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게티 전문점 파스타리오(www.pastario.com) 본사의 김동현 사장(46)은 초등학교 졸업이 학력의 전부다.


검정고시를 통해 중고교 과정을 마치고 대학에 들어가서도 1년밖에 다니지 못했다.그러나 그는 요즘 외식업계 사장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하느라 대학교수 못지 않게 자주 강단에 서고 있다.


세번이나 사업에 실패한 그는 시행착오를 거울삼아 물류에 대해 남다른 안목을 갖고 오뚝이처럼 재기했다.


'물류 아웃소싱' 김 사장은 물류를 아웃소싱해서 몸집을 가볍게 해야 가맹점이 늘어나면 매출과 이익이 급증하게 된다고 강조한다.



# 가난했던 어린 시절


김 사장의 어릴 때 별명은 '천하장사'였다.


아버지가 지병으로 쓰러지고 어머니 혼자 서울 수유시장에서 장사로 3남2녀를 키웠는데 힘든 일은 도맡아 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그는 직업 전선에 뛰어들어 돈을 벌어야 했다.


커피숍 주방보조,공사장 막노동 등 수십가지 직업을 전전했다.


하지만 배움에 대한 갈망은 버릴 수 없었다.


밤에는 단과학원을 다니며 검정고시를 준비했다.


"남산 도서관과 친구 아버지의 복덕방을 주로 이용했어요. 도서관은 새벽 4시30분에 줄을 서야 겨우 들어갈 수 있었지요.밤에는 복덕방에서 같은 처지의 친구 서너명이 모여 공부했어요."


이 때 몸에 밴 습관으로 김 사장은 지금도 새벽 4시30분이면 눈을 뜬다.


그리고 5시에는 집을 나선다.


84년에 대학 영문과에 입학,1년을 마치고 무작정 호주로 날아갔다.


레스토랑 접시닦이,오피스 청소부 등을 하면서 어학연수 과정을 밟았다.


16개월간의 연수가 끝날 무렵 운좋게 교포가 운영하는 건설회사에 취직할 수 있었다.


맡은 일은 견적사.일반 직원 임금의 2배를 받아 고달픈 생활은 끝나는 듯했다.


그러나 넓고 안온하기만 한 호주는 도전적인 김 사장 체질에 맞지 않았다.


결국 89년 말 귀국 비행기에 올랐다.


90년 초 후배와 공동으로 광고기획사를 차렸다.


신소재로 광고판을 만들어 주는 사업이었다.


주유소 의류업체 등을 상대로 영업,2년간 짭짤한 재미를 봤다.


그러나 92년 들어서 새로운 소재의 광고판이 출시되면서 회사 문을 닫아야 했다.


두번째는 인테리어 사업체.92년부터 약 3년간 운영했다.


주로 프랜차이즈 업체의 가맹점 인테리어 공사를 맡았다.


잘 벌릴 때는 한달에 1천만원씩 들어왔다.


지금 돈 가치로 보면 1억원이 넘는 돈이었다.


그러나 업체별로 부침이 심한 게 단점이었다.


"겉으로 보기엔 잘 나가는 업체들도 실제 공사를 해보면 수금이 제대로 안되곤 했어요. 일감은 꾸준히 몰리는데 수금이 제대로 안되니 회사가 잘 굴러갈 수 없었습니다."


인테리어 회사를 접고 다른 업체 영업실장으로 들어갔다.


보수는 실적에 따른 인센티브제였다.


프랜차이즈 업체들과 꾸준히 거래하다보니 잘하는 기업과 못하는 기업의 차이점이 뚜렷이 눈에 들어왔다.


98년 직접 프랜차이즈 사업을 해보겠다고 나선 것도 이 때문이었다.



# 프랜차이즈의 핵심은 '물류'


98년 9월 자신의 손으로 만든 케밥?스파게티?피자 브랜드 '멜리'를 탄생시켰다.


얇게 썬 야채나 고기를 밀전병에 둘둘 말아 먹는 케밥은 그리스와 터키 전통 음식으로 우리나라에서 처음 대중화한 게 바로 김 사장이었다.


"IMF시절이라 돈이 얼어붙은 시기였는데 멜리는 생기자마자 1년간 가맹점이 60개가 문을 열었습니다. 50평 전후의 대형 외식업소가 1주일에 한개꼴로 생겼으니 당시로는 대박이 터진 거지요. 그런데 가맹점이 늘어날수록 오히려 자금부족에 시달렸지요. 이런 상태에서 동업자가 자신의 투자금 9억원을 빼버리자 회사는 갑자기 휘청거렸습니다."


자금난이 오자 납품업자도 미적거렸다.


가맹점주들도 서서히 떨어져 나갔다.


버틸 재간이 없었다.


집도,차도,본사 직영점도 모두 처분해 빚을 갚았다.


그래도 부채 14억원은 고스란히 남았다.


다시 인테리어 회사에 더부살이로 들어갔다.


책상 두개를 빌려 인테리어 영업맨으로 지탱했다.


채권자들은 '깍두기' 해결사들을 보내 협박해왔다.


인생의 고비였다.


2001년부터 2003년까지 고난의 시간은 그에게 큰 선물을 안겨주었다.


프랜차이즈의 핵심이 무엇인지 눈을 뜨게 된 것이다.


그것은 바로 물류였다.


본사가 차량과 창고를 갖추고 가맹점에 직접 식재료를 배송하는 직송체제를 고수하는 한 이익창출이 어렵다는 얘기다.


멜리사업에서 큰 빚을 진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직송체제 아래서 가맹점이 늘면 차량과 창고비,인건비,기름값은 급증하게 된다.


가맹점에 대한 도매마진이 물류비 증가분에도 못 미치는 상황이 된다는 설명이다.


"2003년 1월 대전에서 스파게티 전문점인 파스타리오 1호점 문을 열었습니다. 2년여 동안 37호점으로 늘어났는데요,전국 대학가 상권 점포 중 이익면에서 하나같이 1등 점포로 자리매김했지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건물 2층 출점이 원칙이라 투자비가 1층 점포의 4분의 1 수준이에요."


파스타리오 본사는 설립 6개월이 지나면서 곧바로 흑자로 돌아섰다.


식자재 벤더업체를 활용,철저한 물류 아웃소싱이 그 배경이 됐음은 물론이다.


직원은 단 4명으로 시작,인건비 부담도 크지 않았다.


그가 요즘 예비 창업자들이나 본사 사장들에게 부르짖는 키워드는 오직 '물류'다.


"물류비 많이 나가는 회사는 절대 오래가지 못합니다. 본사 선택할 때 눈여겨봐야 할 부분은 바로 물류 시스템이란 얘기지요."


강창동 유통전문기자 cd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