땅한 신규 투자 기회를 찾지 못하고 있는 데다 자체적으로 보유한 여유 자금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 경제의 성장잠재력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는 얘기는 기업의 투자 감소로 인해 생산 능력이 점차 위축될 것이라는 우려다.


김동윤 한국경제신문 경제부 기자 oasis9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