安忠榮 <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원장 > 지난 1993년 12월 타결된 UR 협상에서 모든 상품의 '예외 없는 관세화' 원칙에도 불구하고 10년 동안 우리나라는 쌀 시장 개방과 관련하여 '특별하게' 관세화 유예를 받았다. 한국농업에서 쌀산업이 차지하는 비중과 개방에 따른 당장의 어려운 사정을 쌀 수출국들이 인정하면서 일정량을 의무적으로 수입한다는 조건에서 예외를 인정한 것이다. 유예기간이 만료되는 올해 우리나라는 UR 농업협정문의 규정에 따라 '관세화 유예 연장'을 위한 쌀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전방위 개방이 WTO의 추세임을 볼 때 우리가 쌀의 관세화 유예를 다시 연장할 경우 쌀 수출국들은 우리에게 쌀 의무 수입량의 대폭 증가와 쌀시장 판매에서 실질적 시장 접근을 요구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현재 미국 중국 태국 호주 등 9개 협상국과 개별 양자협상 중에 있다. 9월말까지 협상을 종료할 계획이나 일부 협상국들에 의한 대폭적 개방 요구 때문에 협상의 어려움이 나타나고 있다. 미국과 호주는 자국 쌀의 시장판매 등 실질적인 시장접근을 전제로 우리의 관세화 유예 연장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중국과 태국 등 일부 국가는 부정적 반응을 보이면서 관세화 유예 연장의 대가로 상당한 수준의 추가 개방 폭을 요구하고 있다. 심지어 쌀 시장 이외의 관심품목의 개방을 요구하거나 동식물 검역문제까지 제기하고 있다. 따라서 쌀 협상의 결과가 관세화 유예를 연장하는 방향으로 나든, 혹은 관세화 수용으로 결론이 나든 우리 쌀 시장의 추가적인 개방 확대는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국제적 협상에서 우리는 관세화가 유리한가, 아니면 관세화 유예가 유리한가의 판단은 국내 쌀 산업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결정해야 할 것이다. 관세화 유예 연장에 따른 쌀 시장 개방의 폭이 관세화시 예상되는 개방의 폭보다 작을 경우 관세화 유예가 유리한 방식이 될 것이고 반대의 경우는 관세화가 유리할 것이다. 얼핏 보기에 쉬워 보이는 쌀 협상이 현재 난관에 봉착하고 있는 이유는 관세화로 갈 경우 예상되는 시장개방의 폭이 어느 정도인지, 협상국의 관세화 유예연장에 따른 요구조건이 어떻게 제시될 지 판단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협상 당사국 모두가 자신의 이익을 최대로 반영할 수 있는 주관적 주장을 반복해 자칫 불합리하고 객관적이지 못한 상황논리에 의해 협상이 진행될 위험성도 내재하고 있다. 일부 농민단체는 어떠한 경우에도 관세화 유예를 고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부 국민도 정치적·감성적 이유로 관세화 유예를 선호하고 있다. 분명히 명심해야 할 것은 우리가 협상에서 관세화로 전환할 수 있다는 입장을 표명하지 않고 관세화는 절대로 안된다는 우리의 일방적 입장만을 강조할 경우, 우리는 협상국의 지나친 요구조건을 수용하지 않으면 안될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그렇게 될 경우 오히려 우리의 협상 입지는 약화돼 뜻하지 않은 손실과 낭패를 볼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우리는 최대한 유리한 조건으로 관세화 유예를 추진하되, 협상 상대국의 과다한 개방요구에 직면할 경우 실사구시의 차원에서 관세화까지 포함된 쌀 협상을 고려할 수 있다는 입장을 견지할 필요가 있다. 어떠한 방향으로 쌀협상이 귀결되든,농촌의 종합적 발전과 쌀산업의 경쟁력 확보를 위한 구조조정도 이행돼야 한다. 일부 로비 능력이 강한 집단의 단기 이익만 고려하다가 장기적으로 쌀농사를 모두 포기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쌀시장에 대한 관세화 유예 연장이든, 관세화로 이행하든 시장개방에 맞추어 우리는 쌀산업의 연착륙을 유도하고 농가소득안정장치도 마련해야 한다. 상대국에 관세화 수용 가능성을 열어두면서 상대국이 관세화 유예 연장의 조건으로 제시할 개방폭을 최대한 낮추어 가는 신축적 협상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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