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통계] 11. 포탄이 떨어진 자리에 몸을 숨겨라?

동전을 던져 계속 앞면이 여러 번 나왔다면 다음번에 뒷면이 나올 확률이 2분의 1보다 높아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도박사의 오류'다.


동전은 이전에 어떤 면이 나왔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데,도박사들은 동전이 그것들을 기억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잘못을 해 다음번에 뒷면이 나올 확률이 2분의 1보다 높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도박사들의 기대와는 관계 없이 어떤 경우에도 다음에 앞면이 나올 확률은 2분의 1이다.


이런 확률적 판단의 오류 사례를 두 개 들어보자.먼저 개인적인 수준에서는 이런 도박사의 오류가 수준 높은 도박사가 되기 위해 반드시 갖추어야 할 자질로 평가되기도 하는데 다음 인용문이 그 좋은 예다.



"바카라 룸의 매니저는 준의 플레이를 눈여겨보았다.


……그런데 준의 플레이 시스템은 특이해서 얼른 파악되지 않았다.


……준은 앞판의 패를 따라가거나 피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 사이를 적당히 오고가며 베팅하고 있었다.


대체로 두 번까지는 앞판의 패를 피하는 방식이었다.


더 특이한 것은 준의 베팅 시스템이었다.


같은 패가 세 번 이상 나오고 나면 다른 쪽의 패에 베팅하면서 액수를 몇 배 혹은 스무 배로 갑자기 올리곤 했다.


바카라 룸의 매니저는 준이 운수나 바라는 뜨내기 도박꾼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김한길,'낙타는 따로 울지 않는다',청하,1989,211쪽)




'바카라'라는 도박은 화투로 하는 '섰다'라는 도박과 유사한데,다른 점은 '족보'라는 것이 없이 9가 가장 높은 끝수다.


게임은 두 패로 나눠 벌이게 되는데 도박사들은 판마다 자기가 걸고 싶은 쪽에 돈을 건다.


이때 사람들은 자기만의 방법대로 패를 선택하며 대개는 앞판에서 이긴 패를 따라가거나 혹은 이긴 패를 피해가는(진 패를 선택하는) 방법 중에서 선택한다.


도박사마다 자기만의 패를 선택하는 주관이나 규칙이 있겠지만 각 판에서 어느 한쪽이 이길 확률은 이전 판의 승패에 관계 없이 언제나 2분의 1이다.


그런데 이 소설의 주인공은 같은 패가 세 번 이상 나오면(즉 같은 패가 세 번 이상 연달아 이기면) 다음에는 다른 쪽 패에 베팅하면서 거는 돈의 액수를 몇 십 배로 올린다.


즉 다음번에는 다른 쪽 패가 이길 확률이 높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바로 전형적인 도박사의 오류다.


그런데 카지노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을 실력 있는 도박꾼으로 평가한다.


그런 잘못된 판단을 하는 사람들을 실력 있는 도박꾼이라고 치켜세운다면 그 사람들이 카지노에서 돈을 더 많이 잃어줄 것이다.


국가적인 수준에서 도박사의 오류를 범한 사례를 보자.제1차 세계대전 중에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전쟁터에서 폭탄이 떨어질 때 병사들은 새로 만들어진 폭탄구덩이,즉 방금 폭탄이 떨어졌던 장소에 몸을 숨기라고 교육받았다.


그런 장소에 몸을 숨기는 것이 좀 더 안전하므로 그렇게 하라고 교육과 훈련을 시킨 것이다.


아마도 같은 날 같은 장소에 두 번씩이나 폭탄이 떨어질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생각해 이런 교육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도박사의 오류와 유사한 오류다.


동전을 던져 앞면이 나왔다는 사실이 다시 동전을 던졌을 때 앞면이 나올 확률을 낮게 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어느 지점에 폭탄이 떨어졌다는 사실이 다시 그 지점에 폭탄이 떨어질 확률을 낮춰주지 않는다.


그래도 이미 떨어진 폭탄자리에 몸을 숨기는 것이 더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


이런 사람들에게 그들의 생각이 틀렸음을 증명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예를 들어 보자.


항아리에 1에서 20까지의 숫자가 적힌 스무 개의 공이 있다고 하자.그 항아리에서 숫자 7이 적힌 공을 꺼낼 확률은 20분의 1이다.


항아리에서 공을 두 번 꺼낸다고 할 때(한 번 꺼낸 공은 다시 항아리에 넣는다고 가정함),두 번 모두 7이 쓰인 공을 꺼낼 확률은 20분의 1X20분의 1,즉 400분의 1이다.


같은 공을 두 번 연속해서 꺼낼 확률은 한 번 꺼낼 확률보다 매우 낮다.


그런데 처음에 꺼낸 공이 7이라는 것을 알 때에는,그 다음에도 7이 쓰인 공을 꺼낼 확률은 여전히 20분의 1이다.


공을 꺼낼 확률을 포탄이 떨어질 확률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즉 두 번 연속해서 7이 쓰인 공을 꺼낼 확률은 매우 낮다.


하지만 처음 꺼낸 공이 7이었다는 것을 알면,다음에 다시 7이 쓰여진 공을 꺼낼 확률은 다른 숫자의 공을 꺼낼 확률과 같은 20분의 1인 것이다.


여행을 자주 하는 어떤 사람이 비행기에서 폭탄이 터질 확률에 대해 걱정하고 있었다.


그는 이 확률을 측정해 보고 그것이 낮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가 안심할 정도로 낮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는 항상 가방 안에 폭탄 하나를 넣어 가지고 여행한다고 한다.


그가 그렇게 한 것은 한 비행기 안에서 두 개의 폭탄이 터질 확률은 아주 낮을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의 생각대로 한 비행기 안에서 두 개(어떤 테러리스트가 갖고 온 폭탄 1개+자신이 지닌 폭탄 1개)의 폭탄이 터질 확률은 한 개가 터질 확률보다 훨씬 낮다.


하지만 그가 하나를 이미 비행기 안에 가지고 들어갔을 때는 비행기에서 다른 사람의 폭탄이 터질 확률은 여전히 같다.


결론적으로 어떤 지점에 두 개의 폭탄이 연속해서 떨어질 확률은 매우 낮다.


그러나 어느 한 지점에 폭탄이 떨어졌다는 것을 알 때에는 그 자리에 다시 폭탄이 떨어질 확률은 다른 곳에 폭탄이 떨어질 확률과 여전히 같다.


김진호 jhkim@kndu.ac.kr


[ 약력 ]


△서울대 경영대 졸업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경영학 석·박사


△(전)KBS 선거예측조사 자문위원


△(현)국방대 경영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