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금리.환율 정책이 꼬일대로 꼬여 '정책 실종' 상태에 빠져들고 있다. 원.달러 환율이 장중 한때 1천원선마저 무너진 23일 부랴부랴 금융정책협의회를 소집했지만 "시장 개입을 위한 발권력은 무제한이다"는 식의 엄포밖에 내놓지 못했다. 정부가 내수경기을 의식, 저금리 기조를 유지하는 데 집착하다 보니 환율이 무방비 상태에 노출된 것이다. 당장 환율을 잡으려면 '실탄'을 조달해야 하지만 연초부터 급등세인 채권 금리를 다시 자극할까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재정경제부는 다음달 국채 발행 물량을 이달보다 7천6백억원 늘린 3조7천9백억원으로 잡았지만 금리 때문에 시장이 잔뜩 주시해온 외환시장 안정용 국고채(환시채) 발행 계획은 밝히지 않았다. 게다가 재경부와 한국은행은 금리·환율 정책을 놓고 여전히 딴 목소리다. 이제 기업들은 언제 뛸지 모를 금리와,언제 9백원대로 추락할지 모를 환율을 어지럽게 쳐다보며 살얼음판을 걸어야 할 판이다. ○환율방어 vs 금리안정 지난 22일 원·달러 환율이 급락하기 직전까지 정부의 거시정책 우선 순위는 환율보다는 금리에 있었다. 올 들어 증시활황을 타고 되살아난 소비 불씨를 살리기 위해선 '저금리 약발'이 절실했기 때문이다. 지난 1월 국고채 발행 확대로 국고채 금리가 급등하자 정부가 국고채 발행물량을 줄이겠다며 즉각 진화에 나선 것이나,지난 15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콜금리 목표를 동결하자 재경부가 여전히 아쉬움을 표시한 것 등이 그 방증이다. 특히 올 들어 1월과 2월 중 수출은 당초 예상보다 높은 10%대의 신장세를 보이고 있다. 수출과 직결된 환율에 대해 정부가 다소 여유를 갖게 하는 대목이다. 재경부 관계자는 "환율과 금리,둘 다 중요하지만 경기회복이라는 정책 목표를 위해선 당장 수출 유지보다는 내수 지원이 더 급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최근의 급속한 원·달러 환율 하락은 이 같은 정부 입장에 변화를 유도하고 있다. 가파른 환율하락은 수출업계에 직격탄이 되는 등 경제전반에 심각한 불안요인이기 때문이다. 특히 환율변동에 거의 무방비 상태인 중소기업들의 채산성 악화는 돌고 돌아 결국 내수회복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정부가 이날 오후 재경부 차관 주재로 한은 부총재와 금융감독위원회 부위원장이 참석한 금융정책협의회를 긴급 소집,외환시장 안정대책을 발표한 것은 앞으로 환율급락을 내버려 두지 않겠다는 강한 시그널을 시장에 주기 위한 것이었다. ○정책조합 쉽지 않아 고민 문제는 환율방어와 금리안정이 서로 상충될 수 있는 정책 목표란 점이다. 환율방어를 위해 정부가 환시채를 발행하면 채권 공급이 늘어 채권금리는 상승(채권값 하락)할 수밖에 없다. 환율을 잡으려면 금리가 올라가는 걸 감수해야 한다는 얘기다. 더욱이 정부는 현재 외환시장 개입을 위한 '실탄'이 부족해 환시채 발행이 불가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 정부는 환시채로 지난 1월에 5조원,2월에 2조원 등 모두 7조원어치를 발행했다. 그러나 이 중 2조7천억원은 만기가 돌아온 환시채를 되갚기 위한 용도여서 시장안정을 위한 자금여력은 넉넉하지 않은 상태다. 물론 정부는 실탄 부족을 인정하지 않는다. 재경부 관계자는 "채권시장에 부담이 되는 환시채 발행이 아니더라도 정부가 환율방어를 위해 쓸 수 있는 돈은 얼마든지 있다"며 "한은의 발권력은 무제한"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한은이 원화를 찍어내 외환시장에서 달러를 사들이더라도 결국 시중에 풀린 원화를 다시 환수하기 위해선 통화안정증권을 발행해야 하기 때문에 채권 공급확대 효과는 마찬가지라는 지적이다. 차병석 기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