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택계열 창업자인 박병엽 부회장(44).그는 취해 있었다.비틀거리며 차 문을 열고 나오는 모습이 몹시 힘들어 보였다.힘든 하루였던 모양이다.SK텔레텍 인수를 결정하기까지 무엇 하나 쉬웠으랴.


기자가 박 부회장을 청담동 집 앞에서 만난 시간은 4일 새벽 1시. 팬택계열의 팬택앤큐리텔이 SK텔레텍을 인수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알려진 직후였다.기자는 "술을 너무 많이 마셨으니 내일 얘기하자"는 박 부회장과 실랑이를 해야 했다.밤 10시부터 집 앞에서 기다렸다는 말에 "그럼 술이나 한잔 하자"며 집 안으로 들어갔다.


-또 한번 어려운 결정을 했는데.


"고민 좀 했다.요즘 드라이버를 휘두르면 2백야드도 안가서 뚝 떨어진다.아이언샷을 하려고 하면 땅이 불쑥 솟아오른다. 사실 어제도 혼자서 새벽 2시까지 술을 마셨다.아껴쓰면 3대가 놀고 먹을 돈을 모아놓고 왜 고생을 사서 하려 하는가.끊임없이 모험을 하고 도전해야 하는 것이 내 운명인가.이런 생각이 들었다.그런데 돈이 전부가 아니잖은가.구성원들이 만족하는 회사,출근하면 즐거운 회사를 만들어 보자.내 마음 깊이 이런 욕망이 숨어 있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했다."


-인수 후 경영계획은.


"해외시장에 주력할 계획이다.2년 후면 세계 휴대폰 시장에서 '톱 5'가 될 것이다.SK텔레텍이 프리미엄급 제품을 내놨고 우리도 프리미엄급으로 제품 수준이 오른 만큼 해외에서도 프리미엄 제품으로 인정받을 것이다.오는 6월까지 전세계에 28개 지점망이 완성된다.러시아와 멕시코 브라질에서도 성과가 나고 있고 인도시장에도 진출할 것이다."


-해외에서도 시너지가 나타나겠는가.


"SK텔레텍과의 시너지는 내수부문보다 해외에서 더 파워가 있을 것이다.SK의 상품력과 기획력을 활용하고 일부 인력을 전략적으로 배치하면 엄청난 탄력을 받을 것이다.여기에 팬택의 질긴 생명력이 결합되면 효과는 클 것이다.우리가 세계 휴대폰 시장의 변화를 주도하는 회사가 되면 주요 부품업체들도 덩달아 협력할 것이다."


-해외에서도 통하려면 기술력이 있어야 할 텐데.


"지금까지 신용평가기관에서 트리플B 정도를 받는 선에서 이익을 거두고 나머지 돈은 거의 연구개발에 투자했다.당장의 이익도 중요하다.그러나 목숨 걸고 싸우는 기업간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자생력을 키워야 했다.이제 기술 측면이나 다른 면에서도 준비가 끝났고 해외로 뻗어나갈 때가 됐다.그래서 SK텔레텍을 인수하기로 했다."


-국내시장 2위가 됐는데.


"지난 30년간 전세계 가전업체 중 가장 성공적인 곳이 삼성과 LG가 아닌가.그런 기업들과 바닥부터 싸워온 생존 노하우가 있다.큐리텔을 인수할 당시 시장점유율이 2%도 안됐는데 인수 첫해에 9%로 올렸다.그 다음해엔 11∼13%로,작년엔 17%로 올렸다.올해는 18∼20%를 왔다갔다 한다.이제 점유율보다는 고급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는데 주력하겠다."


-브랜드 고급화 전략은.


"브랜드 가치 유지는 내부에 팀을 구성해 검토할 것이다.그동안 팬택은 연구원 1천9백명으로 연구원이 3천명인 삼성,2천6백명인 LG와 대등한 게임을 했다.이제 SK텔레텍의 연구원 6백명이 가세하면 프리미엄 이미지를 유지하는 데는 이상이 없다."


-중국의 추격이 거센데.


"휴대폰은 코스트 전쟁이 아니다.팬택은 삐삐(무선호출기)를 만들던 시절부터 국내에서든 해외에서든 최정상 기업들과 싸워서 이겼다.중국회사 몇 개가 끼어든다고 삼성 LG 노키아만 하겠는가.경쟁자 하나 더 생겨서 부담될 것은 없다."


-인재를 키워야 할 텐데.


"팬택에는 팬택만의 독특한 조직문화라고 부를만한 게 있다.한마디로 교육을 엄청나게 시킨다.항상 3백명 정도가 교육을 받고 있다.이는 전체 임직원의 8%에 해당한다.교육전문가를 공모해서 채용했더니 경쟁사들이 '팬택이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놀라더라.그런데 가장 중요한게 교육 아닌가.마케팅 교육이나 전문교육도 중요하지만 궁극적으로 '어떻게 살것이냐','사람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회사 비전은 무엇인가' 등에 대해 공유하고 공감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이런 내용을 교육에 포함시키도록 했다."


-평소 경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개인적으로 기업이 망하는 것은 한순간이라고 생각한다.두려움을 갖고 언제나 겸손함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한다.요즘 칭기즈칸에 관한 책을 읽고 있는데 몽골군의 개방성 유연성 창조성에 깊이 공감하고 있다."


글=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