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로 접어든 이후부터 주변 어른들의 부고를 자주 접한다.

작년과 올해는 가까운 두 분의 대조적인 죽음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작년에 노 스승은 어느 때부터 의식불명이 됐는데 병원은 각종 현대적인 의료처치로 그분의 목숨을 반년 이상 연장시켰다.

나는 그동안 면회를 가보지 못했다.

가족 이외에는 중환자실에 들여보내 주질 않았고,면회를 가본들 산소호흡기로 목숨을 이어가고 있는 의식불명 환자를 말없이 바라볼 수 있을 따름이었다.

정초에는 장인어른이 돌아가셨다.

여든여섯번째 생신을 며칠 앞두고 눈을 감았으니 천수를 누리고 가셨다고 해야 할까.

말년에 위장이 안 좋아져 약간의 병원 치료를 받기는 했지만 몇 달 전까지 등산을 다닌 건강한 몸이셨다.

별 지병 없이,그야말로 노환으로 눈을 감았기에 장례식장에서 많은 사람들이 호상(好喪)이라고 했다.

가까운 집안 어른의 임종을 처음 겪는 나로서는 저런 죽음이야말로 참으로 인간적인 죽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달쯤 죽을 드시다가 임종 일주일 전부터 일체의 병원 처치는 물론 자신의 의지로 곡기와 물을 거부했고,임종 몇 시간 전까지도 의식의 끈을 놓지않고 일가친척의 인사를 받았다.

놀라운 일은 물조차 거부한 일주일 동안 여러 차례 배변을 해 속을 완전히 비우신 것이었다.

나도 저런 깨끗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을까.

치매예방을 위해 한자 필사를 하루에 몇 백자씩 하고 이틀에 꼭 한번 산에 오르면서 다리의 힘을 잃지 않았기에 깨끗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것도 자신의 의지로.별다른 고통 없이 돌아가신(표정이 내내 그렇게 편할 수 없었다) 장인어른은 인간보다는 초인에 가까웠다.

장례식 며칠 후 우연히 한 의사의 신문 칼럼을 보게 됐다.

92세 할머니가 사망한 상태로 병원 응급실로 실려왔는데,돌아가시기 전 일주일 동안 음식을 안 드셨다는 것이었다.

이 경우는 자연사가 아니라 변사이며,사망 결과만 보면 노인 학대에 해당되고,식구들이 노인을 굶겨 죽였다는 것이 그 칼럼의 내용이었다.

나는 이 칼럼을 보고 깜짝 놀랐다.

내가 최상의 죽음이라고 여긴 그 죽음의 길이 바로 '노인 학대'이고 '굶어죽게 한 것'이라니!

의사라면 응당 92세 할머니를 두고서도 "최소 몇 달은 더 살 수 있었을 것이다"란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인간에게는 자신의 존엄을 지키며 죽어갈 권리도 있는 것이 아닐까.

아마도 그 할머니는 사망 전 일주일 동안 음식을 먹고 소화시키고 배설할 능력을 발휘할 수 없었을 것이다.

직접 눈으로 보지는 않았지만 그 할머니의 죽음은 변사가 아니라 자연사였을 것이다.

그런데 유가족한테 이런 죽음은 영양실조에 의한 변사로 봐야 하니까 사체검안서가 나가야 한다고 말하면 기절초풍할 노릇이 아니겠는가.

92세 할머니의 몸이 편찮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 할머니의 목숨을 몇달 연장시켜 드리기 위해 링거 주삿바늘과 산소호흡기를 몸에서 떼지 않는게 옳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반대하고 싶다.

사람이 늙어 기력이 쇠하여 죽는 것을 의학의 힘으로 몇 달 연장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임종을 돌보는 호스피스에 대한 예우가 언론에서 거론되고 있다.

병원에서 호스피스의 도움을 받으며 임종을 맞이하는 환자는 사망 인구의 5%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호스피스를 양성하는 교육 시스템이 정비될 필요가 있다.

호스피스 또한 자신의 일에 보람을 느낄 뿐 아니라 경제적 안정도 취할수 있도록 처우를 확실히 해주어야 한다.

이와 아울러 가장 중요한 것은 임종을 앞둔 이가 병원이 아닌 자기 집에서,마음이라도 편안한 상태에서 숨을 거둘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노환으로 숨을 거두게 된다면 병원에서 몇 개월 목숨을 연장하느니 집에서 숨을 거두고 싶다.

곡기도 끊고 물도 거부하면서 내 죽음의 주인이 되고 싶다.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