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호 < 산업부장 > 터키를 방문했던 노무현 대통령이 터키인들의 '한국 사랑'에 적잖은 감명을 받은 모양이다. 평소 한국인 여행객들을 '피를 나눈 형제'라며 극진히 환대해 온 터키 사람들이 수교 47년 만에 처음으로 터키를 찾은 한국 대통령에겐 오죽했으랴. 현지 유력 신문들까지 노 대통령의 터키 방문을 알리는 기사에 '터키 방문을 환영합니다'라는 한글 제목을 대문짝 만하게 달아놓았다니 말이다. 한국 대통령의 터키 방문은 그야말로 만시지탄(晩時之歎)이다. 한국전쟁에 참전해 7백명이 넘는 전사자,2천명이 넘는 부상자를 내며 피로써 나라를 지켜준 형제국에 예의라도 갖추게 됐으니 그나마 다행스런 일이다. 노 대통령도 참전 용사들을 만난 자리에서 "이제야 마음의 짐을 더는 것 같다"고 말했다는 소식이다. 사실 그동안 한·터키 관계는 터키의 '일방적인 사랑'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2년 월드컵 축구대회가 열리기 전까지 터키를 우리의 혈맹,우리의 형제국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과연 얼마나 될까. 그런 터키인들에게 우리는 몇 차례 큰 상처를 안겨준 적이 있다. 서울올림픽이 열렸던 1988년의 일이다. 당시 터키인들은 전쟁으로 쑥대밭이 됐던 '형제의 나라'가 크게 발전해 올림픽까지 개최하게 됐다는 기쁨-진심으로 반가워했다고 한다-에 모두 TV 앞에 붙어 앉았다고 한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터키 선수들이 주경기장에 입장하는데 한국 관람객들의 태도가 다른 나라에 대한 그것과 다를 바 없지 않은가. 그 때만 해도 괜찮았다. 곧이어 소련이 입장했을 때다. 모든 관람객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환호하는 것 아닌가. 터키 국민들의 섭섭한 감정은 마침내 분노로 바뀌고 말았다. 서울올림픽은 바로 전 LA올림픽과 모스크바올림픽이 반쪽 대회로 치러졌던 만큼 공산권의 맹주인 소련의 참가가 최대 관심사였다. 그런 소련이 대규모 선수단을 파견했으니 기립 박수도 결코 무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터키에 있어 소련의 의미는 다르다. 국경을 맞대고 있는 나라가 대부분 그렇듯 철저한 견원지간이었다. 더구나 터키는 한국전에서 '투르크 전사'들이 피를 흘린 이유를 '형제의 나라를 소련의 침공에서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던 터. 그 날 터키인들은 모두 TV 시청을 포기했다는 후문이다. 당시 올림픽 취재차 서울에 왔던 터키의 한 기자는 한국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했다. '터키가 한국전에 참전한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라는 질문이었다. 결과는 그들의 기대를 완전히 비껴나갔다. 90% 이상의 어린이가 '모른다'고 답했기 때문이다. '우리의 영혼은 아직 한국의 하늘을 떠돌고 있는데,우리를 잊었는가 한국 형제들이여!' 그 날 터키 유력 신문의 1면을 장식했던 헤드라인이다. 어디서 이런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을까. 해답은 교과서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터키는 각급 학교 교과서의 서너 페이지를 한국에 할애하고 있다. 동일한 알타이계 문화를 가진 한국과는 한국전쟁을 통해 진정한 '칸 카르데쉬(피를 나눈 형제의 나라)'가 됐다는 내용은 물론 한국의 경제적 번영으로 자신들이 흘린 피가 헛되지 않았다는 평가까지 상세하게 게재돼 있다. 우리의 교과서는 어떤가. 터키는 그저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16개국 명단에 올라 있을 뿐이다. 그러다보니 우리 정부의 외교 방식도 다를 게 없었다. 1999년 터키가 초대형 지진으로 수만 명이 사망하는 비극을 맞았을 때도 우리 정부는 복구지원금으로 고작 7만달러(당시 환율로 따져 8천5백만원)를 내밀어 국제 사회의 웃음거리가 됐다. 이 소식을 접한 터키 사람들의 실망은 오죽했을까. 우리는 지금 일본과 교과서 문제를 놓고 다투고 있다. 일본의 역사 왜곡에 분노하고 있는 우리가 과연 우리의 역사는 제대로 가르치고 있는지. 우리의 심기를 건드리는 역사 왜곡만이 문제이고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 역사를 아무렇지도 않게 잊는 것은 괜찮은 일인지. TV를 통해 노 대통령 앞에서 울음을 참지 못하던 터키 참전용사들의 모습을 보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jh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