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기봉 < 시인 > 요즘에도 학교에서 호구조사라는 걸 한다.'집에 자동차가 있느냐,너희 집이 초가집이냐,기와집이냐,전화기가 있느냐'와 같은 시시콜콜한 것을 조금이라도 더 써내야 주목받았던 때가 있었다.지금은 아이들 인권 때문에 그런 세세한 조사는 하지 않지만 그래도 매년 3월만 되면 A4용지에 가정환경 조사서라는 걸 작성해야 한다. 초등학교 3학년인 내 딸내미도 해마다 잊지 않고 쪽지를 받아온다.그런데 요즘은 언제부터인가 아빠인 내게는 쉬쉬하며 제 엄마하고만 의논을 해서 그 용지를 작성한다. 아침신문을 읽고 있는데 저만치서 한 장의 종이를 앞에 놓고 두 모녀가 끙끙대고 있었다.슬쩍 넘겨다보는 내게 모녀는 이름을 한자로 써야 하기 때문에 고민하고 있다고 둘러대었다. 아빠인 나에게는 뭔가 감추려는 기색이 역력했다.나는 그 용지를 집어 들고 한자 이름을 써 넣은 후 빈칸을 채워나갔다.직업을 쓰는 칸에 '농업'이라고도 써넣었다.그러자 딸내미가 "아빠,창피해! 아빠의 직업을 농업이라 쓰지 말아요"하며 농업이란 글씨를 지우개로 박박 문질러 지웠다."그럼 여기다 뭘 써넣어야 하니?" "시인, 시인은 농업보다 덜 창피하잖아." "얘야! 너는 하루에 세끼 밥을 먹지.그리고 과일도 먹고,채소도 먹고,네가 먹는 음식은 농부들이 열심히 일을 해서 만든 거란다.농부들이 없으면 사람들은 굶어 죽는단다.농부들은 참 소중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야." 나는 딸내미에게 왜 농업이 중요한가를 자세히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 주었다.얼굴이 약간 달아오른 채로 말이다.그리고 다시 내 직업을 '농업'이라 썼다.그러자 딸내미는 "아빠,그럼 나 학교에 가서 시인으로 고칠 거야.나 농사짓는 아빠 싫어"하며 울고 있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초등학교 입학 때부터 다른 아이보다 조숙한 딸내미는 자기 아빠 직업에 대해 상당히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신영이 아빠는 양복을 쫙 빼 입고 매일 출근하는 회사원이고,영재 아빠는 선생님이시고? 왜 우리 아빠는 매일 허름한 옷만 입고 멋도 안 부리고 다닐까.' 아이는 아빠가 농부라는 이유로 학교에서 풀이 죽은 채 지내고 있었던 것이었다.그래서 새 학기만 되면 딸내미는 목숨을 걸고 투쟁을 하는 것이다.아빠의 직업은 '시인'이라고. 나는 딸내미에게만 이런 문제가 있다고 보지 않는다.산업이 발달할수록 사회는 농업을 경시해왔던 것이 사실이다.오죽했으면 퇴직하고 농사나 짓는다는 말이 나돌겠는가. 그래서 말인데 나는 강력히 정부에 당부한다.농림부를 없애고 농업을 행정자치부에서 관할하고 농촌은 보건복지부에서 담당해주길 말이다.농촌에 덩그러니 남겨진 나이드신 어르신네들은 의료혜택도 누리지 못하고 꼬박꼬박 의료보험만 내고 있다.마늘 이면각서에 이어 또 한번 터진 쌀 이면각서,그 논란의 중심에 불신의 농림부가 있는 것이다. 딸내미와 실랑이를 벌이고 밭으로 올라갔다.포도나무 덩굴을 더 세게 잡아 당겼다.내게서 달아나려던 사람들이며 인심들이 억지로 당겨오는 듯한 느낌이다.딸내미의 마음도 이해할 거 같고 그렇게 만든 사회도 이해할 거 같았다. 아빠들 대부분이 농업 말고는 특별한 직업이 없는 순수한 시골학교라면 직업 문제로 딸과 다툼할 일이 없겠지만 나는 지금 도시 주변의 어중간한 농촌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이런 수모를 겪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해마다 되풀이되는 호구조사가 싫다.딸내미와 내가 동시에 상처를 받는 가정 환경 조사,시인도 반듯한 직업은 더욱 아니지만 세상에서 농업이 영원히 추방된 느낌이어서,봄꽃을 마음대로 꽃이라고 부르지 못하는 나는 해마다 슬픈 봄을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