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 < 시인·중앙대 교수 > 올해 고등학교 1학년이 된 내 딸은 음대 작곡과에 진학하고 싶어하는 평범한 학생이다. 집에서 농담삼아 '공부 빼고는 못하는 게 없겠다'고 할 만큼 글쓰기와 그림그리기, 피아노 등 다방면에 재능을 가진 이 아이의 궁극적 꿈은 영화음악 작곡가와 음반 프로듀서이다. 초등학교 이래 단 한번도 변하지 않은 딸의 이런 희망 덕분에 집안에는 언제나 골치 아픈(?) 음악이 흐르고 방학이면 마니아들만 본다는 영화를 함께 보러 가야 하는 고역도 치러야 한다. 무지한 식구들의 온갖 박해 속에서도 삭막한 집안을 윤택하게 만드는 각종 소음(?)을 불러일으키며 재잘거리던 딸이 요즘은 거의 말문을 닫고 산다. '대한민국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이 된 것이다. 고3 수험생이 아닌 데도 딸의 고등학교 생활은 거의 충격적이다. 30여분에 걸친 사투 끝에 잠자리에서 일어나 아침 7시 반쯤 집을 나서면 저녁 10시가 넘어 파김치가 되어 돌아오는 딸의 모습은 이미 '꿈 많은 여고생'과는 거리가 멀다. 과장해 표현하자면 거의 패잔병의 모습이다. 더욱 어이없는 일은 그때부터 학원이나 과외를 받으러 가는 친구들이 대부분이지 자기처럼 집으로 돌아오는 아이들이 거의 없다며 다시 책상에 앉는 것이다. 공부가 될 리 없는 그 시간에 책상에 앉아 아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며칠 남지 않은 중간고사를 앞두고는 거의 자지도 먹지도 않는 아이의 모습에 치미는 분노를 느끼는 아버지는 비단 나만이 아닐 것이다. 지칠 대로 지친 아이에게는 4월의 꽃길도, 천지를 샛노랗게 물들인 황사도, 일본의 역사 왜곡도 그저 남의 이야기, 딴 세상 일인 것 같다. '책상에 엎드려 자지 말고 제대로 자라'는 한 마디에도 대답에 날이 선다. 이런 세상을 만든 못난 어른들에 대한 항변 같아 야단치기조차 두려워진다. 그래서인가. 언론에서는 연일 고등학교 1학년 교실을 집중 보도하고 있다. 2008년부터 시행되는 내신 위주의 잘못된 입시제도를 두드려대고 있는 것이다. 대학입시를 12번의 내신 시험으로 나눈 셈이니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제대로 된 옷을 입기가 불가능하다는 분석이다. 게다가 우수한 학생들만 모이는 외국어고나 특목고 학생들이 중간고사를 치른 후에는 불리한 내신을 만회하기 위해 일반고로 전학을 하고, 일반고에서 대학 가기가 어려운 아이들이 실업계로 이동할 거라는 시나리오까지 전하고 있다. 그런 부작용을 막기 위해서는 학교간 학력 차이를 인정하고 이를 등급화하여 입시에 반영해야 한다는 처방전까지 내놓고 있다. 이 단순 명쾌한 해법을 시행해야 하는 정책당국자의 고충이야 내가 짐작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깊고 복잡할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 과정에서 아이들이 시들어간다는 것이다. 인성도 체력도 키우지 못한 채 감옥에 갇힌 죄수들처럼 3년을 보낸 아이들이 성적에 맞춰 대학에 진학한들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음악대학에 가고 싶은 아이가 마음놓고 음악CD 한 장 들을 시간과 여유가 없다면 이 아이가 잃어버린 감수성과 시간은 누가 보상해줄까. 내가 몸담고 있는 학과에서도 끝까지 열정을 가지고 작품을 써내는 학생들은 어릴 때부터의 꿈을 실현한 경우이다. 성적에 맞춰 진학한 학생들은 약간의 문재(文才)를 보이다가도 곧 포기하는 경우가 많지만 글을 쓰고 싶어하고 책을 가까이 한 학생들은 비록 고등학교에서의 성적이 나빴더라도 끝내 자신의 꿈을 이루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학생들이 성적이 나쁘다는 이유로 자신의 진정한 꿈을 접어야 했을까. 음대에 가기 위해서는 음악을 듣는 것도, 피아노를 치는 것도 잠시 접어야 한다는 딸의 논리에 '그렇지 않다'고 자신 있게 말해주지 못하는 아버지의 비애는 참 크다. 이 아름다운 봄날, 봄꽃처럼 피어나는 열일곱살 딸아이와 가까운 공원을 산책하며 새로 나온 음반이나 영화 이야기를 하고 싶은 내 꿈이 정말 사오정 아빠의 백일몽일 것인지 누구에게 물어보고 싶은 심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