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동길 < 숭실대 명예교수·경제학 > 한국축구가 동아시아축구선수권 대회에서 꼴찌로 망신을 당하자,감독을 바꿔야 한다는 소리가 요란하다. 그런 가운데 14일 열린 남북통일축구경기에서 '위기의 본프레레호'가 공격수들의 득점포가 살아나며 승리했다. 특수한 상황의 친선경기였는데 여기서 이겼다고 우쭐댈 일은 아니다. 더욱이 약체 팀에 이긴 것을 두고 한국축구의 회생을 말하는 것도 성급하다. 2002년 월드컵 4강은 다시 생각해도 짜릿하다. '대~한민국'을 외치는 것만으로도 힘이 솟았다. '히딩크를 대통령으로!'라는 구호까지 나올 정도로 그의 인기는 치솟았다. 그런 히딩크 감독도 한때 경질해야 한다는 여론에 밀려 실제로 경질될 뻔했다. 위기에 몰린 본프레레 감독은 "새로운 팀을 만들기 위해 선수들을 테스트하는 과정에 있다. 좀더 지켜봐 달라"고 한다. 본프레레 감독은 축구협회의 지원 소홀, 프로축구팀의 비협조 등 히딩크 때와는 다른 상황에서 팀을 이끌고 있다. 그를 일방적으로 매도하는 건 옳지 않다. 하지만 그는 경기에 지거나 졸전을 치른 후 "전술에는 문제가 없었으나 선수들이 열심히 뛰지 않았고 정신상태가 문제"라면서 선수들에게 탓을 돌렸다고 한다. 사실이라면 그의 리더십이 오히려 문제다. 경제가 나쁜 것은 투자에 소극적인 기업 때문이라며 기업 탓으로 돌리는 정부당국자와 다를 바 없다. 축구공은 둥글다. 둥근 공이 어느 골문을 가를지 모른다. 기술이 달리면 투지와 체력으로 강팀을 이기는 수를 찾아야 한다. 그게 훈련이고 작전이다. 히딩크는 체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어떤 기술도 먹히지 않는다면서 시간과 공간을 선점(先占)하는 '압도와 압박' 축구를 구사하기 위해 체력강화 훈련에 주력했다. 우리 선수들이 지치지 않고 뛸 수 있었던 것은 그런 훈련 때문이었다. 언제까지 히딩크 이야기만 하자는 게 아니다. 투지도 색깔도 없어진 한국축구가 안타까워서 하는 소리다. 오늘날 축구는 축구 이상의 의미를 지니게 됐다. 세계적 현상이다. 축구에 지면 밥맛이 없다는 사람은 많다. 하지만 경제성장이 주춤하면 먹고살기가 힘들게 된다. 많은 국민들은 "한국경제는 전보다 나빠진 것이 없다"는 대통령의 발언을 이해하지 못한다. 누군가가 나서서 "한국축구는 전보다 나빠지지 않았다"고 하는 엉뚱한 주장과 다름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당국은 경기가 언제 회복될 것인지를 전망하고 발표하는 걸 정책이라고 착각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경기가 곧 풀릴 것이라는 기대를 심어주면서 난국을 얼버무리려고 해서는 안 된다. 성장잠재력이 잠식되는 걸 막고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게 정책이다. 우리의 생산현장은 기술에 매달리기에 앞서 근로의욕이 사라지고 투자심리가 위축돼 있다. 뛰지 않는 선수가 골을 넣을 수 없듯이 그런 생산현장에서 경쟁력과 생산성을 어떻게 높일 수 있겠는가. 본프레레는 대표팀을 맡으면서 "히딩크 이상의 성적을 원한다. 이기는 축구를 하겠다"고 다짐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7% 성장"을 자신했고 "경제를 직접 챙기겠다"고 여러 차례 다짐했다. 국민들은 이런 다짐에 기대를 걸었다. 그러나 기대는 물거품이 되고 있다. 한국축구와 경제는 묘하게 대비된다. 나라의 운명은 축구가 아니라 경제에 걸려 있다. 경제를 진정으로 살리려면 경제의 기본체질이 약화되고 있는 현실부터 직시해야 한다. 올해를 넘기면 내년에는 지방선거, 2007년에는 대선이 치러진다. 지금도 경제를 챙기지 않는데 선거철에는 오죽할까. 우리 사회가 이루고자 하는 모든 것의 바탕은 경제다. 이대로는 안 된다. 우리에겐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경쟁국들은 저만치 달려가고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