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가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근로조건 등에 대한 의견을 발표한 것은 그 내용이나 형식에서 도무지 납득하기가 어렵다. 우선 형식에서 업무범위를 넘어선 월권행위가 아니냐는 의문이 들고, 그 내용에 있어서도 노동계에 일방적으로 치우친 편향된 입장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도대체 누구를 위하고, 무엇을 겨냥한 입장표명인지 이해하기 힘들다. 정부는 비정규직문제 해결을 위해 관련법안을 국회에 제출해 놓고 입법을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그런가 하면 노·사·정은 우여곡절 끝에 대화 채널을 복구해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는 중이다. 국회는 국회대로 여야간에 머리를 맞대고 처리방안을 고심중이다. 그런데 인권위가 느닷없이 엉뚱한 의견을 내놓았으니 혼란에 빠져들 수밖에 없게 됐다. 노사 갈등을 부추길 가능성이 큰 것은 물론 노동계의 강온 대결을 재현시킬 우려도 없지 않다는 점에서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더욱 꼬이게 만들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구체적인 내용을 따져보더라도 인권위가 파견대상업종의 확대여부를 정하고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임금수준까지 구체적으로 언급하는 것은 합리적이지도 않고 설득력도 없다. 근로조건은 해당 기업의 경영 사정이나 업무 성격, 근로자 자질 등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것이고 회사와 근로자가 서로 합의하에 계약하는 것인만큼 일반적 인권문제와는 차원이 다르다고 봐야 한다. 인권위가 기업과 노동계의 현실을 제대로 알고나 있는지도 의심스럽다.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근로조건이 다른 것은 숙련도 충성심 경력 기업규모 등에서 차이가 나는 까닭인데도 무조건 차별해소 측면만 강조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설령 인권위가 제시한 내용이 그대로 현실화된다 하더라도 전체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권익 향상엔 도움이 되지 못한다. 정규직에 대한 과도한 임금부담과 고용경직성 때문에 비정규직을 뽑아온 것이 기업들의 현실인만큼 정규직과 다름없는 대우를 해야 한다면 채용을 늘릴 까닭이 없다. 그렇게 되면 비정규직 일자리마저 더욱 줄어들게 되고 이태백 사오정 등 온갖 유행어까지 나도는 심각한 실업사태도 더욱 악화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비정규직 문제는 노동시장 기업사정 국가경쟁력 일자리창출 등 복합적 측면에서 대책을 강구하지 않으면 안될 문제인만큼 노·사·정 당사자들에게 맡겨둬야 한다. 결코 인권위가 나설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