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드라마를 보면 세상이 보인다.

설사 내용이 황당한 허구투성이라 해도 그 속엔 시대적 추세가 있다.

그때그때 뜨는 직업이 소개되고, 유행하는 스타일이 나오고, 사회적 이슈가 떠오른다.

뿐이랴.사람들의 생각과 관심이 드러나고 희망사항도 엿보인다.

외환위기 직후엔 갑작스런 퇴출의 영향이었는지 남자 주인공의 직업으로 요리사(온달왕자들)와 미용사(루키)가 대두됐고,경기가 회복됐을 즈음엔 컨설턴트와 벤처회사 사장이 등장했다.

자신을 무시하는 남편과 이혼하고 식당을 차리는 중년여성과 교수 아내 대신 살림을 맡겠다는 남자가 나타난 것(아줌마)도 구조조정 바람이 휩쓴 뒤다.

드라마마다 외제차가 보란 듯이 굴러다니고 젊은층의 주거지 대부분이 오피스텔인 건 최근 급변한 생활상을, 키스는 물론 그 이상의 장면도 버젓이 비추는 건 달라진 성(性) 의식을 전한다.

노처녀들의 일상을 다룬 것과 미혼모 내지 이혼녀와 총각의 결혼을 앞세운 내용이 많은 건 '초혼은 늦고 이혼과 재혼이 늘어나는' 현상의 단면이다.

불황 탓일까.

여기저기서 복고 바람이 한창인 가운데 촌스러운 이름을 내건 두 편의 드라마가 떴다.

MBC의 일일극 '굳세어라 금순아'와 수목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이 그것이다.

금순은 아들을 둔 20대 과부, 삼순은 애인에게 배신당한 서른살 노처녀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환경이나 주위의 시선에 상관없이 씩씩하게 자기 길을 가는 것이다.

금순은 엄마 없이 자라 시집갔으나 남편을 잃어 미용기술을 배우고,삼순은 언니들에게 밀려 학업 대신 제빵 기능을 익히는 동안 만난 애인이 등을 돌려 가슴앓이를 하는 처지지만 기 죽지 않고 살아간다.

금순이와 삼순이 열풍은 내세울 것 없는 보통 사람들의 아픈 일상을 담담하면서도 건강하게 담아내는 데 기인한 듯 보인다.

두 드라마의 성공은 재벌2세와 깡패 없이도 대리만족과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음을 입증한다.

물론 두 가지 모두 의사와 부잣집 아들이라는 상대를 두고 있다는 점에서 또 다른 신데렐라 드라마 같긴 하지만.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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