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권 < 보건사회硏 연구위원 > 한국에서 최근 사회문제의 하나로 대두되고 있는 것은 '저출산·고령화'의 심각성이다. 약 5년간의 논쟁을 끝내고 정책방향이 결정됐지만 사회구조적 모순과 내재된 한계로 인해 실제 정책의 추진은 2년간이나 표류하고 있다. 저출산을 일찍 경험하고 사회문제로 인식해 적극 대처한 서구 선진국 및 일본의 경우와 비교하면 매우 느긋한 자세임에 틀림없다. 같은 동양권인 일본사회를 살펴보자.1989년 출산율 1.57명일 때 종합대책을 마련했고,벌써 두 번이나 정책을 수정·보완하면서 더욱 강화했다. 우리의 경우는 어떤가? 출산율이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임에도 대책회의에 주력하고 있고,국민이 체감하는 정책은 오리무중이다. 이제 일본보다 출산율이 더 낮아졌고,노인문제가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된 일본보다 더욱 빠른 속도로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다. 경제력마저 낮은 상태에서 뒤늦은 정책의 효과를 거두기는 쉽지 않다. 그렇다고 국민감정에만 호소하는 것은 결코 용납되지 않을 것이다. 한 개인이 결혼을 하고,자녀를 출산하겠다는 행동을 결정할 때 단점보다는 장점이 많아야 한다. 인간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본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국사회에서 결혼과 출산을 함에 있어서 장단점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자. 교육기간의 장기화,여성의 자아욕구 증대,가치관 변화 등으로 초혼연령 상승과 미혼율 증대는 사회발전에 따라 당연히 나타나는 현상이다. 더구나 최근에는 결혼을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젊은이들이 많다. 청년실업,불안정한 직장,엄청난 생활비,불투명한 장래 등으로 혼자 살기도 어려운 실정인데 결혼과 가족부양에 대한 불안감이 팽배하다. 또한 과도한 혼수비용이 드는 문화적 특성,높은 주거비,가족기능의 현저한 약화,그리고 불안정한 가족의 증가는 결혼에 대한 환상을 깨기에 충분하다. 더욱 심각한 것은 남성 중심의 사회구조와 가족문화로 인해 여성들이 결혼 후 자아실현을 포기해야 하고,갈등 위주의 가족관계와 심각한 가정폭력이 존재하는 현실은 여성에게 '결혼은 굴레'라는 인식을 심어주기에 충분하다. 사랑하기 때문에,남들이 하니까,부모의 성화로 결혼을 했다고 하더라도 자녀를 갖는 데는 독한 결심이 있어야 한다. 과연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 것인가? 생존경쟁이 지나치고,안전환경이 미흡하며,미아(迷兒)와 학대받는 아동이 많고,많은 일탈 청소년이 거리를 방황하는 이 사회에서 '내 아이'가 안전하게 성장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구심이 들게 된다. 또한 '자아성취'와 '여유 있는 생활'을 선택할 것인가,아니면 '출산'을 선택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있다. 이는 맞벌이 하지 않고서는 생활이 어려운 경제적 현실,모성보호제도가 미흡한 사회구조,여성에게 주어진 과도한 가족보호 의무와 가사책임,엄청난 사교육비,'사오정'과 '오륙도'가 만연한 노동시장 현실 등에 기인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아동을 잘 양육할 수 없는 사회시스템과 여성에게 집중된 양육책임으로 여성의 자아가 상실되는 현실에서 '출산의 사회적 중요성'을 강조하는 정책은 허구이며 실효성도 없음을 알아야 한다. 따라서 자녀 출산이 그만한 사회적 가치가 있다면 결혼할 수 있고 자녀를 출산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민주적이고 양성이 평등한 문화 형성이 선행돼야 한다. 비록 개인주의적 가치관의 확산은 시대흐름이라 하더라도 결혼,자녀양육,여성의 자아실현에 장애가 되는 요인을 제거하는 정책이 추진된다면 권유하지 않더라도 자발적으로 자녀 출산은 이뤄질 것이다. 어떤 정책이 필요한지에 대한 고민은 그만해도 된다. 준비만 할 것이 아니라 조속히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