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0년 일본 국회는 '국회 등의 이전에 관한 결의'를 채택했다. 2년 후에는 '국회 등의 이전에 관한 법률'도 제정했다. 수도를 옮기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도쿄에서 3백km는 떨어져야 한다'는 원칙아래 도치기·후쿠시마를 비롯한 3곳의 후보지도 선정됐다. 10년 내 인구 10만명의 '국회도시'를 만들고 이후 수십년에 걸쳐 주변에 소도시를 배치해 50만명 정도의 새 수도를 건설한다는 시나리오였다. 하지만 불황에 발목잡힌 일본 정부는 미적미적하다 97년 하시모토 류타로 내각이 재정개혁을 내세워 2003년까지 신수도 건설사업에 예산을 투입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후 일본의 수도이전 논의는 국민의 관심사에서 멀어지면서 사실상 물건너간 얘기가 됐다. 아예 일본 국회는 2002년 '대도시 도심 활성화법'을 만들어 수도권 집중을 막는 각종 규제를 해제하고 도쿄의 재개발을 촉진키로 했다. 국제경쟁력을 강화하려면 도쿄를 더 키우고 도시기능을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는,이른바 '도쿄빅뱅론'이 그 근거가 됐다.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으로 수도이전이 사실상 무산되자 정부는 당초의 수도권 규제완화 방침을 전면 재검토키로 했다. 한마디로 규제를 푸는 것은 수도이전과의 '빅딜'로 추진된 사안이었는데 수도를 옮길 수 없게 됐으니 규제완화도 원인무효됐다는 말이다. 수도권을 묶어 기업의 지방이전을 유도함으로써 지방경제를 살리고 수도권 과밀로 인한 부동산투기,환경오염,지역간 소득격차 확대 등의 부작용을 줄인다는 것이 정부의 규제 논리다. 국가기능과 자원이 모두 수도권에 집중돼 지방은 갈수록 공동화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국토의 10% 남짓한 땅에 인구의 절반이 몰려 살면서 혼잡이 극심할 지경이니 국토의 균형발전에 토를 달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이 논리는 '수도권 규제=지역균형발전'이라는 등식의 성립을 전제로 한다. 서울과 수도권을 억누르면 기업들이 지방으로 내려가고 나라가 균형있게 발전하면서 국가경쟁력이 살아날까. 천만의 말씀이다. 지금은 기업과 자본이 국경을 넘나들어 마음대로 움직이는 글로벌 경쟁시대다.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면 지방이 아니라 '중국'으로 간다. 수십년을 고집해온 수도권 규제가 의도한 대로 인구분산 효과를 거두었는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다. 오히려 제조업만 위축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고 있을 뿐이다. 사정이 이러하다면 규제가 오히려 수도권의 경쟁력만 떨어뜨려 수도권과 지방을 함께 하향평준화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다시 생각해볼 문제다. 수도권 규제는 이미 선진국에서도 용도폐기된 정책이다. 영국은 80년대 초 대처 정권이 수도권 공장 신·증설 규제를 완전 폐지하고,프랑스도 파리의 규제를 대폭 완화했다. 수도를 억누르기만 한 결과 경제활력과 도시경쟁력만 떨어지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도쿄나 상하이에 필적할 수 있는 곳이 서울이고,자본 노동력 교육 의료서비스 등에서 그나마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곳이 수도권임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렇다면 기왕에 갖고 있는 강점을 더욱 살려나가고 모자란 부분은 보완할 수 있는 방안부터 찾는 것이 순서다. 서울을 더 키우고,수도권을 더 확대하는 것이 국가경쟁력을 높이는 길이 될 수도 있다. 과밀과 혼잡으로 따지면 서울 못지 않은 일본의 도쿄가 '빅뱅론'으로 경쟁력 강화에 나서고 있음을 눈여겨 볼 필요도 있다. 수도권과 지방을 자원배분의 불균형을 시정한다는 관점에서 이분법적으로 나눠 한쪽을 묶어 다른 쪽을 발전시킨다는 발상은 너무 폐쇄적이고 미래지향적이지도 않다. kunn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